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코스닥 시장에 상장한 새내기 셀비온의 상장 과정은 사실 그리 순탄치 않았다. 기술성 평가 탈락과 예비심사 자진 철회 등 실패를 딛고 이겨낸 성과다.
신약 개발 바이오텍의 생존에 위협이 될 수도 있는 악재들이었지만 셀비온은 흔들리지 않았다. 상장 전 무려 7번의 펀딩을 이끌어냈고 계획대로 자신들의 기술을 개발시켜 나갔다.
셀비온이 갖고 있는 방사성 기술력과 김권 대표이사의 발 빠른 시장 분석 등이 주효했다. 여기에 벤처캐피탈(VC) 출신 박재민 최고재무책임자(CFO) 부사장의 투자 유치 노하우가 더해져 상장사 셀비온이 만들어졌다.
◇진단 조영제로 기술성 평가 첫 시도…2019년 치료제로 방향 선회 지난달 16일 코스닥 시장에 입성한 셀비온의 첫 상장 도전은 201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10년 7월 설립된 셀비온은 2014년 서울대학교 산학협력단으로부터 'Ga68 NOTA-MSA KIT' 기술을 이전 받으며 본격적인 파이프라인 개발에 나섰다.
초기 기술 개발 모델은 방사성 치료제가 아닌 진단용 조영제였다. 방사성 의약품은 특정 수용체에 결합하는 물질에 방사성 동위원소를 붙인 것으로 수용체에 결합 후 방출된 방사선을 통해 약이 체내에 분포하는 모습을 관찰할 수 있다. 질병 조기 진단 및 전이 여부 파악에 용이하다.
Ga-68-NOTA-MSA 역시 방사성 의약품을 활용한 진단 조영제 기술이다. 심뇌혈관 질환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는 죽상동맥경화증을 진단하는 세계 최초의 방사성 의약품으로 많은 기대를 받았다.
임상 1상 완료 이후 2상 초기 단계였던 2018년 셀비온은 기술성 평가를 신청하며 IPO 작업에 공식 착수했다. 하지만 기술특례 상장 기준에 못 미치는 기대 이하의 결과를 받으며 첫 상장 시도는 좌절됐다. 치료제 대비 작은 조영제 시장의 낮은 사업성이 평가에 발목을 잡았다.
김권 대표를 비롯한 경영진은 발 빠르게 치료제 시장으로 시선을 돌렸다. 당시 글로벌제약사 노바티스가 전립선암 방사성 치료제 개발 기업 '엔도사이트'를 인수하는 등 글로벌 시장의 주요 관심사도 조영제가 아닌 치료제 시장으로 모이고 있었다는 점에 집중한 전략이었다.
◇치료제 개발로 늘어난 필요자금…상장 전 7차례 펀딩으로 지원 셀비온이 치료제 시장으로 확장하는 과정에서 결정적 역할을 한 인물이 CFO 박재민 부사장이다. 2017년 말 셀비온에 합류한 그는 기술성 평가와 상장 전 과정을 주도했다.
박 부사장은 셀비온의 큰틀의 변화에 맞는 세부전략 마련에 착수하며 뒷받침을 했다. 셀비온이 갖고 있는 방사성 기술력과 김 대표의 시장 분석력 등을 믿고 추가 펀딩에 나서며 곳간을 채웠다. 조영제 개발과 치료제 개발에 필요한 비용에는 큰 차이가 있기 때문에 추가 투자 유치가 반드시 필요했다.
박 부사장은 1968년 출생으로 연세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1991년 미국 씨티은행의 리스전문투자 자회사 씨티리스에 입사해 회계 및 영업 업무를 수행했다. 이후 1995년 한솔종합금융으로 이동해 리스업무를 이어나갔다.
그러던 중 1997년 말 IMF사태가 터졌고 박 부사장은 그룹 내 타 계열사인 한솔창업투자로 자리를 옮겼다. VC업계와 오랜 인연의 시작이었다.
한솔창투에 있으며 총 2개의 250억원 규모 게임전문펀드를 결성, 운용하는 성과를 창출했다. 이는 당시 국내 최초의 게임전문 투자 펀드였다. 이후 2005년 대성창업투자 이사, 2014년 컴퍼니케이파트너스 전무 등 다른 VC에서도 활발히 활동했다. 전문 영역은 이전과 동일하게 게임 및 콘텐츠 사업 분야였다.
2017년 말 셀비온 CFO에 선임되며 투자업계가 아닌 현업에 뛰어들었다. 과거 한솔창투 시절부터 인연을 이어오던 김명기 LSK파트너스 대표의 소개가 연이 됐다. LSK파트너스는 시리즈B 펀딩을 통해 셀비온 투자에 참여한 상태였다.
조영제 개발이 메인 사업이었던 2019년까지만 해도 투자 유치 부문에서 박 부사장의 부담은 크지 않았다. 입사 직후인 2017년 말 57억원 시리즈C 펀딩을 마무리한 이후 2020년까지 추가 펀딩이 이뤄지지 않았다.
2020년 치료제 개발로 방향을 선회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그 해에만 시리즈 D, E 펀딩을 실시해 총 52억원의 자금을 투자 받았다. 오랜 기간 VC업계에 몸담으며 쌓았던 네트워크와 노하우가 진가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성공적으로 추가 펀딩을 이뤄낸 셀비온은 2020년 지금의 핵심 파이프라인 전립선암 치료제 'Lu-177-DGUL'로 기술성 평가에 나섰고 평가기관 두 군데서 모두 A등급을 받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위기는 또 한 번 찾아왔다. 2021년 당시 거래소 기술특례 상장에서 가장 중요시됐던 기술이전 실적이 없다는 이유로 사업성 검증 요구를 받았고 결국 자진 철회를 결정했다. 당시 Lu-177-DGUL 기술은 국내 1상 IND 승인 단계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상장이 무산됨에 따라 박 부사장은 다시 추가 펀딩에 나섰다.
기업 신뢰에 큰 타격을 입을 수 있는 상장 자진 철회에도 2021년 곧장 104억원의 시리즈F 펀딩에 성공했다. 올해 상장 재도전을 앞두고 단행한 작년 Pre-IPO에서도 80억원의 자금을 추가 유치할 수 있었다.
상장 전에만 총 7차례 펀딩이 이뤄졌다. 이 중 박 부사장이 진행한 펀딩은 5건에 이른다. 금액은 총 370억원 중 293억원으로 80%에 달한다. 두 차례 위기를 성공적으로 극복한 펀딩 성과에 힘입어 임상 2상 중간 결과까지 도출할 수 있었고 지난달 코스닥 시장에 데뷔했다.
박 부사장은 "CEO의 발 빠른 시장 분석과 판단, 자체 기술의 우수성, VC업계에서의 경험 등이 더해져 투자자들의 신뢰를 이끌어 냈다고 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