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천NCC가 기한이익상실(EOD)을 걱정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 업황 악화로 순손실이 계속되면서 부채비율이 채권자들과 약속한 기준선에 가까워졌기 때문이다. 재무특약이 걸린 회사채 규모는 4600억원에 이른다. 최근 여천NCC가 유상증자, 신종자본증권(영구채) 발행 등 자본확충을 검토하고 있는 배경이다.
9월 말 현재 여천NCC의 총차입금은 리스부채를 포함해 1조7970억원을 기록했다. 이 가운데 7800억원 정도를 회사채로 조달했으며 대부분 차환이나 원재료(나프타) 구매 자금으로 썼다. 눈여겨볼 부분은 회사채 절반 이상에 재무약정이 걸려 있다는 점이다.
여천NCC는 72-2회(1300억원), 73-2회(600억원), 74회(1200억원), 78회(1500억원) 등 총 4600억원 규모의 공모 회사채에 대해 사채관리 계약을 체결했다. △부채비율 400% 이하 유지 △자기자본의 30% 이하 담보권설정 △자산처분 5000억원 이내로 제한 △최대주주 변경 제한 등이다.
문제는 부채비율에 있다. 올해 300%를 돌파했는데 당분간 차입을 의미 있게 줄이기도 어려워서다.
여천NCC는 2021년 유가가 오르자 판가 인상과 판매물량 증가 덕분에 매출이 급증하는 효과를 누렸다. 하지만 같은 해 하반기에 이미 주요 원재료인 납사 값이 비싸지고 주요 제품 스프레드가 축소되는 등 수익성 하락세가 시작되고 있었다.
설상가상 2022년엔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기초유분 최대 소비국인 중국이 코로나로 봉쇄정책을 감행한 데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나프타 가격까지 치솟아 악재가 겹쳤다. 결국 그 해 당기순이익이 마이너스(-)3477억원을 기록하면서 대규모 손해를 봤다. 이후 3년째 순손실 기조가 계속되고 있다.
현금창출력이 나빠진 탓에 여천NCC는 재무안정성도 계속 악화하고 있다. 총차입금이 2018년 4000억원대에 불과했으나 지난해 말 1조8737억원까지 증가했다. 부채는 불어나는 반면 자기자본은 매년 줄어드는 중이다. 연이은 순손실이 자본을 깎아먹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여천NCC는 2015년 이후 자기자본이 쭉 1조원 이상을 유지했었다. 하지만 작년 말 8700억원 규모로 급감하더니 올해는 7000억원대까지 떨어졌다. 그 탓에 올 6월 말 부채비율이 346%로 치솟기도 했다. EOD를 피하기 위해선 약정상 400% 이하를 유지해야 하는데 위험선에 지나치게 가까워진 셈이다.
최근 대대적인 차입 감축에 나선 것도 이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여천NCC는 2017년 이후 올해 7년 만에 처음으로 잉여현금흐름(FCF)이 순유입(+)을 나타냈다. 상각전영업이익(EBITDA) 흑자전환에 성공하면서 1100억원 규모의 영업활동현금흐름이 유입됐고 설비투자 등 지출은 최소화한 덕이다. 2024년 여천NCC가 유형자산이나 무형자산 취득에 쓴 금액은 9월까지 140억원에 불과했다.
하지만 잉여현금을 남겼는데도 불구 9월 말 기준 현금성자산은 3억원에 그쳤다. 사실상 금고가 텅 빈 것과 다름없다. 있는 돈을 전부 차입 상환에 썼기 때문이다. 회사는 올해 초부터 9개월 동안 3조7338억원의 차입금을 상환했다. 대부분 차환이고 순상환한 금액을 따지면 938억원 수준이다. 이 기간 잉여현금이 949억원이니 거의 전부를 빚 갚는 데 쓴 것으로 짐작된다.
덕분에 346%였던 부채비율을 9월 말 321%로 낮아지긴 했으나 여전히 안심하긴 어렵다. 올해의 경우 기초유분 중 부타디엔 가격이 오르고 가동율도 상승하면서 적자폭을 축소할 수 있었으나 주력제품인 에틸렌과 프로필렌 수요부진은 내년 이후로도 확대될 전망이기 때문이다. 여천NCC는 기초유분만 생산하는 사업구조상 수익성 방어가 쉽지 않다.
업계 관계자는 "지금 여천 NCC는 더딘 현금창출력 회복뿐 아니라 이자비용도 부담"이라며 "고정적으로 나가는 지출을 고려하면 설비투자를 아무리 줄여도 부채비율 유지가 어렵기 때문에 EOD를 막기 위해선 자본확충이 불가피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여천NCC는 현재 연 800억원 안팎을 이자로 내고 있다. 지급일 기준으로 지난해 781억원, 올해의 경우 9월 말 기준 656억원을 이자로 지출했다. 연환산하면 870억원 규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