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한국앤컴퍼니그룹 동일인에 조양래 명예회장이 지정됐다. 동일인은 공정거래위원회가 정하는 기업집단을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자다. 조 명예회장이 대표이사에서 물러난 지 오래됐고 차남인 조현범 회장의 지배력이 공고하다는 게 최근 경영권 다툼에서 재차 입증됐지만 변함없었다. 당국은 분쟁 씨앗이 남았다고 판단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가 지난 15일 발표한 '2024년 공시대상기업집단 지정 현황'에 따르면 한국앤컴퍼니그룹 동일인은 조양래 명예회장이다. 한국앤컴퍼니그룹이 2002년에 한국타이어그룹으로 신규 지정됐을 때와 23년째 동일하다. 당시 함께 지정된 부영그룹과 대성그룹은 그 사이 동일인이 바뀌었거나 기업집단에서 제외됐다.
이번 공정위 발표가 있기 전 업계에서는 조현범 회장의 동일인 지정 가능성이 제기됐었다. 조 명예회장이 2018년 대표이사에서 물러난 뒤 조 회장 지배력이 어느 때보다 공고해졌다는 게 대내외적으로 확인됐기 때문이다. 가령 지난해 말 형인 조현식 고문이 MBK파트너스와 손잡고 공개매수를 시도하며 지배력을 높이려 했으나 무위에 그쳤다.
구체적으로 조 회장은 올해부터 적용된 '동일인 판단 기준'에도 부합한다. 현재 동일인 판단 기준은 5가지다. △기업집단 최상단 회사의 최다출자자 △기업집단 최고직위자 △기업집단 경영에 지배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자 △기업집단 내·외부에서 대표로 인식되는 자 △동일인 승계방침에 따라 기업집단 동일인으로 규정된 자 등이다.
한국앤컴퍼니그룹의 최상단 회사는 지주사인 '한국앤컴퍼니'다. 조 회장은 한국앤컴퍼니 지분 42.03%를 보유한 1대주주이자 특수관계인을 포함한 지분은 총 47.26%로 압도적 지배력을 갖고 있다. 또한 한국앤컴퍼니 대표이사이자 그룹 전체에서 유일한 회장이다. 최근 1조원을 훌쩍 넘는 한온시스템을 인수하는 데도 조 회장의 의지가 결정적이었다.
조 회장의 형과 누나들이 아버지 조 명예회장의 결정에 의구심을 갖고 지분 경쟁을 시도하거나 법적으로 문제제기(한정후견 심판 개시)를 지속하고 있지만, 조 명예회장은 2020년 입장문 발표와 2023년 지분 매입을 통해 차남 조 회장에 대해 지지를 반복해서 표명했다. 하지만 공정위 판단은 올해도 조 명예회장이었다.
한국앤컴퍼니그룹처럼 아버지가 노령과 세대교체 필요성 등의 이유로 특정 자식에게 경영권을 물려준 뒤 동일인이 변경된 사례는 적지 않다. 대표적으로 공시대상기업집단 3위인 현대자동차그룹이다. 2020년 정몽구 명예회장이 경영에서 물러나고 정의선 회장이 취임한 이듬해에 동일인이 정 회장으로 바뀌었다.
공정위 관계자는 "동일인 지정은 관련 절차에 따라 결정한다"며 "기업이 동일인 변경을 원하면 관련 자료를 제출하고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데 한국앤컴퍼니그룹에도 그런 기회를 줬다"고 전했다. 동일인 지정 절차는 '협의 대상 선정 → 자료 제출 → 협의 실시 → 동일인 확인 및 통지' 순서다.
공정위가 조희경 씨가 2020년 제기한 '한정후견 개시 심판'에 대한 대법원 판결이 남아 있기 때문에 동일인을 유지했을 가능성이 있다. 조 이사장은 아버지가 건강한 정신상태에서 조 회장에게 지분 양도를 결정했는지 의심된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1심과 2심에서 모두 기각됐지만 조 이사장은 최근 항고했다.
높은 확률은 아니지만 대법원이 파기환송 등을 하면 최악의 경우 조 명예회장이 조 회장에게 블록딜로 양도한 지분은 무효가 될 여지도 있다. 공정위는 친족 간 경영권 분쟁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 '합의'를 중요하게 본다. 다른 형제들이 여전히 문제제기하는 상황에서 여러 조건에 부합하더라도 동일인 변경을 하기는 어려운 것으로 분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