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지주사 중 최초로 자사주를 소각한 KB금융이 소각 규모 면에서도 우위를 차지하고 있는 모습이다. 2019년 자사주를 소각한 이래로 총 6700억원 규모의 자사주를 태웠다. 소각 예정 금액인 3000억원을 더하면 규모는 9700억원으로 1조원에 근접한다.
다만 후발주자인 신한금융의 기세 역시 만만치 않다. 소각 예정 금액을 제외하면 지금까지 자사주를 소각한 금액은 8300억원으로 KB금융을 소각 규모 면에서 제친다. 소각 예정 금액을 더한 규모는 9300억원으로 KB금융의 턱밑을 추격한다. 리딩뱅크 지위를 두고 각축전을 벌이는 두 금융지주사가 주주환원책에서도 치열한 경쟁을 펼치는 모습이다.
◇자사주 소각 물꼬 튼 KB금융
자사주 소각은 주주환원정책의 일환으로, 기업이 보유 중인 주식이나 추가로 매입한 주식을 소각해 시장에 유통되는 주식 수를 줄이는 행위를 말한다. 자사주 소각으로 총주식 수가 감소하면 주주들이 보유한 기존 주식 가치가 상승하는 효과가 나타난다.
'한국 기업의 자사주 처분 및 소각에 관한 실증 연구' 논문에 따르면 기업유형별로 기업지배구조가 양호한 기업이 그렇지 않은 기업에 비해 자사주 소각 경향이 많다. 특히 배당을 많이 하는 기업일수록 소각도 많이 하는 경향이 있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이러한 자사주 소각을 금융지주사 중 첫 번째로 시작한 곳이 KB금융이다. KB금융은 2019년 12월 보통주 230만3617주를 소각하며 국내 금융지주사 중 최초로 자사주 소각을 단행했다. 1주당 가액은 5000억원으로 당시 1000억원 규모의 자사주가 소각됐다.
KB금융은 풍부한 보통주자본비율(CET1)을 바탕으로 자사주 소각을 진행했다. 2019년 KB금융의 CET1은 14.37%로, 같은 기간 신한금융의 CET1인 11.12%보다 3.25%포인트 더 높다. 신한금융은 그해 오렌지라이프와 아시아신탁을 인수로 CET1이 하락한 상태였다.
이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로 잠잠했던 자사주 소각은 2022년 서영호 최고재무책임자(CFO) 아래에서 다시 부활했다. KB금융이 코로나19 회복세에 들어선 2022년 2월과 8월 각각 15000억원 규모의 자사주를 소각한 것이다. 올해 4월에는 2700억원 규모의 자사주를 소각했으며, 7월엔 3000억원 규모의 자사주 소각을 결정했다.
◇신한금융 분기별 소각으로 맞불
신한금융은 자사주 소각을 시작한 KB금융의 뒤를 쫓기 시작했다. KB금융이 2019년 1000억원의 자사주를 소각하고 난 다음해 3월 1500억원 규모의 자사주 소각을 진행했다. KB금융보다 500억원 더 큰 규모로 자사주 소각을 진행한 것이다.
이후에도 신한금융은 총 6차례 자사주 소각을 결정했다. 2022년 4월 1499억원, 11월 1500억원이다. 그해 2월과 8월 KB금융이 자사주 소각을 결정하자 비슷한 규모로 맞불을 붙였다. 주주환원책에서 질 수 없다는 신한금융의 의지가 나타나는 대목이다.
올해 들어서도 신한금융의 자사주 소각 행렬은 이어졌다. 3월에 1366억원, 6월에 1492억원, 8월에 1000억원 규모의 자사주를 소각했다. 사실상 2~3개월에 한 번꼴로 자사주 소각을 진행한 것이다. 횟수로만 따지면 KB금융보다 많다. 10월에도 이사회 결의를 통해 1000억원 규모의 자사주 소각을 결정했으며, 소각 시점은 내년으로 예상된다.
신한금융의 향후 자사주 소각 행보에는 CET1이 결정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신한금융 재무팀은 올 연말까지 CET1을 13%로 올리겠다는 목표를 보유하고 있는데, 아직 이 수치를 달성하지 못했다. 금융감독원 금융통계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신한금융은 올 6월 말 12.99%의 CET1을 기록했다. 같은 기간 KB금융은 13.8%를 기록했다.
금융권 관계자는 "두 금융지주사가 리딩뱅크 지위를 두고 경쟁하는 것처럼, 자사주 소각에서도 경쟁을 이어가고 있다"며 "다만 CET1이 앞으로의 자사주 소각 규모에 결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