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심이 투자 확대 국면에 진입한 가운데 현금성자산이 1조원에 육박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본업인 라면사업의 경쟁력에서 나오는 안정적인 영업활동 현금흐름을 바탕으로 물류단지 구축 등을 위한 차입을 늘리면서 곳간을 채우고 있다.
농심의 올해 9월 말 연결 재무제표(이하 동일) 기준 현금성자산(단기금융상품 포함)은 9915억원으로 지난해 말 7281억원보다 2600억원가량 증가했다. 연간 기준으로 1조원 이상의 현금보유고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
현금 및 현금성자산이 1918억원, 만기 1년 이내 금융상품 6531억원, 투자목적 채권 등을 비롯한 기타금융자산이 1466억원이다. 현금성자산에서 총차입금(1944억원)을 뺀 순현금은 7971억원이다.
안정적인 현금흐름 속에서 유동성이 크게 확대되고 있다. 농심은 단일 제품 매출 1조원을 돌파한 브랜드 '신라면'을 앞세워 경기변동에 크게 영향을 받지 않는 사업구조를 띠고 있다. 지난해 연간 3000억원 이상의 영업활동 현금흐름을 기록했고 올해는 9월까지 2050억원의 현금이 영업을 통해 들어왔다. 2021년과 2022년에는 1600억원씩 곳간에 현금이 유입됐다. 2018~2020년에는 연평균 1800억원의 영업활동 현금흐름을 기록했다.
현금보유고가 1조원에 육박하는 가운데 올해는 교환사채(EB)를 발행하며 차입을 확대한 게 특징이다. 농심은 지난 8월 보유 자기주식 전량인 30만19주를 활용해 1385억원의 EB를 발행했다. 올해 9월 말 총차입금은 1944억원으로 2022년, 2023년 말 기준 각 600억원대 총차입금과 비교하면 EB 발행액 만큼 늘었다.
메자닌 발행은 농심의 재무 정책에서 이례적인 일이다. 그 전에는 2005년 사모전환사채(CB)를 찍어낸 게 마지막이다. 2006년에 CB 잔액 100억원이 남았었고 그 이후 부터는 사채발행 잔액이 없다.
현금 비축과 EB 발행은 미래 투자에 대비하기 위한 자금 조달 성격이다. 농심은 올해 6월 울산삼남물류단지 투자(2290억원), 8월 녹산수출전용공장 투자(1918억원) 계획을 밝혔다. 삼남물류단지 투자는 3년 동안 연평균 760억원씩, 녹산수출공장 투자는 2년간 960억원씩 투입될 예정이다.
농심은 앞서 2021년 말 기준 총차입금 1000억원을 넘긴 적이 있다. 이듬해 4월 준공된 미국 2공장 건설에 따른 투자비가 늘어난 영향이었다. 자체 영업활동 현금흐름으로 충당하면서 최소한의 차입으로 투자비를 감내해 왔다.
EB 발행 영향으로 올 들어 재무활동 현금흐름의 경우 9월까지 1066억원을 기록했다. 2019년(178억원) 이후 재무활동 현금흐름이 플러스를 기록한 것은 올해가 처음이다. 차입 상환보다 조달에 무게 추가 실렸다는 의미다.
농심의 유동성은 주요 식품업체와 비교해도 규모와 비중 측면에서 눈에 띈다. 연결 재무제표에 물류기업 CJ대한통운을 포함하고 있는 CJ제일제당을 제외하고 비교해보면 9월 말 기준 식품업계에서 농심의 현금성자산이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라면 경쟁사 오뚜기, 삼양식품을 비롯해 주요 식품사보다 곳간은 넉넉했다. 하위 7개 기업의 현금을 합친 것과 맞먹었다. 자산총계에서 현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농심의 경우 28%를 상회했다. 이 수치도 주요 식품기업 중 가장 크다. 농심의 순현금(7971억원)은 오리온(8313억원)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규모다. 식품업체 대부분 현금보다 차입이 많은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