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이사회는 회사의 업무집행에 관한 사항을 결정하는 기구로서 이사 선임, 인수합병, 대규모 투자 등 주요 의사결정이 이뤄지는 곳이다. 경영권 분쟁, 합병·분할, 자금난 등 세간의 화두가 된 기업의 상황도 결국 이사회 결정에서 비롯된다. 그 결정에는 당연히 이사회 구성원들의 책임이 있다. 기업 이사회 구조와 변화, 의결 과정을 되짚어보며 이 같은 결정을 내리게 된 요인과 핵심 인물을 찾아보려 한다.
HL홀딩스가 발행주식총수의 4.6%에 해당하는 자사주를 신설 재단법인에 무상 출연하기 한 결정을 두고 이사회의 견제기능이 제대로 작동했는지 여부가 쟁점으로 떠올랐다. HL홀딩스 이사회는 이번 안건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HL홀딩스는 이사회 의장을 오너인 정몽원 회장이 맡고 있다. 그럼에도 오너인 이사회 의장을 견제할 선임사외이사를 선임하지 않고 있으며 사외이사만으로 이뤄진 회의를 개최하고 있지도 않다. 2015년 12월 이후 사외이사가 이사회에서 반대표를 던진 사례는 한 건도 없다.
◇자사주 4.6% 재단 무상출연…이사회 의장은 오너인 정몽원 회장
HL홀딩스는 지난 11일 보유하고 있는 자사주 중 일부인 47만193주를 재단법인에 무상 출연하기로 결정했다고 공시했다. 이번에 무상 출연하는 자사주는 발행주식총수(1016만9410주)의 4.6%에 해당한다. 보유하고 있는 자사주(76만5533주) 중 지난 13일 29만5340주(2.9%)를 소각하고 남은 전체 물량이다.
이번 재단법인으로의 자사주 무상 출연을 두고 정몽원 회장의 경영권을 강화하려는 의도라는 논란이 있다. 정 회장의 HL홀딩스에 대한 지분율이 25.03%에 그치는 만큼 재단법인으로의 자사주 무상 출연을 통해 해당 자사주만큼의 우호지분 확보 효과를 노린 것이라는 지적이다. 이를 위해 HL홀딩스는 재단법인을 새로 만들기까지 했다. 현재 재단법인 설립을 위한 주무관청의 인허가를 기다리고 있는 단계다.
이번 자사주 무상 출연은 공시 당일이었던 지난 11일 HL그룹 계열사인 목포신항만운영 대회의실에서 열린 HL홀딩스 이사회에서 결정됐다. 회사 측은 자사주 무상 출연 목적을 '사회적 책무 실행'으로 명시했다. 이사회에는 이사 총원 7명이 모두 참석했으며 자사주 무상 출연 안건을 만장일치로 승인했다. 반대한 이사는 없었다. HL홀딩스 측은 이사회 의사록을 통해 "참석한 이사는 충분한 검토를 하고 신중한 토의를 거쳤다"고 밝혔다.
다만 이사회의 견제기능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애초 HL홀딩스 이사회 의장은 최대주주이자 HL그룹 오너인 정 회장이 맡고 있다. 일반적으로 사외이사의 이사회 의장 선임은 이사회의 독립성 확보를 위한 기본적인 조건 중 하나로 본다. 정 회장은 HL홀딩스 대표이사는 아니지만 사내이사다. 정 회장은 만도 시절을 포함해 24년 넘게 HL홀딩스 사내이사 자리를 지키고 있다.
◇선임사외이사 없고 사외이사만의 회의 부재…이사회 독립성 쟁점 부상
여기에 나머지 사내이사 두 자리를 김광헌 그룹공통총괄(지주부문) 대표이사 사장과 김준범 사업부문 대표이사 사장이 차지하고 있다. 두 사장 모두 HL그룹 소속 기간이 긴 '한라맨'이다. 김광헌 사장은 HL만도 최고전략책임자(CSO)를, 김준범 사장은 HL홀딩스 그룹기획실장과 정도경영실장을 각각 지냈다.
HL홀딩스는 사외이사가 4명으로 이사 총원(7명)에서의 비중이 절반을 넘는다. △김명숙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용덕 전 KB국민은행 여신그룹 그룹대표 부행장 △정지선 서울시립대 세무전문대학원 세무학과 교수 △조국현 하와이 퍼시픽대 경영학과 교수 겸 더블유아이알파트너스 대표이사가 사외이사로 선임돼 있다.
HL홀딩스에 따르면 재단법인 설립 계획은 지난 3분기 정기 이사회 때 이사들에게 공유가 됐다. 이후 재단법인으로의 자사주 무상 출연과 관련된 안건은 이번 이사회 개최일로부터 10일 전에 각 이사에 통지했다. 이후 개최일로부터 4일 전에 안건 관련 자료를 송부했으며 개최일로부터 3일 전에 사외이사들을 대상으로 사전 설명회를 열었다.
그럼에도 사외이사의 사내이사 또는 오너에 대한 견제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수밖에 없는 구조적인 문제가 지목된다. 일반적으로 이사회 의장이 사내이사 또는 오너일 경우 이사회의 독립성 확보를 위해 선임사외이사 제도를 도입한다. 하지만 기업지배구조보고서에 따르면 HL홀딩스는 선임사외이사를 선임하지 않고 있다.
여기에 사외이사만으로 이뤄진 회의를 개최하고 있지도 않다. 실제로 2015년 12월 이후 HL홀딩스 이사회에서 사외이사가 반대표를 던진 사례는 한 건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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