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너와 주주 사이의 거리가 부쩍 가까워진 요즘이다. 기업 총수를 회장님이라고 존칭하기보다 '형'으로 부른다. 오너의 경영 방식부터 라이프 스타일까지 스포트라이트를 받는다. 그만큼 오너의 언행이 기업의 주가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오너의 말 한마디에 따라 주가가 급등하기도, 리스크로 돌아오기도 한다. 더벨이 오너 경영과 주가와의 상관관계를 들여다봤다.
태광산업이 최근 '5년간 8조원'이라는 공격적인 투자 계획을 발표한 것과 달리 회사 주가는 11년 전 수준에도 못 미치고 있다. 이 시기는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이 횡령 등의 혐의로 회사 경영에 나서지 못했던 태광산업의 '잃어버린 세월'로 잘 알려져 있다.
주가의 향배는 결국 신규투자가 얼마나 가시적인 결과물을 내놓을 수 있을지에 달려 있다는 관측이다. 2021년 10월 출소한 이 전 회장은 5년 동안 취업을 할 수 없다. 오너 리스크가 여전한 상황이라 투자의 구체성과 의지가 시장에 먼저 도달해야 한다는 분석이다.
◇오너 리스크, 황제주 몰락의 시작
태광그룹의 본체 격인 태광산업은 2012년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의 실형으로 말미암아 비상경영 체제에 들어섰다. 그때부터 태광산업은 총수 부재 속에 신규 투자가 미미한 수준으로 쪼그라들어 기존의 사업 포트폴리오에서 큰 변화가 없었다.
한때 황제주(株)로 불리던 태광산업의 주가가 내리막을 타게 된 순간이기도 했다. 지난 2011년 중순 180만원을 훌쩍 넘었던 태광산업 주가는 이 전 부회장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이후부터 한없이 급락해 2012년 말에는 80만원대까지 추락했다.
석유화학 업계가 '다운 사이클'에 접어드는 시점이었지만 태광산업의 하락세는 특히 거셌다. 실제 2012년 LG화학(5%↑), SK이노베이션(17%↑), 한화솔루션(25%↓)에 비해 급락했다. 이 전 회장의 오너 리스크가 주가 하락의 큰 요인이었던 셈이다.
그런 주가를 회복시킨 건 결국 실적이었다. 고순도 테레프탈산(PTA)과 아크릴로니트릴(AN) 등 석유화학 제품과 아크릴·나일론 등 섬유 제품을 생산하는 태광산업은 2018년까지 지속된 업계 '호항기' 속에 꾸준히 수익을 끌어올리며 주가 반등을 이뤄냈다.
실제 태광산업 주가는 2018년까지 완만한 우상향 곡선을 그렸다. 줄곧 100만원선을 횡보하던 주가가 150만원대까지 상승했고, 석유화학 시황이 꺾인 2019년마저도 중국 내 PTA 판매 호조에 힘입어 연초 대비 50% 가까이 뛴 175만원까지 뛰었다.
견조한 실적으로 주가를 부양시켜 온 태광산업도 코로나19 앞에선 꺾였다. 중국발 경쟁 심화와 지역 봉쇄로 인한 수요 감소가 겹치며 2020년 매출과 영업이익이 전년대비 각각 40%, 77% 감소했다. 최고가를 찍었던 주가도 다시 100만원 아래로 내려갔다.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 속죄의 투자 이어갈까
주가 하락의 계기가 '오너 리스크'에서 비롯됐지만 순조로운 영업 활동에 의해 충분히 반등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2020년 이후에도 코로나19 해제 국면의 반짝 호황으로 태광산업은 19%의 영업이익률을 올리며, 주가 반등을 이뤄낸 바 있다.
다만 최근의 주가 흐름은 또다시 악화일로다. 글로벌 경기 침체와 전 세계적인 탈플라스틱정책으로 수요 위축 우려가 생기며 주가가 하락하고 있다. 여기에 태광그룹 계열사 흥국생명 유상증자 참여 논란이 생기며 주주들로부터 원성을 사기도 했다.
최근 발표한 대규모 투자 계획에도 주가가 힘을 쓰지 못하는 배경이다. 태광그룹은 최근 석유화학 공장의 설비 및 환경개발과 신사업 개발 등 태광산업에 8조원에 달하는 자금을 집중 투입하기로 했다. 성장동력을 마련하기 위한 전방위적 구상이다.
태광그룹은 이달 중 투자 세부안을 발표할 예정이다. 이 전 회장의 취업 제한으로 오너리스크가 여전한 상황에서 구체적인 투자 계획, 재원마련 방안 등의 가시적인 결과물이 태광산업 주가 흐름을 가를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 전 회장의 결단도 주목할 만한 부분이다. 이 전 회장은 과거 섬유·화학 중심이었던 태광그룹의 포트폴리오를 미디어와 금융으로 넓히기 시작한 인물이다. 2021년 10월 출소하며 자유의 몸이 됐지만 5년 간의취업 제한이 있어 경영 일선에 등장하지 못하고 있다.
다만 사업 결정권을 쥔 오너로서 후속 결정들을 얼마든지 해낼 수 있는 상황이다. 실제 태광산업은 2021년 이 전 회장의 출소 이후 대표이사(CEO) 교체, 아라미드 공장 생산라인 증설, LG화학과의 아크릴로니트릴(AN) 합작공장 설립 등을 발표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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