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종합화학은 SK이노베이션 자회사 중 ‘효자'로 손꼽힌다. SK이노베이션 전체 자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0%를 조금 넘는 수준이지만 코로나 팬데믹 이전인 2019년 기준으로 전체 영업이익의 절반 이상을 책임지면서 알짜배기 역할을 톡톡히 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자식이지만 위기 앞에 다른 수는 없었다. SK이노베이션이 SK루브리컨츠에 이어 SK종합화학의 소수 지분(49%)마저 매각을 추진 중이다. 분사 예정인 배터리 사업 투자 확대를 위해선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석유화학은 ESG 시대에 투자업계에서 선호하는 업종은 아니다. 생존을 위해서는 ESG 경영에 걸맞는 파이낸셜 스토리를 써나가야 한다. SK종합화학이 6000억원을 투자해 폐플라스틱 자원순환 설비 투자에 나선 것이 우연은 아니다.
파이낸셜 스토리에서 자금 조달은 ‘린치 핀’ 역할을 한다. 원활한 자금조달과 현금흐름을 확보하는 것이 SK종합화학의 CFO 역할을 하고 있는 김정수 SK이노베이션 재무본부 산하 재무1실장에게 주어진 미션이다.
◇김정수 1실장, SK종합화학 CFO 겸임...소수지분 매각 역할
1968년생인 김정수 실장은 서강대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SK이노베이션에서 자금1팀장, 재무4실장 등을 거쳤다. 지난해 말 인사에서 재무1실장으로 발령나면서 SK종합화학 CFO를 겸하게 됐다. 재무1실은 SK이노베이션의 회계 전반 업무를 담당하면서 자회사 단에서는 SK종합화학을 담당하는 매트릭스 조직이다.
김 실장은 줄곧 재무 쪽에만 몸담은 재무통으로 분류된다. 업계는 김 실장이 SK종합화학의 CFO를 맡은 것과 관련 지분 일부를 매각되는 상황이 어느 정도 반영됐을 것으로 보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은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는 SK종합화학 지분 49% 매각을 추진하고 있다. 지난해 매각 주관사로 선정된 JP모간은 조만간 숏 리스트를 선정해 통보할 예정인 것으로 전해진다. 시장에서 거론되는 SK종합화학의 소수 지분 매각 규모는 1조~1조5000억원, SK이노베이션에서는 2조원 이상을 기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소수 지분 매각 대금은 SK종합화학이 아닌 SK이노베이션으로 흘러 들어간다. 그렇다고 SK종합화학 재무쪽에서 손놓고 있을 수만은 없다. 경영권 이양을 수반하지 않기 때문에 소수지분 매각이라고 통칭되지만 전체 지분의 절반가량을 외부에 매각하는 일이기 때문에 중요도가 높다.
향후 원매자가 기타비상무 이사 등 자격으로 SK종합화학 이사회에 참여하는 수순을 밟을 것으로 보인다. 자연스럽게 SK종합화학 재무 전반에 대한 외부의 간섭이 있을 수밖에 없는데 여기에 대항할 카운터파트의 역할을 김정수 실장이 담당하게 된다.
49%에 달하는 지분율은 재무적투자자(FI)가 보유한 물량으로는 상당하기 때문에 향후 엑시트(자금 회수)에 대한 부담도 상당하다. 원매자와 약속한 기한까지 엑시트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풋백옵션을 요구할 수도 있다. 풋백옵션은 재무적 투자자의 보유 지분을 약정대로 되사줄 것을 약속하는 거래다.
이 경우 SK이노베이션의 재무 부담이 고스란히 SK종합화학에 전가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모든 가능성을 상정해 소수 지분 매각에 임해야 하는 만큼 SK이노베이션에 속하면서 SK종합화학 CFO를 맡고 있는 김 실장의 역할이 그만큼 중요하다.
◇투자 재원 확보 및 배당 균형 중심의 파이낸셜 스토리
무엇보다 잠재적 FI를 끌어들일 파이낸셜 스토리를 써나가는 것이 급선무다. ESG 시대에 투자 매력이 감소할 수 없는 화학기업의 가치를 다시 끌어올릴 수 있는 비전을 보여줘야 한다. 그 비전을 보여주는 것은 CEO의 역할일텐데, 그 청사진이 가능할 수 있도록 액션플랜을 가동하는 핵심 주체는 CFO다.
SK이노베이션이 코로나 팬데믹 사태 속에서 적자를 기록하기 이전인 2019년 실적 기준 SK종합화학이 차지하는 매출과 영업이익 비중은 각각 19%, 56%에 달했다. 매출은 SK이노베이션 전체 실적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5분의 1 수준에 불과하지만 영업이익의 절반 이상을 책임지는 기특한 효자였다.
SK종합화학은 2011년 모회사인 SK이노베이션의 사업 분할을 통해 설립된 화학 전문 기업이다. 납사를 원료로 에틸렌, 프로필렌 등 올레핀계 제품과 벤젠, 톨루엔, 자일렌 등 방향족 제품과 이들을 원료로 한 합성수지, 합성고무, 합성섬유 등의 화학 제품 등을 생산한다. 영업이익에서 확인할 수 있듯 전통적인 화학 사업에서 확고한 시장 지위를 점하고 있다.
SK종합화학은 부가가치가 높은 화학소재 사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그간 지분인수를 포함한 투자활동을 활발하게 진행해 왔다. 문제는 ESG 시대에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다. SK종합화학도 이를 인지하고 있다. 최근 들어 친환경을 앞세운 행보가 탄력을 받고 있는 것은 이와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다.
SK종합화학은 올해 폐플라스틱 문제 해결에 혁신적인 기술을 보유한 북미 루프인더스트리에 전략적 투자를 결정했다. 총 5650만 달러(한화 약 630억원)를 투자해 루프인더스트리 지분 10%를 확보했다. 이를 통해 SK종합화학은 루프인더스트리가 보유한 혁신 기술인 해중합 기술을 확보하고, 구체적인 사업화를 위해 아시아 지역 내 재활용 페트 생산 및 판매 독점권을 갖게 됐다.
미국의 폐플라스틱 재활용 기업 퓨어사이클 테크놀로지(Purecycle Technologies)와 합작법인을 설립하기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이후 울산시와 폐플라스틱 자원순환을 위한 친환경 도시유전 사업 투자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이번 협약에 따라 SK종합화학은 2025년까지 약 6000억원을 투자한다.
신사업 진출과 사업 확장에는 필연적으로 대규모 투자가 수반된다. 결국 관건은 자금조달 이슈로 귀결된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SK종합화학의 재무지표가 나쁘지 않다는 점이다.
2020년말 기준 SK종합화학의 연결기준 부채비율은 96.54%, 차입금의존도는 34.38% 수준으로, 재무적 위험이 발생할 가능성은 제한적이다. 같은 기간 연결기준 3133억원의 현금 유동성(현금및현금성자산+단기금융상품)을 확보하고 있다. 순차입금 의존도는 연결 재무제표 기준으로 29.33%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배당도 고려 요소다. 지금까지는 배터리 사업 재원 마련 차원에서 100% 모기업인 SK이노베이션에만 배당을 해왔다. 소수지분 매각 이후에는 자금 회수 차원에서 FI의 배당 확대 요구도 강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관계기업및공동기업투자주식 취득, 유형자산 취득, 사업양수 등으로 인한 투자활동현금흐름 유출과 함께 배당금 지급 등으로 인한 재무활동현금흐름 유출로 대규모 자금 유출 압박이 거세질 수 있다. 김 실장의 어깨가 무거울 수밖에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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