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토는 과일일까 채소일까. 무슨 양자역학도 아닌데 놀랍게도 통일된 의견이 없다. 식물학적으론 과일이지만 법원 말은 다르다. 1893년 토마토의 정체를 둘러싸고 관세 싸움이 붙자 미국 대법원은 ‘식사의 중요한 일부이므로 채소’라고 했다. 생각보다 세상에 분명한 게 드물다.
그래서 유명한 속담도 있다. “오리처럼 보이고, 오리처럼 헤엄치고, 오리처럼 꽥꽥거리면 그건 오리겠지.(If it looks like a duck, swims like a duck, and quacks like a duck, then it probably is a duck.)” 이른바 ‘오리 테스트’라 불린다. 별다른 문제가 없는 이상 그냥 생긴대로 귀추하겠다는 얘기다.
국무위원들이 최근 비상계엄 사태에 대해 기립 사과했다. 미국 국무부 부장관은 계엄령 시도를 불법적인 과정이었다고 못 박았다. 경제전문지 포브스는 계엄의 대가를 국민 모두가 할부로 치르게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쯤 되면 계엄은 분명 오판의 형태를 띠고 오판처럼 들린다.
누가 봐도 잘못된 판단을 왜 저지하지 못했을까. 국무위원 전원이 계엄 선포에 반대했지만 국무회의에 절차적, 실체적 흠결이 있었다고 총리는 주장했다. 계엄공고문 자체를 보지 못했다는 장관도 있다. 말이 갈리긴 해도 국무회의 운영에 문제가 있었던 것은 맞는 모양이다.
이런 국무위원과 국무회의 체계는 기업 이사회 경영과 닮아 있다. 오너, 경영진의 명약관화한 오판만은 막으라고 있는 것이 이사회다. 하지만 THE CFO가 500개 상장사의 이사회 기능을 평가해 보니 경영진 없는 사외이사 회의를 매년 5회 이상 여는 기업이 흔치 않았다. 이사회 의장을 오너가 맡고 있는 경우도 상당했고 사외이사를 외부에서 투명하게 추천받는 기업도 찾기 어렵다. 견제기능이 여전히 어설프다는 뜻이다.
일본 올림푸스(Olympus)의 회계 부정사건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이 회사는 기쿠카와 쓰요시 회장을 비롯한 경영진이 20년간 1000억엔이 넘는 분식회계를 주도했다. 이사회 역시 조작을 방조했는데 사건을 폭로한 것은 외국인 최고경영자로 온 우드포드 사장이다. 우드포드는 이사회에 회계 부정, 경영 불투명에 대해 항의하는 서신을 보낸지 3일 만에 해고됐다.
사건을 조사한 제 3자위원회는 제 역할을 못한 이사회와 감사위원회를 신랄하게 비판한다. 또 정부는 대기업의 부정행위를 방지하기 위한 사외이사제도를 의무화했으며 금융청(FSA)은 사외이사 독립성과 외부감사 절차를 강화하기도 했다. 거버넌스 개혁의 중요성이 대두된 사건이다.
경영진 간섭에서 자유로운 이사회 운영이 중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대단히 지혜로운 혜안을 내놓진 않더라도 아주 뻔한 사실은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오리처럼 생긴 게 오리처럼 뒤뚱대면 오리가 맞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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