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인 사이에서 '애플망고빙수 열풍'을 일으킨 원조로 잘 알려진 호텔신라는 사실 애플망고빙수를 포함한 호텔 사업보단 면세 사업의 매출 비중이 더 크다. 면세 사업에서 전체 매출의 80%가 나온다. 그런 이유로 호텔신라의 재무를 총괄하는 CFO는 TR(Travel Retail), 즉 면세 부문 지원팀장이 겸직해 왔다.
올해 들어 2018년부터 재무를 담당하던 김준환 CFO가 부사장으로 승진하고 부진한 면세점 사업을 다잡기 위해 TR부문장으로 보임했다. 김 부사장의 이동으로 자연스럽게 CFO도 바뀌었다. 김 부사장과 함께 사내 재무 전문가로 꼽히는 조병준 호텔신라 TR부문 지원팀장(상무,
사진)의 역할론에 이목이 쏠린다.
◇전략영업 전문가 TR부문장에 전임 CFO 배치, 복잡한 업황 고려 호텔신라의 CFO가 바뀐 건 약 6년 만의 일이다. 전임 CFO였던 김준환 상무가 2025년 정기 임원인사를 통해 부사장으로 승진했고 이어 면세점 수익 제고의 숙제를 안고 TR부문장으로 발령난 결과다.
김 부사장은 삼성전자 출신으로 2014년 호텔신라 경영지원실 재무그룹장으로 합류했다. TR부문 재무그룹장을 거쳐 2018년부터 TR부문 경영지원팀장을 역임했다. 줄곧 재무 라인에 몸담아 온 사내 '재무통'으로 꼽힌다.
그간 호텔신라의 TR부문장 자리는 전략·영업을 경험한 전문가의 몫이었다. 다만 전임 CFO인 김 부사장이 합류하면서 이 구도에도 변화가 생겼다.
호텔신라가 전임 CFO를 TR부문장을 배치한 것도 호텔신라의 면세 사업을 둘러싼 대내외적 환경이 녹록지 않기 때문이다. 크게는 면세점 매출의 큰 부분을 차지하던 중국의 다이궁(보따리상)이나 유커(단체관광객) 수요가 회복되지 않았다. 원화가치가 하락해 면세점의 가격 경쟁력까지 흔들리는 것도 염두에 둬야 했다.
여러모로 지금은 영업 드라이브에 나서기보다 재무에 능통한 CFO를 통해 내실을 다지기에 주력해야 한다는 시기라고 판단했다. 특히 앞서 호텔신라의 인사구도에선 위기 상황에 놓였을 때 재무라인 혁신으로 길을 찾아 오던 삼성그룹의 인사 전통도 엿보인다.
◇조병준 CFO, 체질 개선 방점 둔 재무 관리+사내이사 선임 여부 관건 김 부사장으로부터 CFO 배턴을 이어받은 조 상무는 1972년생이다. 홍익대학교 산업공학과를 졸업한 후 항공대학교에서 경영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삼성물산으로 1997년 입사했다가 2009년부터 호텔신라에서 재직 중이다.
조 상무는 앞서 김 부사장과 함께 호텔신라 내에서 손꼽히는 재무통으로 꼽힌다. 특히 TR 부문에서 장기간 근무하며 면세사업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전문가로 평가받고 있다. 2016년 TR부문 경영관리그룹장, 2019년에는 TR부문 재무그룹장을 각각 맡아 면세점 재무관리를 책임졌다. 2020년 정기인사에서 상무로 승진했다.
조 신임 CFO는 여러 악조건 속에서 호텔신라의 본질적인 체질 개선을 도모하는 미션을 부여받았다. 선임 CFO인 김 부사장도 재직 기간 동안 재무구조 개선에 적잖은 역량을 쏟아왔다. 2024년엔 1300억원 규모의 교환사채(EB)를 활용하는 묘수를 선보이면서 400%가 넘던 부채비율도 300% 수준으로 잡는 데 성공했다.
다만 코로나19 이후로 침체기를 보이는 매출액을 당장 끌어올리긴 쉽지 않다. 당장 수익성이 개선되지 않는 상황에서 더 세밀한 재무 운용의 묘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세부적으로 호텔신라 TR부문은 2019년까지는 5조원이 넘는 매출을 냈지만 2020년 코로나19 직격탄을 맞으며 급감하기 시작했다.
2024년 3분기까진 약 2억5230억원의 매출을 내다가 3분기 말 기준 누적 373억원의 영업손실을 입으며 부문 적자 전환도 우려된다.
전임 CFO이자 사내이사였던 김 부사장이 부문장으로 신규 보임하면서 시작된 연쇄 변화는 다시금 CFO를 사내이사로 두는지 여부로 일단락될 전망이다. 마침 김 부사장의 사내이사 임기는 올해 3월을 기점으로 마무리된다. 현재로선 앞서 CFO가 사내이사로 오르는 전통을 유지하는 쪽으로 무게가 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