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차전지 핵심 소재라 일컬어지는 양극재 사업의 주요 기업은 LG화학·포스코퓨처엠·에코프로비엠·엘앤에프 4곳이다. 이중 시장에서나 업계에서나 양극재 기업으로서의 영향력이 큰 곳을 꼽으라면 포스코퓨처엠과 에코프로비엠을 고를 수 있을 것이다. 양극재 등 배터리 소재 사업에 집중된 사업구조를 갖췄으며 매출 규모 및 캐파 확보 눈높이도 높은 편이다.
그렇다 보니 큰 틀에서 두 회사의 기업가치 등락 추이는 비슷한 모습을 보여왔다. 포스코퓨처엠이 갭을 띄우며 에코프로비엠보다 높은 위치에 있는 형태에서였다. 이런 구도에서 변화가 생긴 것은 올해다.
2019년 3월에만 해도 에코프로비엠과 포스코퓨처엠의 시가총액 격차는 2조~2조5000억원에 달했다. 에코프로비엠이 1조3000억원대, 포스코퓨처엠이 3조5000억원대였다. 2021년에는 차이가 7조원가량으로 벌어지기까지 했다.
하지만 지금의 위치는 완전히 다르다. 에코프로비엠이 최근 1년 남짓 되는 '이차전지주 랠리'에서 더 빠른 성장세를 기록하며 상황이 바뀌었다. 16일 기준 에코프로비엠의 시가총액은 24조원으로 23조원을 기록한 포스코퓨처엠을 뛰어넘었다.
◇후발주자로 진입하고도 우위 지켰던 포스코
포스코퓨처엠은 에코프로비엠에 비하면 양극재 사업 업력이 짧은 편이다. 에코프로그룹이 양극재 사업을 본격화한 것은 2006년경이다. 제일모직이 구조조정 차원에서 배터리 소재 사업을 정리했는데 에코프로가 이를 인수하며 양극재 기업으로 거듭나는 발판을 마련했다.
이후 에코프로가 2016년 전지재료사업부문을 물적문할해 에코프로비엠을 설립했고, 2019년 에코프로비엠은 코스닥 시장에 상장했다.
포스코그룹이 양극재 사업에 뛰어든 것은 에코프로그룹보다 6년가량 늦은 2012년이다. 포스코와 휘닉스소재가 2012년 양극재 합작법인(JV) 포스코ESM을 설립하며 양극재 사업을 시작했다. 이후 2019년 포스코퓨처엠이 포스코ESM을 흡수합병하며 양극재 사업 역량을 확보하게 됐다.
시장에서 양극재 기업으로 평가받기 시작한 시점은 2019년으로 같은 셈이다.
포스코퓨처엠은 꽤 오랜기간 동안 에코프로비엠과 비교해 시가총액 측면에서 우위를 지켜왔다. 이차전지 사업에 대한 시장의 주목이 시작된 이후 2021년 10월까지도 두 기업의 시가총액 그래프에서 접점은 생기지 않았다.
포스코퓨처엠이 더 높은 평가를 받았던 이유는 단순하게 보자면 에코프로비엠보다 규모가 큰 기업이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포스코퓨처엠은 전지소재 사업을 본격화하기 전에는 내화물 및 라임화성 사업을 주력으로 하는 기업이었다. 양극재 사업은 포스코퓨처엠에 신규 추가된 사업이었으니 에코프로비엠보다 덩치가 클 수 밖에 없었다. 2019년 기준 포스코퓨처엠의 연결 자산총계는 1조7301억원, 에코프로비엠은 6503억원으로 나타났다.
기존 기초소재 사업부문에서 안정적으로 매출이 발생한다는 점과 재계 최상위권 기업집단인 포스코그룹에 속해있다는 점도 시장의 우호적인 평가를 받을 수 있었던 배경이다. 또 2020년경 포스코퓨처엠의 주요 고객사인 LG에너지솔루션이 전세계 전기차용 배터리 시장에서 1위에 오르는 등의 호재도 있었다.
◇결국은 '기대감', 역전 만들어낸 에코프로비엠
2021년에도 에코프로비엠이 포스코퓨처엠을 잠시 넘어서기는 했으나 포스코퓨처엠은 다시 갭을 만들어 냈다. 변화가 크게 나타난 시점은 올들어서다. 사실 올초까지만해도 포스코퓨처엠의 시가총액이 15조원 에코프로비엠의 시가총액이 9조원대로 두 회사간 격차가 6조원에 달했다.
주식시장에 몰아친 이차전지 광풍으로 두 기업 모두 시가총액이 크게 올랐다. 포스코퓨처엠의 시가총액이 7월 25일 46조원까지 상승한채 장을 마감했고, 에코프로비엠은 같은날 45조원을 기록했다. 포스코퓨처엠의 최고치가 더 높긴 하지만 상승률로 따지면 보면 포스코퓨처엠이 206%, 에코프로비엠이 400%로 에코프로비엠이 두 배 가량 높았다.
이후 전기차 시장의 수요 둔화에 따른 이차전지 소재 업체들의 실적이 주춤하며 주가가 하락세로 전환했다. 포스코퓨처엠의 시가총액 하락세가 조금 더 빨랐던 것으로 보인다. 10월 말 시가총액이 에코프로비엠보다 낮아지더니 16일 현재도 이 구도가 유지되고 있다. 포스코퓨처엠의 시가총액은 23조원, 에코프로비엠의 시가총액은 24조원으로 오히려 에코프로비엠이 1조원 많은 상태다.
두 회사의 뒤바뀐 순위가 언제까지 유지될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분명한 점은 포스코퓨처엠과 에코프로비엠이 이제는 비등한 위치에 올라와 있다는 사실이다.
롤러코스터를 탄 포스코퓨처엠과 에코프로비엠 중 에코프로비엠이 더 많은 폭으로 주가가 올랐고 더 적게 떨어졌다. 결국 에코프로비엠의 성장성이 포스코퓨처엠보다 높다고 평가 받은 데 이어 시장상황이 둔화되는 상황에서도 조금이나마 더 많은 기대를 받고 있는 셈이다. '에코프로 광풍'도 분명히 영향이 있겠지만 이 역시 근본적으로는 기대감이 기저에 깔려있을 것이다.
그간 에코프로비엠의 매출 성장률(직전 분기 대비)은 포스코퓨처엠보다 높은 수준을 유지해 왔다. 2021년 2분기부터 2022년까지는 분기별로 매년 두 자릿 수 성장을 지속해왔다. 포스코퓨처엠의 경우 한 자릿 수 매출 성장률을 보이다가 2022년부터 두 자릿 수 성장에 진입했다. 다만 에코프로비엠의 최대 성장률이 79.2%인 반면 포스코퓨처엠의 최대 성장률은 45% 수준이다.
이에 2021년 1분기에만해도 2470억원으로 포스코퓨처엠(4499억원)보다 매출이 적었던 에코프로비엠은 2022년부터는 포스코퓨처엠을 넘어서는 외형을 갖추게 됐다. 올 3분기 포스코퓨처엠의 매출은 1조2858억원, 에코프로비엠의 매출은 1조8033억원으로 나타났다.
올들어 매출 감소가 시작되고는 있는 가운데 에코프로비엠의 수익성 악화가 상대적으로 양호하다는 점도 눈에 띈다. 에코프로비엠은 2021년 2분기부터 포스코퓨처엠보다 높은 영업이익률을 유지하고 있다. 차이가 적게는 2%포인트(p)에서 많게는 4%p까지 벌어졌다. 올 3분기의 경우 포스코퓨처엠의 영업이익률이 2.9%, 에코프로비엠이 2.5%로 나타났다. 단 포스코퓨처엠의 에너지소재사업부만 떼서 살펴보면 2.3%로 에코프로비엠보다 낮은 영업이익률을 보였다.
최근 메탈가격의 하락으로 배터리 소재 평균판매 가격이 떨어지며 국내 배터리 소재 기업들의 수익성이 크게 하락하고 있는 상황이다. 에코프로 그룹 차원에서 높은 강도의 수직계열화를 추진해온 점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이밖에 올해 이차전지에 대한 시장 주목도가 급격하게 오른 상황에서 사업구조상 '이차전지' 자체로 평가받기에 에코프로비엠이 더 적합하다보니 투자자들의 수요가 몰린 측면도 있어 보인다. 종합해보자면 3년여전 에코프로비엠보다 포스코퓨처엠의 가치를 높인 요인들인 외형적 규모, 안정적인 사업기반 등이 올들어서는 반대로 주가 성장세를 조금이나마 늦추는 작용을 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