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기업 지배구조의 핵심인 이사회. 회사의 주인인 주주들의 대행자 역할을 맡은 등기이사들의 모임이자 기업의 주요 의사를 결정하는 합의기구다. 이곳은 경영실적 향상과 기업 및 주주가치를 제고하고 준법과 윤리를 준수하는 의무를 가졌다. 따라서 그들이 제대로 된 구성을 갖췄는지, 이사를 투명하게 뽑는지, 운영은 제대로 하는지 등을 평가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국내에선 이사회 활동을 제3자 등에게 평가 받고 공개하며 투명성을 제고하는 기업문화가 아직 정착되지 않았다. 이에 THE CFO는 대형 법무법인과 지배구조 전문가들의 고견을 받아 독자적인 평가 툴을 만들고 국내 상장기업을 대상으로 평가를 시행해 봤다.
한일시멘트와 한일현대시멘트 등을 거느리고 있는 한일홀딩스는 이사회 구성 면면이 취약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사회 독립성 확보와 투명성 제고를 위해 오너 일가와 경영진이 이사회 의장직을 맡고 있지 않지만 실질적으로 사외이사 후보 선임이 이사회를 통해 이뤄지고 사내이사 주도로 의사결정이 이뤄지는 점 등이 도마 위에 올랐다.
◇ 사외이사에 이사회 의장 맡겼지만 실질적 기능은 '글쎄' THE CFO는 자체 툴을 제작해 '2024 이사회 평가'를 실시했다. 올 5월 발표된 기업 지배구조보고서와 2023년 사업보고서, 2024년 반기보고서 등을 참고했다. 6대 공통지표(△구성 △참여도 △견제기능△정보접근성 △평가 개선 프로세스 △경영성과)로 이사회 운영 및 활동을 분석한 결과, 한일홀딩스는 255점 만점에 118점을 획득했다.
6개 공통지표는 각 지표당 많게는 11개 적게는 7개 문항으로 이뤄져 있다. 각 문항 만점은 5점이다. 구성 항목의 개별 문항 평균 점수가 1.8점으로 전체 항목 중 가장 낮았다. 6개 평가 항목 중 문항 당 평균 점수가 1점대인 영역은 구성 영역이 유일하다. △견제기능 △평가개선프로세스 △참여도 △정보접근성 △경영성과 순으로 낮았다.
지난 3월 말 기준 한일홀딩스 이사회는 사내이사 2명과 사외이사 1명 등 총 3명의 등기이사로 구성돼 있었다. 한일홀딩스는 허기호 회장과 그의 일가가 오너십을 쥐고 있지만, 허 회장은 사내이사로 이사회에 참여할 뿐, 이사회 의장은 정종호 사외이사가 맡고 있다. 서울대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정 이사는 올 3월 신규 사외이사로 선임됐다.
한일홀딩스는 기업지배구조보고서에서 이사회 독립성 강화와 투명한 지배구조 체계 구축을 위해 사외이사를 이사회 의장으로 선임했다고 밝히고 있지만, 사외이사 선임이 이사회 주도로 이뤄지는 점을 비롯해 사내이사가 이사회 의사결정을 주도하고 있다는 점에서 현 이사회 구조가 완전한 독립성을 구축했다고 보기엔 어려워 보인다.
지난 3월 말 한일홀딩스의 개별 자산규모는 9222억원으로 감사위와 사추위 등 설치 의무로부터 자유롭다. 하지만 자산규모가 2조원 미만인 상장사라도 자발적으로 이사회 산하 소위원회를 구축하고 있는 곳이 존재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긍정적 평가를 내리긴 어렵다. 이사회를 소수의 이사진으로 구성한 점도 감점 요소로 작용했다.
◇ 견제기능도 취약…경영성과로 상당 점수 만회 성공 이사회 견제기능도 취약한 편이다. 우선 사외이사 후보 선임 과정을 이사회가 주도하고 있다 보니 사외이사가 완전한 독립성을 확보하기 어렵다. 복수의 사외이사가 있다면 사외이사 회의를 통해 이사회 안건에 독립적인 의견을 낼 수도 있겠지만 한일홀딩스의 경우 사외이사는 단 한 명뿐으로 여건이 주어져도 토의가 어려울 수밖에 없다.
이사회 내 최고경영자 승계정책을 마련하고 있지 않은 점을 비롯해 내부거래 전담 조직 없이 이사회가 관련 내용을 통제하고 있는 점도 견제기능 항목 점수 확보에 장애물로 작용했다. 부적격 임원 선임을 방지하는 명문화된 정책은 마련하고 있지 않지만, 임원선임 과정에서 이사 자격요건 준수여부를 확인하고 있어 추가 감점을 막았다.
평가개선프로세스 항목의 경우 이사회 평가를 비롯해 사외이사 평가 등을 별도로 수행하고 있지 않은 점과 이에 따른 개선안 마련과 재선임 반영 정책이 부재한 점 등이 발목을 잡았다. 한국ESG기준원 등 외부 거버넌스 평가기관이 한일홀딩스 ESG등급으로 평균 A등급(거버넌스 B+등급)을 매기면서 상당 점수를 만회하는 데 성공했다.
참여도 항목의 경우 소위원회가 전무하다는 점이 부정적 평가를 받으면서 좋은 점수를 받는 데 실패했다. 참여도 항목을 구성하고 있는 문항에는 감사위 등 소위원회 회의의 개최 빈도수를 묻는 문항이 포함돼 있다. 작년 한 해 이사진의 이사회 참여율이 90% 이상인 점과 사외이사 교육이 총 3차례 이뤄진 점 등은 비교적 호평을 받았다.
정보접근성 항목의 경우 이사회 활동 내용이 비교적 잘 공개돼 있다는 점을 비롯해 배당 확정일이 배당 기준일보다 앞서지 않고 있다는 점 등이 개선할 점으로 꼽혔다. 가장 높은 평가를 받은 경영성과 항목은 매출성장률과 이익성장률 등이 KRX300 구성종목 평균(상·하위 10% 제외)을 크게 웃돌아 6개 항목 중 최고점을 받는 데 성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