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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대미문' 배터리 소송, '구원투수' 김양섭 CFO 주목

②코로나 19 정유부문 직격탄, 배터리 등 투자금 확대...순차입금 10조원대

박상희 기자  2022-05-12 11:07:13
2011년 출범한 SK이노베이션의 역대 최고재무책임자(CFO)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인물을 꼽으라면 단연 차진석 전 SK하이닉스 부사장이다. 2008년부터 2018년까지 무려 10년 간 SK이노베이션의 재무 전성시대를 이끌었다.

공교롭게도 그가 SK하이닉스로 적을 옮긴 이후 SK이노베이션에 먹구름이 덮쳤다. 2019년 LG화학과의 배터리 특허 소송전이 시작된 것이다. 소송전은 겉으로는 법률 싸움이지만 소송 비용과 합의금 등이 종국에 자금 이슈로 귀결된다는 점에서 재무와 결코 무관치 않다.

소송전과 맞물려 SK이노베이션의 재무 환경은 급박하게 변화했다. 2016~2017년 연결기준 1조원 내외 수준에서 통제되던 순차입금 규모가 2018년 이후 잉여현금흐름 적자 기조 속에서 2020년말 기준 9조8000억원까지 급증했다.

소송 합의로 불확실성은 제거됐지만 대규모 자금 조달 부담을 떠안게 됐다. 신용등급도 하락했다. SK이노베이션이 ‘사면초가’ 형국을 슬기롭게 헤쳐 나갈 수 있을지 여부는 CFO의 손에 달렸다.

◇차진석 전 CFO, 2008~2018년 재무 전성 시대 이끌어

현재의 SK이노베이션이 출범한 건 2011년이다. 차진석 전 CFO는 SK이노베이션이 SK에너지로 불리던 시절인 2008년 부임해 2018년까지 약 10년 간 SK이노베이션의 재무 전성기를 이끈 인물로 평가 받는다.

차 전 CFO는 공무원 출신으로 2000년 SK그룹 구조조정추진본부를 시작으로 SK그룹과 인연을 맺었다. 2008년부터 SK이노베이션의 재무를 맡았다. SK에너지가 SK그룹의 정유 및 석유화학을 담당하는 지주사 SK이노베이션으로 거듭나도록 지배구조의 기틀을 닦기도 했다.

1963년생인 차 전 CFO는 배재고와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뒤 29회 행정고시 재경직에 합격한 공무원 출신이다. 총무처와 국세청, 옛 재정경제부 등을 거쳐 2000년 SK그룹 구조조정추진본부에 왔다. 2008년부터 2018년까지 SK이노베이션의 재무를 맡으면서 성장에 기여해왔다.

특히 중국 시노펙과 사우디 사빅, 스페인 렙솔 등과의 합작법인 설립을 주도하는 등 해외시장 진출에 혁혁한 공을 세웠다고 평가받는다. 10여년 간 SK이노베이션의 재무를 맡아왔던 그는 2018년 말 SK하이닉스로 발령이 나면서 SK이노베이션에 이어 SK그룹 내 핵심 계열사의 재무를 책임지게 됐다.

공교롭게도 차 전 CFO가 떠난 이후 SK이노베이션에는 전대미문의 위기가 닥쳤다. LG화학이 핵심기술 유출 우려가 있는 자사 인력을 빼갔다며 2019년 4월 SK이노베이션을 ITC와 델라웨어주 지방법원에 '영업비밀 침해'로 제소했다. 양측은 그간 국내에서 소송 공방을 벌여왔지만 미국에서 전면 소송전이 벌어지면서 스케일이 커졌다.

올 2월 ITC는 LG에너지솔루션(옛 LG화학)이 SK이노베이션을 상대로 제기한 영업비밀 침해 소송에서 예비 결정을 그대로 인용해 LG에너지솔루션의 최종 승리를 결정했다. SK이노베이션은 이번 결정에서 10년간 수입금지 명령이 내려지며 미국 내 사업에 큰 타격을 받게 됐다.

결국 패소한 SK이노베이션은 LG에너지솔루션에 2조원을 합의금으로 지급하기로 하고 소송전을 마무리했다. 현금 1조원을 올해와 내년에 걸쳐 두 차례 나눠 지급하고, 나머지 1조원은 로열티로 지급할 계획이다.



◇배터리 소송전 중에 CFO 교체, 김양섭 CFO '사면초가' 위기 극복할까

LG와의 배터리 소송전은 SK이노베이션의 재무 정책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왔다. 차진석 전 CFO의 뒤를 이어 SK이노베이션의 재무본부장으로 낙점된 인물은 이명영 부사장이었다. 그는 2019년 SK이노베이션 사내이사로 선임되며 CFO의 위상을 한껏 끌어올렸다.

CFO가 이사회 일원에 포함되는 것은 SK이노베이션에서 이례적인 일이었다. 전임자인 차 부사장의 경우 10년 동안 SK이노베이션의 재무 책임자로 있었지만 이사회 멤버에 포함되지는 않았다. 사내이사로 선임된 이명영 부사장은 성장에 방점을 찍으며 투자 확대를 예고했다. 그러나 LG화학과의 소송전이 본격화되면서 당초 계획과는 다른 시나리오가 전개됐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지난해는 코로나19 팬데믹 발발로 실적도 최악으로 치달았다. 2020년 상반기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유가급락, 대규모 재고관련 손실 발생, BEP(손익분기점)를 하회하는 정제마진 지속 등으로 정유부문에서 2조2000억원의 영업손실이 발생했다.

비정유부문 실적도 전반적으로 부진한 양상을 보이며 연결기준 2조6000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여기에 배터리 및 소재부문 투자규모 확대, VRDS 잔여투자 진행(약 3조9000억원), 자기주식 취득(약 5000억원) 등의 자금 소요가 지속되면서 연말 순차입금 규모가 약 10조원까지 확대됐다.

결국 SK이노베이션은 당시 재무2실장을 맡고 있던 김양섭 부사장을 새로운 재무본부장에 선임했다. 이명영 부사장은 3년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올 정기주총을 끝으로 현재 고문으로 물러났다. 이 부사장이 물러난 이후 SK이노베이션의 이사회는 8명에서 7명으로 줄었다. 사내이사는 김준 사장 1명에 그친다.

이후에도 SK이노베이션을 둘러싼 재무 환경은 악화됐다. LG측과 극적으로 합의했지만 투자 및 배당 부담 지속과 소송 합의금 지급 부담 등으로 악화된 재무구조가 지속될 전망인 점을 이유로 신용등급이 하락했다. SK이노베이션으로는 아쉬움이 클 수밖에 없다.

신임 김양섭 본부장은 배터리 사업부 분사 카드를 비롯한 다양한 카드를 꺼내들며 분위기 반전을 노리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이 써나가는 파이낸셜 스토리에서 김 본부장의 역할에 관심이 쏠리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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