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기업에서 재무라인이 어떤 위상을 가졌는지 알아보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들이 어디로 영전하는 지를 보는 것이다. 삼성전자의 핵심 재무라인을 이루는 경영지원실장(CFO)과 재경팀장 중 상당수는 계열사 대표로 이동했다. 사내에서 요직으로 통한다는 의미다.
삼성전자 재무라인은 2010년대부터 독특한 인사패턴이 나타났는데 CFO는 전략과 기획·사업지원 역량을 갖춘 옛 미래전략실 출신을, 재경팀장은 팀에서 오랜 재무·회계 실무로 잔뼈가 굵은 임원을 앉혔다. 재경팀 내에선 경리그룹장이 팀장으로 승진하는 관행이 공식처럼 내려오고 있다.
◇역대 재경팀장들 삼성벤처투자·에스원 대표로 영전
삼성전자의 역대 재경팀장들은 계열사 대표이사로 영전했다. 2004년부터 6년간 재경팀장을 지낸 최외홍 사장은 2009년 삼성벤처투자 대표이사로 갔으며 그의 뒤를 이어 재경팀장 자리를 받았던 이선종 대표도 2013년 최 사장의 후임으로 삼성벤처투자 대표가 됐다.
이번에는 2014년부터 8년간 재경팀장을 맡아왔던 남궁범 사장이 에스원 대표로 영전했다. 재경팀장이란 자리의 중요성이 어느 정도 인정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모습이다.
2000년대 초반만 해도 삼성전자 CFO는 재경팀을 거친 인사들이 맡았다. 최도석 전 삼성카드 부회장은 제일모직 경리과장, 삼성전자 경리부장과 재경팀장을 거쳐 경영지원실장, 경영지원총괄본부장 자리에 올랐다. 그의 후임인 윤주화 전 삼성사회공헌위원회 사장도 재경팀 경영지원그룹장, 경영지원팀장, 감사팀장을 지낸 뒤 CFO로 선임됐다.
그러다 2010년대부터 미전실 출신들이 CFO 바통을 물려받기 시작했다. 이상훈 전 이사회 의장은 구조조정본부 전무, 전략기획실 전략지원팀 부사장, 미래전략실 전략1팀장 등을 거쳐 2012년 경영지원실장이 됐다. 그는 CFO 임기가 끝난 뒤 이사회 의장으로 선임됐다.
이 전 의장의 후임이었던 노희찬 전 에스원 대표도 구조조정본부 재무팀과 미래전략실 감사팀, 삼성디스플레이 경영지원실장을 지낸 뒤 CFO 자리에 올랐다. 작년 말 삼성SDI 대표로 간 최윤호 사장 또한 미전실 전략1팀, 무선사업부 지원팀장, 사업지원TF 담당임원을 거친 인사다. 삼성전자 역대 CFO들은 계열사 대표 등으로 중용됐다.
재계 관계자는 "삼성전자 고위임원이라 해도 계열사 대표로 가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하다"며 "역대 CFO와 재경팀장 상당수가 계열사 대표로 갔다는 것은 재무라인의 위상이 그만큼 높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경리그룹장→재경팀장, 이정도면 '인사공식'
삼성전자를 비롯한 전자계열사의 지원조직은 실-팀-그룹을 이뤄져 있다. 큰 부서의 경우 그룹 밑에 파트 조직이 세팅되기도 한다. 통상 실장은 부사장~사장급, 팀장은 임원급, 그룹장은 부장급이 맡는다. 다만 삼성전자는 그 규모가 다른 계열사보다 훨씬 크기 때문에 팀장이 부사장~사장, 그룹장이 임원인 사례가 다수 있다.
삼성전자는 각 사업부마다 스태프부서가 있고 여기서 재무·기획·인사·총무 등 지원업무가 이뤄진다. 이들 업무를 후선에서 관리하고 컨트롤하는 게 경영지원실이다. 산하에 재무·회계업무를 담당하는 재경팀, 그 안에 경리그룹, 회계그룹 등이 편제돼 있다.
경리그룹장은 재경팀 내에 2인자로 통한다. 지금까지 재경팀장을 맡아온 임원들의 이력을 보면 대다수가 경리그룹장을 거쳐 팀장이 됐다. 2004년부터 6년간 재경팀장을 지낸 최외홍 전 삼성벤처투자 대표는 물론 그의 후임인 이선종 전 삼성벤처투자 대표도 그랬다.
남궁범 대표 역시 재경팀 경리그룹 담당부장과 경리그룹장을 거쳐 2014년부터 팀장으로 8년간 근무하다 작년 말 에스원으로 이동했다. 남궁 대표의 뒤를 이어 재경팀장이 된 김동욱 부사장 또한 경리그룹장으로 있다가 승진된 케이스다.
삼성 관계자는 "삼성전자 CFO는 재경뿐 아니라 기획, 인사, 지원부서들을 총괄해야 하는 만큼 재무와 전략 등의 안목을 갖춘 미전실 출신들이 요건에 맞아 떨어졌다"며 "재경팀장은 회계, 세무, 자금운영, 재무정보 생성 및 보고 등을 전담하기 때문에 숫자에 밝은 실무총괄 부서장이 필요한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