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기업 지배구조의 핵심인 이사회. 회사의 주인인 주주들의 대행자 역할을 맡은 등기이사들의 모임이자 기업의 주요 의사를 결정하는 합의기구다. 이곳은 경영실적 향상과 기업 및 주주가치를 제고하고 준법과 윤리를 준수하는 의무를 가졌다. 따라서 그들이 제대로 된 구성을 갖췄는지, 이사를 투명하게 뽑는지, 운영은 제대로 하는지 등을 평가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국내에선 이사회 활동을 제3자 등에게 평가 받고 공개하며 투명성을 제고하는 기업문화가 아직 정착되지 않았다. 이에 THE CFO는 대형 법무법인과 지배구조 전문가들의 고견을 받아 독자적인 평가 툴을 만들고 국내 상장기업을 대상으로 평가를 시행해 봤다.
이사회는 기업의 경영성과 향상에 직접적으로 기여하는 기구다. 효과적이며 효율 높은 이사회 운영은 당장은 아닐지라도 훗날 기업가치 증대로 이어진다. 선진국에서 먼저 이사회 중심 경영이 뿌리내려 이제는 정착된 배경이다.
다만 당장 오늘의 안위를 걱정해야 하는 기업에게는 시도 자체가 도전일 수 있다. 영진약품이 그렇다. 각고의 정상화 노력으로 수 년 간 누적된 순손실을 극복하는 문제 앞에서 이사회 경영은 허울 좋은 이야기가 됐다. 공통지표가 전부 2점대로 미흡한 것도 빡빡한 작금의 상황에서 이유를 찾을 수 있다.
◇255점 만점에 110점, 3점 이상 항목 전무 THE CFO는 자체 평가 툴을 제작해 '2024 이사회 평가'를 실시했다. 올 5월 발표된 기업지배구조보고서와 2023년 사업보고서, 2024년 1분기 보고서 등이 기준이다. 6대 공통지표(△구성 △참여도 △견제기능△정보접근성 △평가 개선 프로세스 △경영성과)로 영진약품의 이사회 운영과 활동을 분석한 결과 255점 만점에 110점으로 산출됐다.
영진약품 기록한 100점대 초반 총점은 유가증권시장 상장 기업 가운데서도 하위권에 속한다. 특히 전 부문이 3점에 미달하면서 이사회 경영을 둘러싸고 상당히 낮은 성취도를 보였다.
그 가운데서도 정보접근성, 평가개선프로세스는 2.0점, 구성 지표는 2.1점으로 특히 낮았다. 2024년 1분기 말 기준 영진약품의 이사회 전체 구성원은 4명에 불과했다. 꽤 오랫동안 수익성이 회복되지 않는 상황에서 수많은 이사가 드나들며 바뀌었을 뿐 이사회 규모를 확장을 시도하긴 어려웠다.
영진약품이 이사회를 매만질 겨를이 없었던 건 3년간 실적 부진 속 투자 확대로 370억원이 넘는 순손실이 축적된 것으로도 확인할 수 있다. 2022년 말부터 1년간은 자기자본이 납입자본보다 작은 자본잠식 상태에 빠지기도 했다. 이 기간 한 때 영진약품의 현금성자산은 10억원을 밑돌기도 했다.
운전자본과 종합적인 현금흐름을 고려하면 차입은 필수적이었다. 2023년 말 총차입금이 669억원으로 2020년 말 73억원 대비 4년 만에 9배 넘게 늘어났다. 세부적으로 작년 2월 모회사 KT&G로부터 4.6% 금리로 45억원을 차입했다. 11월에는 303억원 규모 전환사채를 발행해 외부 조달에 나섰다.
◇미흡해도 개선 노력은 계속된다 '경영성과'도 조금씩 반등 영진약품이 이사회 변화를 위해 노력한 부분도 있다. 회계처리 위반이 기폭제가 돼 KT&G로 최대주주가 바뀌는 우여곡절 속에서도 감사위원회와 관련한 나름의 전통을 유지하고 있다. 영진약품은 2006년 감사위원회 운영규정을 처음 제정했고 2021년 전부개정을 거쳐 현재까지 이어오고 있다.
자산총계 등을 고려할 때 영진약품은 감사위원회 설치 의무 대상은 아니다. 그럼에도 20년 가까이 나름의 전통을 유지하면서 감사위원회를 포함한 이사회 지원을 위한 나름의 틀을 갖췄다. 임원급 수장을 배치하고 예산을 들여 이사 및 감사위원에 대한 교육을 실시하는 게 일례다.
2023년 이후 이사진이 1명 줄었지만 이 과정에서 사외이사 비중을 75%까지 끌어올린 점이 눈길을 끈다. 특히 앞서 이사진은 100%에 가까운 출석률을 보이며 불비한 여건과 상황 속에서도 이사회 경영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 영진약품이 전체 지표 가운데 참여도 항목에서 가장 높은 2.8점을 받은 배경이다.
경영성과의 경우 주가순자산비율과 매출성장률, 영업이익성장률이 KRX300 소속기업 평균치 대비 아웃퍼폼했지만 그밖의 부문은 모두 최하점을 기록했다. 특히 재무건전성 여부를 따지는 △부채비율 △순차입금/EBITDA △이자보상배율은 모두 비교기업 평균치를 밑돌았다.
그럼에도 올해 들어 수익성 지표가 개선되는 점은 주목할 부분이다. 특히 올해 상반기엔 잉여현금흐름(FCF)이 순유입 80억원을 기록했다. 전년 동기엔 FCF 순유출 금액이 55억원 정도였는데 반전에 성공했다. FCF는 회사가 쓸 돈을 다 쓰고 남아 가용할 수 있는 현금을 의미한다.
수익 성장이나 효율 개선에 의해 FCF가 증가하는 기업은 추가 R&D 투자나 배당 등을 늘릴 여력이 있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에 긍정적으로 평가된다. FCF 순유입을 만든 것은 최근 15년가량 동안 유례를 찾기 힘든 일이었다. 앞서 이사회를 둔 변화를 위한 작은 노력이 경영성과 개선으로까지 이어질 지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