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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사들이 사외이사 선임 관행에 변화를 주고 있다. 금융감독원이 지배구조 모범관행(best practice)을 발표하면서다. 핵심은 사외이사 권한 강화와 투명성 제고다. 경영진 감시와 견제라는 본연의 역할을 강화하는 동시에 사외이사도 객관적 절차에 의해 선임돼야 한다는 게 당국의 뜻이다. 젠더 다양성, 전문성 분포, 추천 절차, 후보군 관리 등 여러 분야에 걸쳐 개선 과제가 산적해 있다. 금융지주의 사외이사 제도 현황과 개선 노력을 살펴봤다.
하나금융이 사외이사 재직 기간을 대폭 단축했다. 올해 정기 주주총회에서 구축된 사외이사 진용의 평균 재직 기간을 1년 전에 비해 절반 가량 줄이는 데 성공했다.
하나금융은 4대 금융지주 중 사외이사의 장기 재직을 허용하는 기조가 가장 강했던 곳이다. 사외이사 재직 기간이 길어질수록 경영진과 이해관계가 생겨 이른바 '참호 구축' 의구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승계 1년을 앞두고 새 얼굴을 대거 영입해 금융 당국의 비판을 선제적으로 차단한 것으로 해석된다.
◇사외이사 장기 재직 '옛말' 하나금융은 지난 22일 정기 주총을 열고 사외이사 선임 작업을 마무리했다. 이정원·박동문·이강원·원숙연·이준서·주영섭·윤심·이재민·이재술 등 9명의 사외이사가 등재됐다.
이중 재임 기간이 가장 긴 인물은 이정원 사외이사다. 이번 주총일 기준 60개월을 재직했다. 이어 박동문(36개원), 이강원(24개월), 원숙연(12개월), 이준서(12개월) 순이었다. 주영섭·윤심·이재민·이재술 사외이사는 신규 선임돼 재직 기간이 0개월이다.
하나금융 사외이사의 평균 재직 기간은 1년 전과 비교해 대폭 단축됐다. 지난해 주총일 기준 사외이사 평균 재직 기간은 33개월이다. 김홍진·양동훈·허윤 사외이사가 5년간 재직했다. 반면 신규 선임된 사외 이사는 원숙연·이준서 사외이사 2명에 불과해 평균 재직 기간을 줄이는 데 한계가 있었다.
하나금융은 다른 금융지주에 비해 사외이사 장기 재직을 용인하는 경향이 강했다. 2023년 지배구조 연차보고서에 기재된 각 금융지주의 최근 5년간 사외이사 선임 내역을 보면 이 기간 하나금융이 선임한 사외이사들의 평균 재직 기간은 49개월이다. 같은 기간 KB금융 43개월, 신한금융 43개월, 우리금융 32개월에 비해 길다.
일각에서는 사외이사 장기 재직이 이사회 독립성 강화에 보탬이 된다는 견해도 존재한다. 하지만 금융 당국은 사외이사 재직 기간이 길어질수록 지주 대표이사 회장을 비롯한 경영진과 이해관계가 강화돼 독립성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하나금융은 금융 당국의 비판에 직면할 수 있는 사외이사 재직 기간 관리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었던 셈이다.
하나금융은 이번에 퇴임하는 사외이사보다 많은 숫자의 신규 사외이사를 선임하면서 그간의 기조에 변화를 줬다. 새 인물을 발굴하고 이사진 세대교체에 적극적으로 임하는 기조로 전환하려는 움직임이 감지된다.
이번 변화로 금융 당국의 참호 구축 의구심을 차단할 수 있게 됐다. 함영주 하나금융 회장은 내년 3월 임기가 만료된다. 연말께 개시될 승계 절차에 참여할 사외이사가 함 회장과 함께 재직한 인사 중심이면 의혹이 불거질 수 있었다. 신규 사외이사가 대거 합류하고 평균 재직 기간이 단축되면서 감시와 견제가 가능한 구조를 갖췄다.
◇외부 자문기관 활용해 후보풀 확충 사외이사 세대교체 주기를 단축하려면 잘 갖춰진 후보군이 필요하다. 인물난이 사외이사 장기 재직의 가장 핵심적인 요인으로 꼽히기 때문이다. 경쟁력 있는 후보군을 갖추고 있어야 장수 사외이사를 대체할 새 얼굴을 선임할 수 있다.
하나금융은 사외이사 후보군 숫자를 2022년 159명에서 2023년 173명으로 늘리면서 후보풀을 확충했다. 분야별로 사외이사 신규 선임을 타진할 수 있는 인물들을 골고루 늘려뒀다.
외부 자문기관의 후보 추천 권한을 강화하면서 후보군 확충이 가능했다. 하나금융은 2022년 외부 자문기관을 통해 81명의 후보를 추천받았다. 2023년에는 105명의 후보가 외부 자문기관 추천 후보로 등록됐다. 지원부서 추천 59명, 기존 사외이사 추천 9명보다 많은 숫자다. 사외이사나 CEO 선임 과정에서 외부 자문기관을 적극 활용하라는 금융 당국의 방침을 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