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기 쉽지 않아서인지 힘들게 성사된 인터뷰에서도 CFO라는 '한 개인'에 대한 질문이 많다. 사업보고서와 IR 자료, 애널리스트 보고서 등으로 기업의 속사정은 어느 정도 알 수 있지만 CFO는 직접 만나지 않는 이상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지 도통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최근에 만난 CFO들에게 던진 질문 중 하나는 '가장 관심을 쏟는 업무 영역은 무엇입니까'이다. 학창 시절 언어로 바꾸면 '가장 좋아하는 과목은?' 정도겠다. 그들에게 필요한 콘텐츠가 무엇인지 알고 싶어서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100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고 하지 않았던가.
재밌게도 이 질문에 상당수의 CFO가 '투자'라고 답했다. 사실 투자는 전통적 관점에서 CFO의 업무 영역은 아니다. CFO 출입 기자들에게 가이드 역할을 톡톡히 해주는 'CFO의 전략적 역할'(한국공인회계사회 지음)에 따르면 CFO 역할은 현재까지 총 4단계로 발전했다.
1단계는 재산관리자. 많은 언론이 CFO를 지칭할 때 사용하는 곳간지기를 떠올리면 된다. 2단계는 프로세스 관리자. 경영진에 회계정보를 정리·보고하고 투자자와 소통하는 업무가 추가됐다. 3단계는 사업 동반자. 각 부서가 계획에 맞춰 예산을 쓰고 결과물을 냈는지 평가하는 업무가 더해졌다. 마지막 4단계는 가치관리자. 사업 개발과 투자 업무에도 참여한다.
마지막 4단계에 이르면 CFO는 재무와 회계, IR, 인사, 투자 등의 업무를 맡는다. 사실상 생산과 판매, 연구개발을 제외한 백오피스 전반을 책임지는 셈이다. 최근에 만난 CFO들은 모두 4단계에 해당하는 가치관리자였다. 한 CFO는 올해 사내 변호사를 충원하기 전까지 법무 업무도 맡을 정도였다.
하지만 여기서 강조하려는 건 CFO 역할의 발전 단계나 위상이 향상됐다는 게 아니다. 많은 CFO가 가장 관심 갖는 업무로 '왜' 투자를 꼽았냐는 점이다. 한 CFO는 "다른 업무들은 제대로 돌아가게 만들기만 하면 된다. 그런데 그렇기 때문에 위에서 (CFO가) 일을 잘했는지 판단하기 어렵다. 반면 투자는 그렇지 않다"라고 설명했다.
업무 성과를 어필하는 데 투자만큼 효과적인 건 없다는 말이다. 현재 많은 오너와 CEO가 인수합병과 지분투자 등 인오가닉 성장 전략을 추진하는 상황이다. 또한 최근 2년 넘게 자본시장이 호황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이러한 흐름에 맞춰 적은 돈으로 큰 이익을 안겨준 부하 (임)직원이 오너와 CEO 입장에선 이쁠 수밖에 없다.
상사의 흐뭇함이 반갑지 않은 이가 어디 있을까. CFO도 어디까지나 직장인이다. 상사에게 인정받고 싶고 본인의 성과를 자랑하고 싶은. 다만 다른 직장인과 차이는 위상이 높아지면서 '언론을 포함해' CFO를 관찰하는 이들이 많아졌다는 점이다. 잘한 것도, 그리고 못한 것도 전보다 더 크게 알려질 것이다. CFO들은 이 점도 영리하게 활용할 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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