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들어 정몽원 회장이 HL홀딩스 우호지분을 전방위로 확보하고 있다. 두 딸이 장내에서 지분을 사들인 데 이어 재단법인을 신설해 자사주를 무상 출연하기까지 했다. 합산 지분율이 30%에 육박하는 기관투자자에 대항해 경영권을 방어하기 위한 의도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HL홀딩스가 무상 출연하기로 한 자사주 '4.6%'의 의미는 무엇일까. 언뜻 보면 주주환원 계획에 따라 약 100억원 규모 자사주를 소각한 뒤 남는 물량이다. 하지만 자사주 소각을 지속할 계획을 내놓은 만큼 HL홀딩스에 대한 재단법인의 지분율은 꾸준히 상승할 가능성이 높다.
◇정몽원 회장 우호지분 전방위 확보…기관투자자 대항 경영권 방어
HL홀딩스가 이번에 신설 재단법인에 무상 출연하기로 결정한 자사주는 47만193주다. 발행주식총수의 4.62%에 해당한다. 보유하고 있던 자사주(76주5533주) 중 지난 13일 일부(29주5340주·2.90%)를 소각하고 남은 전량이다.
재단법인이 일정 지분을 확보하면 HL그룹 오너이자 HL홀딩스 최대주주인 정몽원 회장은 우호지분을 확보하는 효과가 있다. 올해 3분기말 기준으로 정 회장의 지분율은 25.03%로 특수관계인을 포함해도 31.58%다. 여기에 재단법인이 보유할 주식까지 포함하면 특수관계인 합산 지분율은 36.20%로 불어난다.
정 회장의 우호지분 확보는 올해 들어 이번 재단법인으로의 무상 출연뿐 아니라 전방위로 이뤄지고 있다. 정 회장의 두 딸인 장녀 정지연 씨와 차녀 정지수 씨가 올해 들어 장내매수로 지분율을 크게 늘린 사례가 대표적이다. 정지연 씨 보유주식은 지난해말 845주(지분율 0.01%)에 불과했지만 올해 3분기말 11만5600주로 불어났다. 지분율로 따지면 1.14%다. 정지수 씨 보유주식도 같은 기간 1672주(0.02%)에서 11만5600주(1.14%)로 불어났다.
두 딸의 장내매수에 이어 재단법인으로의 자사주 무상 출연까지 정 회장이 우호지분 확보에 전방위로 나서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정 회장의 지배력이 비교적 약한 가운데 HL홀딩스에 가치투자 자산운용사 중심의 기관투자자들이 대거 주주로 진입해있는 점을 주목할 만하다. 올해 3분기말 HL홀딩스 최대주주는 정 회장(25.03%)이지만 2대 주주와 3대 주주는 각각 VIP자산운용(10.41%)과 베어링자산운용(6.59%)이다. 4대 주주는 국민연금(5.37%)이다.
2·3·4대 주주 지분율을 합산하면 22.38%로 정 회장 지분율에 근접한다. 여기에 5% 미만으로 보유한 기관투자자도 여럿 있다. 신영자산운용은 지난해 10월 HL홀딩스 지분 3.43%를 보유하고 있다고 공시했다. 신영자산운용은 5% 안팎으로 HL홀딩스 지분을 꾸준히 유지하고 있는 장기투자자다. 트러스톤자산운용도 지분율 4.63%로 마지막으로 대량보유 상황을 공시한 것은 2020년 8월이지만 HL홀딩스에 장기투자해온 만큼 여전히 5% 미만으로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 5% 미만 보유 기관투자자 지분까지 합산하면 정 회장 지분율을 뛰어넘을 가능성이 높다. 이 때문에 재단법인으로의 자사주 무상 출연도 정 회장의 경영권 방어 수단의 일환으로 고안됐을 개연성이 있다. 자사주는 의결권이 없지만 이를 재단법인에 출연하면 의결권이 부활한다.
◇자사주 지속 소각 계획…재단법인 지분율 지속 상승
HL홀딩스는 2020년부터 자사주를 꾸준히 취득해왔다. 신탁계약을 통해 2020년 2월부터 이번달까지 사들인 전체 자사주는 금액으로 따지면 368억원 규모다. HL홀딩스는 자사주를 취득할 때마다 '주주친화 정책을 통한 주주가치 제고'를 목적으로 내걸었다. 하지만 이번에 재단법인에 무상 출연하는 목적은 '사회적 책무 실행'이었다.
HL홀딩스는 자사주 소각 공시와 자사주 무상 출연 공시를 같은 날(11일) 냈다. 이 때문에 지분율로 따진 무상 출연 물량 4.62%는 자사주 일부 소각(13일) 전 발행주식총수 기준이다. 11일 기준 발행주식총수는 1016만9410주이지만 13일 소각분(29만5340주)을 제외하면 987만4070주로 줄어든다. 따라서 소각 후 재단법인 지분율은 11일 공시 때보다 0.14%포인트 상승한 4.76%가 된다.
재단법인의 주식수가 변함이 없더라도 자사주 매입과 소각을 반복하면서 발행주식총수를 줄이면 재단법인의 지분율은 상승한다. HL홀딩스는 11일 자사주 일부 소각을 발표하면서 이른바 '기업가치 제고 계획'을 함께 내놨다.
애초 HL홀딩스는 지난해 11월 공시한 중기 주주환원정책에 따라 2024~2026년 3년간 합산 200억원 규모 자사주를 취득해 소각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이번에 자사주 소각을 기존 3년에서 2년으로 단축해 올해와 내년 각각 100억원 규모 자사주를 소각하는 것으로 계획을 변경했다. 자사주 소각 총량은 같은데 소각 시기를 앞당긴 것이다.
자사주 소각 시기를 앞당긴 만큼 재단법인의 지분율 상승도 앞당겨진다. 여기에 HL홀딩스는 이번 기업가치 제고 계획에 2026년에 이르러 배당과 자사주 소각을 포함한 신규 주주환원정책 수립을 검토하겠다는 내용을 포함시켰다. 이 때문에 발행주식총수가 계속 줄어들면서 재단법인의 지분율은 지속적으로 상승할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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