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최고재무책임자(CFO) 자리는 가장 보수적 인사 기조를 보이는 곳으로 꼽힌다. 곳간을 속속들이 파악하는 데다 지주사일 경우 계열사의 재무 역시 들여다보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 금융권뿐만 아니라 재계 전반에서 순혈주의가 깨지고 있지만 재무 수장 자리만큼은 여전히 최후의 보루로 남겨놓은 곳이 많다.
외부 출신에게만 벽이 높은 건 아니다. 내부인에게도 워낙 진입장벽이 높다. 입사 초반부터 재무 부서에 몸담고 있다가 승진을 거듭한 케이스가 가장 흔하다.
그러나 KB금융은 두 가지 모두에서 조금 벗어나 있다. 외부 출신이 CFO에 오른 전례가 있고 꼭 재무 전문가가 CFO에 오르지도 않았다.
◇현직 부사장 제외하면 계열사 대표 영전 100% KB금융은 현재 CFO인 재무담당 아래 재무기획부와 회계부 그리고 IR본부가 있는 구조다. IR본부 아래는 다시 IR부가 있다. IR본부장은 권봉중 전무가, 재무기획부장은 나상록 상무가 각각 맡고 있다. 둘 모두 다른 계열사에서 임원을 겸직하고 있지 않다. 전략담당(CSO) 아래 임원들이 KB국민은행에서도 비슷한 직책을 맡고 있다는 점과 다른 점이다. 업무 집중도가 그만큼 높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단순 회계나 IR 업무뿐만 아니라 회사 전반의 재무 전략과 방향을 수립하는 역할을 한다. 각종 재무 관련 지표를 만들고 이를 통해 생산성, 성장성, 수익성, 건전성을 분석해 방향을 설정한다.
역대 CFO를 살펴보면 가장 눈에 띄는 건 계열사 대표로의 영전이 많았다는 점이다. 10년 사이 KB금융 CFO를 지낸 인물 가운데 계열사 대표로 이동하지 않은 인물은 올해 초 CFO에서 글로벌사업부문장으로 이동한 서영호 부사장과 현재 CFO를 지내고 있는 김재관 부사장을 제외하면 없다. 양종희 KB금융지주 회장, 허정수 전 KB생명보험 대표, 이재근 KB국민은행 은행장, 김기환 전 KB손해보험 대표, 이환주 KB라이프생명 대표 등 라인업이 매우 화려하다.
◇"계열사 대표 되려면 재무는 알아야" 흔히 KB금융은 재무통을 중용한다고 알려져 있지만 전후 관계를 따져볼 필요가 있다. CFO를 거친 인물이 중용됐다기보다는 애초 계열사 대표 등으로 중용될 가능성이 높은 인물들이 CFO를 '거쳤던' 것에 가깝다. 핵심 인물을 CFO로 선임해 재무 쪽 식견을 쌓고, 그룹 업무 전반을 보는 시야를 얻을 수 있도록 해왔다.
윤종규 전 회장이 '계열사 대표가 되려면 재무는 알아야 한다'는 지론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으로 전해진다. 자신이 워낙 재무에 능통했던 만큼 CFO가 당장 재무를 잘 알지 못하더라도 보완이 가능하다는 판단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김기환 전 KB손해보험 대표의 경우 2018년 KB금융지주 CFO로 선임됐는데 이전까지는 재무와 거리가 있었다. 그는 KB금융 홍보부장, KB국민은행 인사부장을 지냈고 지주에서 소비자보호그룹, 리스크관리그룹 등을 거쳤다.
이환주 KB라이프생명 대표 역시 2020년 KB국민은행에서 경영기획그룹장(CFO)에 오르기 전까지 대부분의 경력을 영업에서 쌓았다. 그는 특히 3년 동안 본점에서 영업기획부장을 맡은 경험이 있다. 전국 영업점을 총괄하는 자리다.
◇단기간의 외형 확장에도 탄탄한 재무구조, 배경엔 CFO 조직 역대 CFO를 살펴보면 보험 계열사로의 이동이 많았다는 점도 알 수 있다. CSO가 주로 KB국민카드로 갔다면 CFO는 대부분 KB라이프생명(옛 KB생명보험 포함), KB손해보험으로 이동했다.
상대적으로 호흡이 빠른 카드업엔 CSO 출신이 잘 맞다는 판단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반면 일찌감치 새로운 회계기준(IFRS17) 도입과 신 지급여력제도(K-ICS) 적용 등이 예고됐던 만큼 보험사엔 재무를 아는 인물을 보내왔다.
현재 CFO를 맡고 있는 김재관 부사장은 양종희 회장 체제의 첫 CFO다. 그 역시 본격적으로 재무 쪽에 몸담기 시작한 건 2022년 KB국민은행에서 경영기획그룹장을 맡으면서다. 이전까지는 KB국민은행에서 양주테크노지점장, 기업상품부장, 중소기업고객부장, 기업금융솔루션본부장 등을 지냈다. 양종희 회장 역시 재무에 능통한 만큼 전임과 비슷한 인사 기조를 유지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KB금융 역대 CFO를 살펴보면 외부 출신이 선임된 적이 있다는 점 역시 눈에 띈다. 김재관 부사장 직전 CFO를 지낸 서영호 부사장은 KB증권 출신으로 2016년 KB증권 리서치센터장을 시작으로 KB금융과 인연을 맺었다. 다만 서 부사장을 제외하고는 모두 내부 출신이다.
10년 동안 이어진 재무 중시 기조는 KB금융이 리딩금융을 차지하는 과정에도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다. 단기간에 대규모 인수합병(M&A)을 여러 차례 성사시키는 중에도 회사가 흔들림 없이 유지될 수 있던 배경엔 넉넉했던 자회사 출자 여력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