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달전략 분석
포스코, 격변기 조달전략 짜는 '이선규' 재무실장
3.2조 공격조달 제안, 재량 확대…차기 CFO 후보, 역대 실장들 '요직'에
이경주 기자 2023-01-25 17:03:16
편집자주
조달은 최고재무책임자(CFO) 업무의 꽃이다. 주주의 지원(자본)이나 양질의 빚(차입)을 얼마나 잘 끌어오느냐에 따라 기업 성장속도가 달라질 수 있다. 특히 결과가 가시적으로 드러난다는 특징이 있다. 최적의 타이밍에 저렴한 비용으로 딜(Deal)을 성사시키는 것이 곧 실력이자 성과다. THE CFO는 우리 기업의 조달 전략과 성과, 이로 인한 사업·재무적 영향을 추적한다.
포스코는 올 1월에만 3조원이 넘는 대규모 회사채 발행을 했다. 5년래 연간 최대 규모 발행액을 올 들어 한 달 만에 기록했다. 우량사로 손꼽히는 포스코(AA+, 안정적)도 사채 이자율이 4~6% 이를 정도로 금리가 높아진 시기지만 '선제적 조달'을 강행했다. 지배구조 재편 비용 마련과 경기 불확실성에 대비하기 목적이다.
포스코 조달전략은 새 인물이 짜고 있다. 지난해 초 포스코홀딩스(옛 상장사 포스코)의 철강사업부문이 물적분할로 신설(비상장사 포스코)되면서 재무조직이 새롭게 꾸려진 결과다. 초대 재무실장인 이선규 임원이 조달 핵심 실무자다. 사업에 필요한 자금을 예상하고 시장 환경을 감안해 시기와 규모를 정해 이사회에 제안하고 있다.
특히 이 실장 권한은 전임자들보다 강화된 것으로 추정된다. 상장사 포스코 시절엔 거쳐야 했던 이사회 내 재정위원회 심의가 현재는 사라졌다.
◇전년 12월 제안, 전원 찬성 의결
포스코는 이달 10일 20억달러(한화 약 2조5000억원) 규모의 글로벌본드와 같은 달 12일 원화 회사채 7000억원 등 총 3조2000억원을 시장에서 조달했다. 지난해 12월 23일 이 실장이 이사회에 제안한 ‘23년 자금조달 계획’이 실행된 결과다.
포스코는 과거부터 재무실장이 조달 실무를 총괄했다. 재무실장은 제안서에 사업·재무적으로 자금이 필요한 이슈들을 정리해 담는다. 자본시장 환경에 대한 분석도 있다. 금리가 중장기적으로 높아질 것으로 예상돼 선제조달이 필요하다는 식의 의견을 제시한다.
이사회에선 재무실장 제안에 대한 Q&A(질의응답)가 주로 이뤄진다. 지금이 자금조달의 적기인지, 규모는 적절한 것인지에 대한 토론이 벌어지기도 한다. 대다수 이견이 없어 의결이 된다.
이번 안건에선 이 실장은 원화채는 7000억원 이내, 달러채는 20억달러 이내를 조달하겠다고 제안했다. 트렌치(만기구조)는 최소 2년에서 최대 10년까지로 정했다. 실행시기는 올 1분기 중으로 정했다. 이사회는 해당 안건에 대해 전원찬성으로 의결했고, 세부실행 방안에 대해선 이 실장에게 위임하기로 했다.
이 실장은 한 달도 안 된 시점에 계획대로 빅딜을 성사시켰다. 트렌치는 원화채는 2년(500억원) 3년(4500억원) 5년(2000억원)으로, 달러채는 3년(7억달러) 5년(10억달러) 10년(3억달러)으로 구성했다. 트렌치와 건별 금액은 이 실장이 구체화한 전략으로 볼 수 있다. 이 실장은 해외투자자 모집을 위해 연초부터 분주히 글로벌IR을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정우 회장-윤덕일 전 CFO도 재무실장 출신
이 실장은 1965년생으로 미시간주립대( Michigan State University)에서 석사 학위를 땄다. 상장사 포스코 시절 컨트롤타워인 전략기획본부(옛 가치경영센터)에 소속이었던 것이 확인된다. 2015년 1월부터 재무실 세무그룹장을 맡았고 이후 회계원가그룹장으로 있었다.
2022년 1월 포스코가 물적분할로 떨어져나오면서 경영기획본부 산하에 신설된 재무실의 초대 실장이 됐다. 재무실장이 요직으로 가는 '코스'로 통하는 만큼 이 실장의 행보도 업계에선 관심사다.
포스코는 과거부터 적극적인 차입으로 사세확장을 도모했던 기업이다. 총차입금 규모가 2000년대 말부터 20조원 내외에 이른다. 때문에 재무실장 역할이 중요했다. 최정우 회장도 조달업무를 기반으로 성장한 케이스다. 2006년 재무실장을 지냈다.
역대 재무실장도 모두 중용됐다. 노민용 포스코인터내셔널 CFO(부사장)는 2014년부터 2017년까지 재무실장을 지냈다. 후임자인 윤덕일 포스코 전 CFO(부사장)는 2017~2019년까지, 임승규 포스코기술투자 대표는 2019년부터 2021년까지 재무실장이었다. 윤덕일 부사장은 올 초 인사에서 포스코케미칼 CFO로 자리를 옮겼다. 모두 주요 계열사 CFO나 CEO로 영전했다.
이 실장은 비록 비상장사 포스코의 재무실장이지만 외부에서 보는 위상은 여전하다. 조달 기능이 존속회사인 포스코홀딩스에서 없어지고 신설회사인 포스코로 옮겨졌기 때문이다. 여전히 이 실장이 그룹에서 큰 줄기의 현금흐름을 관장하고 있다.
IB업계 관계자는 “포스코홀딩스는 조달을 하지 않아 접점이 사라졌고 포스코 재무실장이 핵심 역할을 하고 있다”며 “역대 재무실장들이 요직으로 배치된 것으로 봤을 때 최정우 회장이 신경을 쓰는 자리로 본다”고 말했다.
특히 비상장사 포스코 재무실장은 전임자들보다 재량이 더 커진 것으로 보인다. 상장사 포스코는 이사회 내에 재정위원회를 두고 회사채 발행 안건 등을 이사회에 보고되기 전에 심의했다. 재정위원회는 CFO 1인과 사외이사 3인으로 구성됐다. 위원장은 사외이사였다.
재무실장이 안건에 대한 결제를 두 번 받아야 했던 셈이다. 하지만 회사가 분리되면서 재정위원회가 사라졌다. 이 실장이 이사회에 자신의 구상을 바로 전달할 수 있는 구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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