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 보릿고개로 고전 중인 LG디스플레이가 생존모드에 본격 돌입한 것으로 보인다. 최고재무책임자(CFO) 김성현 전무가 이미 투자비용 축소와 재고 최소화를 선언했는데 이번엔 창사 이래 처음으로 사무직 대상 자율휴직까지 감행한다. 전사적 과제가 성장이 아니라 ‘버티기’인 국면에 처했다.
LG디스플레이의 인건비는 2021년부터 급격히 늘어 연간 조원에 가까워졌다. 차입 규모가 급증하고 있는 데다 현금창출력 회복도 요원한 상황에서 가볍게 보긴 어려운 지출이다.
2022년 9월 말 연결 기준으로 LG디스플레이는 총차입금이 15조3846억원을 기록했다. 2021년 말과 비교하면 1년도 안돼서 2조6000억원이 넘게 불어난 수치다. 이는 잉여현금흐름이 지난해 마이너스(-) 2조7324억원으로 적자 전환한 탓에 약해진 캐시플로우를 차입에 기대서 채웠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지난해 LG디스플레이는 리스부채를 포함해 5조원이 조금 넘는 돈을 갚고 6조5482억원을 새로 빌렸다.
반면 현금창출력은 급감했다. 작년 3분기에 1조원이 넘는 대규모 누적 손손실을 내면서 현금성자산이 2021년 말보다 1조원이 빠진 3조2656억원에 그쳤다. 요구불예금 1조5396억원과 금융기관예치금 1조7232억원을 포함한 돈이다.
이중 1조4285억원은 종속회사 차입담보와 상생협력협약, 투자계획 이행확보 차원의 질권설정 등으로 사용이 제한돼 있다. 사용제한예금을 포함해도 총차입금에서 현금성자산을 뺀 순차입금이 12조1189억원에 이르는 셈이다. 2018년 6조원 수준이었는데 그 2배에 육박한다.
차입구조를 보면 외화로 빌린 장기차입금이 7조3300억원 정도로 가장 많았다. 이밖에 단기차입금 2조2100억원, 유동성장기부채 2조6300억원, 회사채로 조달한 빚이 1조1300억원, 리스부채 약 900억원 등이 있다. 전부 합쳐 1년 안에 갚아야하는 돈은 총차입의 34%인 5조2000억원이다. 차입구조가 장기화된 덕에 당장 감당하기 큰 무리는 없어 보인다. 하지만 지난해 EBITDA(상각 전 영업이익)가 2조2600억원으로 전년의 반토막에도 못 미쳤다는 점을 감안하면 재무안전성에 금이 간 것은 분명하다.
LG디스플레이는 원래 LCD TV 패널이 주력이던 곳이다. 하지만 중국업체들이 저가로 물건을 뿌려 득세하면서 2018년을 기점으로 경쟁력을 차츰 잃었다. LCD 패널 가격이 떨어져 오히려 팔면 손해가 나는 지경에 이르자 LG디스플레이는 출구 전략에 돌입한 상태다. 지난해 김성현 전무가 직접 LCD TV부문의 다운사이징을 언급하고 국내 생산을 중단했다.
문제는 혁신안으로 유기발광다이오드(OLED)로의 사업구조 전환을 진행 중인데 OLED 패널 수요까지 줄었다는 점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에너지 이슈 등으로 OLED TV의 최대 판매지역인 유럽에서 소비심리가 크게 나빠진 영향이 컸다. 북미 전략거래처로 공급 일정마저 늦어졌고 캐시카우였던 IT패널 역시 수요 회복은 올해 하반기 즈음에나 가능할 전망이다.
상황이 이러니 김 전무는 2022년 10월 말 설비투자(CAPEX)를 계획보다 1조원 이상, 재고 역시 연말까지 1조원 이상 줄이겠다고 강경책을 내놓기도 했다. LG디스플레이는 최근 2년간 연 1조원씩 재고가 늘어 작년 9월 말 기준 4조5000억원이 넘는 재고가 쌓였다.
이 재고를 취득한 원가는 4조8000억원이지만 오래 팔리지 않아 장기체화된 물건 등이 있어서 가치가 하락했다. 이중 3조5000억원 정도가 디스플레이 제품과 재공품이다. 재고자산회전율은 2020년 10.2회에서 지난해 6회로 떨어진 상태다.
업계 관계자는 “업계 전반적으로 감산과 공급 축소가 불가피한 상황이고 패널 가격도 당분간 오르기는 힘들 것”이라고 봤다. 업황상 드라마틱한 회복을 바라기는 어렵다는 뜻이다.
주목되는 점은 김 전무가 자산 매각, 담보 제공 등을 통해 더 과감한 유동성 확보에 나설지 여부다. LG디스플레이는 작년 9월 말 연결 기준으로 국내에 약 14조원, 국외에 약 17조6000억원 수준의 유형자산을 보유했다. 이중 1조원 정도를 중국 건설은행(China Construction Bank)에 담보로 주고 2조2000억원을 차입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