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가 신용평가사 3사 모두에게 '트리플A' 등급을 받으려면 한국기업평가라는 마지막 관문을 넘어야 한다. 나이스신용평가는 이미 'AAA' 등급을 부여했으나 한기평은 아직 긍정적 아웃룩마저 책정하지 않고 있다.
한기평은 이달 현대차의 정기평정을 실시할 계획이다. 어느 때보다 긍정적 여건이 조성되고 있으나 여전히 보수적 스탠스를 고수할지 이목이 쏠리고 있다. 그간 제시해온 등급 상향 트리거 중에서 현금유동성비율만 충족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나신평 선제적 평정 '현대차 AAA'…한기평 현금유동성비율 '미달 유일' 5일 크레딧업계에 따르면 한기평은 이달 현대차의 정기평정을 실시한다. 이 신평사는 과거 현대차가 AAA 지위를 반납시킨 뒤로 아직까지 신용도에 대한 평가를 조정하지 않고 있다. 현재 'AA+(안정적)'을 부여하고 있다.
최근 나신평은 현대차 신용등급을 AAA로 높이면서 4년만에 상향 조정했다. 직전 등급 조정은 2020년 4월 AA+로 한 단계 낮췄던 결정이었다. 이번 상향 조정과 함께 등급 전망도 안정적으로 제시했다. 한국신용평가의 경우 AA+를 부여하고 있으나 아웃룩은 안정적에서 긍정적으로 바꾼 상태다.
이 때문에 크레딧업계에서는 한기평의 선택을 주시하고 있다. 일단 현대차의 객관적 영업 환경과 실적은 수년째 개선돼왔다. 제품 경쟁력 제고로 글로벌 주요 시장에서 매출 비중이 확대되고 있고 고부가가치 차종 중심으로 판매 믹스가 개선되면서 경쟁사보다 수익성의 개선 폭이 크게 나타나고 있다. 여기에 풍부한 현금 유동성이 재무 안정성을 뒷받침하고 있다.
관건은 한기평이 상향 트리거로 제시하고 있는 현금유동성비율이다. 수익성을 따져보는 이 수치만 그간 상향 조건의 수준에 도달하지 못했다. 이 비율이 200% 이상일 때 AAA 등급으로 승격할 수 있다고 제시하고 있다.
현대차의 지난해 3분기 말 현금유동성비율은 147%로 집계된다. 2019년 말 207%였으나 점진적으로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해 말 기준 현금유동성비율은 큰 폭으로 개선됐으나 아직 200%엔 도달하지 못한 것으로 파악된다. 나머지 상향 요건인 수익성 지표 등은 이미 충족된 지 오래다.
◇판매보증충당부채 중심, 일회성 충당금 반영…한기평 전향적 결정 '관심 집중' 한기평이 집계하는 현금유동성비율(3년 평균)은 분모 자리에 단기성 차입금뿐 아니라 판매보증충당부채가 자리잡고 있는 게 특징이다. 이 계정엔 제조상 잘못으로 결함이 생긴 부품을 무료로 교환해주는 무상보증 수리비가 반영된다. 차량 판매량이 늘어날수록 커질 수밖에 없고 엔진 결함 등 외부 충격에 따른 일회성 충당금이 대거 쌓일 수 있다.
결과적으로 단기성(1년 이내 상환) 차입금과 미래 현금 유출이 예고된 판매보증충당부채보다 손에 쥔 현금이 적어도 2배를 넘어설 때 AAA 등급에 걸맞는 신용도를 갖춘 것으로 판단하겠다는 뜻이다. 현대차 역시 다른 글로벌 기업처럼 엔진(세타2 GDI) 결함 이슈로 대규모 충당금을 쌓은 전력이 있기 때문이다.
크레딧업계에서는 현금유동성비율의 미달에도 한기평이 현대차의 신용등급을 전향적으로 조정할 가능성이 높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AAA의 상징성을 감안할 때 신중하게 평정해야 하지만 AA+ 때보다 펀더멘털과 재무구조가 워낙 두드러지게 개선된 덕분이다. 등급 조정 프로세스 측면에서도 특정 상향 요건이 반드시 충족돼야 레이팅 액션을 취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기계적 트리거가 아니라 해당 신평사의 기준을 엿볼 수 있는 잣대이기 때문이다.
나신평이 선제적으로 AAA 등급을 부여한 만큼 긍정적 아웃룩을 제시한 한신평도 그 뒤를 쫓을 가능성이 높다. 이들 두 신평사의 승격만으로도 시장에서 현대차의 유효 신용등급은 트리플A로 인정받는다. 이 때 한기평만 AA+ 등급을 유지할 경우 스플릿 상황에 따른 부담이 있을 것으로 관측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