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곳간으로 들어오는 최종 이익은 법인세 등 세금이 결정한다. 유효세율이 높아지면 세전이익이 증가하더라도 당기순이익 규모는 줄어든다. 과거엔 최고재무책임자(CFO)가 사용하는 성과 지표로 대부분 세전이익 또는 영업이익만 활용했지만 최근엔 순이익 등도 눈여겨보는 이유다.
SK이노베이션의 세무 관련 정책을 담당하는 이는 박기상 세무전략실장이다. 김양섭 부사장이 이끄는 재무본부 산하 재무1~4실, 구매실과 함께 세무전략실도 CFO 조직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10월 SK배터리(가칭)로 분할하는 배터리 사업부문 규모가 점차 커지면서 세무전략실의 중요성도 점점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해외서 부담하는 세금이 크게 늘면 유효세율이 기업의 손익에 미치는 영향이 막대해지기 때문이다.
◇행정소송 승소 경험, 역으로 소송 당하기도
1967년생인 박기상 실장은 서울대 경영학 석사를 마쳤다. 2017년 말 SK그룹 정기 인사에서 처음 임원(상무)으로 승진했다. 세무1팀장을 담당하다 임원 승진 이후 2018년부터 2019년까지 2년 간 세무담당 임원을 맡았다. 지난해부터 세무전략실장을 이끌고 있다.
조직명에서도 드러나듯 SK이노베이션은 이익 극대화를 위해 세무 업무에도 적극적인 전략을 구사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이다. 기업들이 세금을 통제 불가능한 요소로 여겼던 과거에서 진일보한 모습이다.
최근 들어 분위기는 달라졌다. 행정소송까지 불사하며 세금 비용을 줄이려고 한다. SK이노베이션은 실제로 법인세 소송(법인세등부과처분 취소)에서 승소하기도 했다. 특수관계에 있는 SK C&C에게 부당하게 많은 용역비를 지급했다며 과세당국이 부과한 법인세 소송에서 SK이노베이션은 2017년 승소했다.
역으로 세금 업무 관련 고소·고발을 당하기도 한다. 현재 진행형인 사안으로는 자회사인 SK에너지의 사례가 있다. 검찰은 2017년 6월 SK에너지가 2012년 7월9일에서 2014년 7월24일 사이 공급한 해상유 거래(총 66회)에 관하여 부가가치세법상 세금계산서를 발급하지 않았음을 이유로 조세범처벌법 위반 혐의로 기소했다.
SK에너지는 해당 거래의 상대방이 싱가포르 업체 본사이고, 수출거래에 해당하므로 세금계산서 발급의무가 없음을 주장했다. 1심 재판부는 2020년 2월 일부 유죄를 인정하고, SK에너지에 벌금 9억9137만원을 선고했다. SK에너지에 항소를 제기해 현재 항소심 계류 중에 있다.
◇2017년부터 배터리사업 해외 투자활발...세무전략가 니즈 커
SK이노베이션의 재무조직은 매트릭스 조직이다. SK이노베이션의 전체 재무 관련 업무를 담당하면서 자회사단의 CFO 및 감사역도 맡는다. 박 실장 역시 현재 SK이노베이션의 자회사인 SK에너지와 SK인천석유화학 사내이사를 맡고 있다.
세무담당 임원이 된 첫 해인 2018년 박 실장의 겸임 업무 부담은 상당했다. SK에너지 감사를 맡으면서 SK종합화학의 재무실장(CFO)을 겸임했다. 동시에 △ SKGC Investment Hong Kong Ltd. 대표 △ 중한석화 감사 △ Sinopec-SK(Wuhan) Petrochem. Co. Ltd. 감사 △ SKGC China Ltd. 대표도 맡았다.
2019년에는 겸임 직위가 확 줄어 SK에너지 감사와 SK종합화학 재무실장만 겸임하고 있다. 지난해부턴 SK종합화학 CFO 자리는 내려놓고 대신 SK인천석유화학 사내이사를 맡고 있다.
박 실장의 겸임 업무가 줄어든 것은 SK이노베이션의 배터리 사업 확대와 맞물린 것으로 풀이된다. SK이노베이션은 미국과 유럽 등지에서 공격적으로 생산시설 신설 및 증설을 추진하고 있는데 해외사업 확대는 세금 이슈와도 긴밀하게 연결되기 때문이다.
실제 SK이노베이션의 배터리 공장이 있는 헝가리는 지난해 기준 법인세율이 9%로 세계 최저 수준인데다 투자 규모 및 고용 수준에 따라 세금 감면을 받을 수 있다. SK이노베이션은 헝가리 이반차 지역 제3공장 착공하면서 2028년까지 2조6000억원을 투자한다고 밝혔다.
SK이노베이션 자회사인 SK아이이테크놀로지(SKIET)는 폴란드에서 3분기부터 분리막 양산을 시작하는데 폴란드 역시 헝가리와 마찬가지로 법인세 등의 혜택이 많은 점이 고려됐다. 미국 배터리 공장 투자 역시 마찬가지다. SK이노베이션은 지난 2018년 말 조지아주에 전기차 배터리 공장 건설을 결정했는데, 조지아주는 각종 세제혜택과 각종 행정 지원을 약속했다.
해외사업 비중 증가에 따라 기업의 세무 전략이 중요해지는 것은 세금 부담이 늘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먼저 한국보다 세율이 높은 국가에서 발생하는 소득의 비중이 커지면서 그 나라에서 부담하는 세금이 늘어난다. 여기에 해외에서 벌어들인 소득을 배당을 통해 회수할 때 현지에서 이미 세금을 낸 소득에 대해 국내에서 또 세금을 내야 하는 이중 세부담이 있다. 이로 인해 유효세율이 높아진다.
유효세율(Effective Tax Rate: ETR)은 세금을 차감하기 전의 순이익, 즉 세전이익 가운데 세금이 차지하는 비율을 의미한다. 회계상 법인세 비용을 법인세차감전순이익으로 나눈 것이 법인세 유효세율이다. 세전이익이 1억원인 회사의 세금이 2000만원이라면 유효세율은 20%다. 세전이익이 같다면 세금이 낮을수록 유효세율은 낮아진다.
SK이노베이션의 유효세율은 2015년 41.5%를 차지했다. 이후 2016년 29%, 2017년 33.4%, 2018년 29.4%로 하향 추이를 그렸다. 그러다 2019년 82.5%로 급격히 상승했다. 2020년은 법인세차감전순이익이 적자를 기록하면서 법인세효익이 발생했다.
SK이노베이션의 세무 전략을 책임지는 박 실장은 롤러코스터를 타는 SK이노베이션의 유효세율을 최대한 낮춰 예측 가능한 순이익 체제를 구축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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