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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인사에는 '암호(코드, Code)'가 있다. 인사가 있을 때마다 다양한 관점의 해설 기사가 뒤따르는 것도 이를 판독하기 위해서다. 또 '규칙(코드, Code)'도 있다. 일례로 특정 직책에 공통 이력을 가진 인물이 반복해서 선임되는 식의 경향성이 있다. 이러한 코드들은 회사 사정과 떼어놓고 볼 수 없다. THE CFO가 최근 중요성이 커지는 CFO 인사에 대한 기업별 경향성을 살펴보고 이를 해독해본다.
두산그룹은 두산중공업이 작년 2월 말 채권단 관리 체제를 조기졸업 하면서 그룹 전체를 조여왔던 구조조정 작업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문제의 진원지는 두산에너빌리티였지만, 구조조정의 범위는 그룹 전체였다. 비핵심자산 뿐만 아니라 두산그룹의 현재이자 미래를 대표했던 주요 계열사들의 매각도 있었다. 지주사 ㈜두산의 최고재무책임자(CFO)인 김민철 사장(
사진)의 어깨가 무거울 수밖에 없었다.
김 사장은 2018년 두산그룹이 최고경영자(CEO)-최고재무책임자(CFO)의 각자대표이사 체제를 선언하면서 ㈜두산의 지주부문 CFO 대표이사로 부임된 인물이다.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두산그룹 재무라인에 종사하면서 오너 일가의 믿음을 두텁게 산 인물이다.
김 사장은 부임 이후 현재까지 5년 동안 지주부문 재무를 총괄하면서 CFO 부임 당시이자 현재 두산그룹 회장인 박정원 회장의 믿음에 보답했다.
두산그룹을 둘러싼 재무 위기는 2010년대부터 지속됐지만 뇌관은 2020년에 터졌다. 코로나19 등으로 유동성 위기가 닥치면서 두산에너빌리티가 국책은행으로부터 3조원이라는 긴급자금을 수혈받으면서 자구안을 제출했다. 자산매각과 유상증자 등 자구안을 작성한 두산에너빌리티의 각오는 '어떤 자산이든 매각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지주사 ㈜두산은 두산에너빌리티의 재무구조 개선 작업을 지주사 차원에서 핸들링하고 지원하는 임무를 갖게 됐다.
CFO 부임 이후 초반 김 사장의 주요 성과는 2019년 중순 두산솔루스(현 솔루스첨단소재)와 두산퓨얼셀의 인적분할을 결정한 것이다. 각각 전지박/동박, 수소연료전지 사업을 영위했던 두 법인은 ㈜두산 내 사업 부문으로만 자리매김하고 있어 몸값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인적분할 이후 두 법인은 2020년대로 접어들면서 친환경 사업이 시장에서 주목받자 몸값이 7~8배 이상 폭등했다.
이 인적분할은 결국 추후 두산그룹 구조조정 과정에서 긍정적인 결과를 낳았다. 두산솔루스 매각을 통해 수천억원의 현금을 쥐었고, 두산 오너 일가들은 보유하고 있던 두산퓨얼셀 지분을 두산에너빌리티에 무상 증여하면서 두산에너빌리티의 자본 확충을 이끌어냈다.
이후에도 김 사장과 ㈜두산은 자산매각과 자산 재배치를 통해 채권단 관리의 아픔을 최소화하는데 주력했다. 2020년 두산타워 매각(8000억원), 네오플럭스 매각(711억원), 두산솔루스 매각(2382억원)에 이어 모트롤사업부 매각(4530억원) 등 자산 유동화를 통해 두산에너빌리티에 쏴줄 현금뭉치를 마련했다. 이듬해인 2021년에도 산업차량BG를 두산밥캣에 매각(7500억원)했다.
이외 2019년 말과 2021년 4월 각각 두산메카텍과 두산퓨얼셀 지분을 두산에너빌리티에 전량 현물출자하면서 두산에너빌리티가 향후 유동화할 수 있는 자산이 많아지도록 재배치 작업도 시행했다. 그 대가로 두산에너빌리티의 신주를 받았다. 이는 작년 8월 말 ㈜두산이 두산에너빌리티 지분을 일부 처분하면서 5722억원의 현금으로 유동화하는데 일조했다.
작년 2월 재무구조 개선 작업을 마쳤던 ㈜두산은 두 달 뒤인 4월 테스나 지분을 취득하면서 신사업에 몰두하고 있다. 26년 동안 두산에 커리어를 바치며 재무구조 개선 작업을 진두지휘했던 김 사장은 다시 태어난 두산그룹의 재무 중책으로 계속 활동할 전망이다. 김 사장의 이번 CFO 대표이사 임기는 내년 3월 말까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