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어 프레셔(Peer Pressure)’란 사회적 동물이라면 벗어날 수 없는 무형의 압력이다. 무리마다 존재하는 암묵적 룰이 행위와 가치판단을 지배한다. 기업의 세계는 어떨까. 동일 업종 기업들은 보다 실리적 이유에서 비슷한 행동양식을 공유한다. 사업 양태가 대동소이하니 같은 매크로 이슈에 영향을 받고 고객 풀 역시 겹친다. 그러나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 태생부터 지배구조, 투자와 재무전략까지. 기업의 경쟁력을 가르는 차이를 THE CFO가 들여다본다.
하이브의 시가총액은 현재 9조5000억원 수준으로 국내 엔터테인먼트 시장에서 단연 압도적 1위다. 빅3로 군림했던 SM, JYP, YG의 시총을 다 합쳐도 하이브에 못 미칠 정도다. 방대한 덩치와 자본력으로 멀티레이블 전략을 구사하며 빅스타들을 동시 다발적으로 활동시킬 수 있다.
이런 하이브의 대항마로 꼽히는 잠룡이 바로 카카오엔터테인먼트다. 상장사는 아니지만 2021년 10월 유상증자를 진행할 때 몸값이 약 10조원, 올 1월 사우디 국부펀드에서 투자를 유치할 때는 11조~12조원 정도가 책정됐다. SM엔터테인먼트 인수로 밸류는 더 늘었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하이브 상장 이후 9.5조 밸류 유지, 매출도 2년 연속 조단위
2000년 SM엔터테인먼트가 코스닥시장 기업공개(IPO)를 단행했을 때 코스닥시장과 관여기관들의 시각은 굉장히 부정적이었다. 엔터테인먼트 산업은 소속 연예인이 핵심 지식재산(IP)이다. 이들은 모두 계약직의 위치라 계약을 끝나고 회사를 떠날 경우 기업의 지속 가능성에 문제가 생긴다. 블랙핑크 재계약 문제로 YG엔터테인먼트의 시총이 마지노선 1조원을 깨질 위험이 생길 만큼 떨어진 게 대표적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20여년간 일본과 중국 등 국내보다 더 큰 시장을 찾아 다니며 케이팝(K-Pop)의 저변을 넓혔고 미국 빌보드를 장악하며 세계적인 한류를 일으켰다. 방탄소년단(BTS)을 통해 그 정점에서 올라선 곳이 하이브다. 2020년 10월 상장 당시 시총이 8조원, 2021~2022년 2년 연속 조 단위 매출을 기록하며 성장성과 지속성을 증명함에 따라 12조원까지 뛰었다.
현재는 시총 9조5000억원을 유지하며 예전보다 떨어진 수준이나 여전히 국내 최대 규모다. SM(2조6000억원), JYP(3조8000억원), YG(1조1000억원) 등 기존 빅3의 시총을 모두 합쳐도 하이브에게 미치지 못할 정도다. 매출액 규모로는 SM엔터테인먼트가 연간 7000억~8000억원 수준으로 하이브와 3000억원 정도의 차이를 보이지만 시총은 그보다 훨씬 격차가 크다.
방대한 규모와 자본력을 바탕으로 멀티레이블 전략을 통해 빅스타들을 동시 다발적으로 활동시키며 안정적 매출구조를 만들었다. 또 위버스 등 팬 플랫폼을 통한 굿즈(아티스트 관련 기념품) 판매로 비대면 매출원도 확보했다. 아울러 글로벌 팝 시장의 메인스트임 미국 빌보드를 점령했다는 프리미엄이 하이브의 가치를 안정적으로 받쳐주고 있다.
◇카카오엔터 투자밸류 12조, IPO 후에도 유지될까
IPO를 준비하고 있는 카카오엔터테인먼트의 기업가치는 얼마나 될까. 하이브의 대항마로 꼽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상장사가 아닌 만큼 시총을 파악할 순 없지만 투자유치 과정에서 책정된 밸류를 통해 대략 가늠해 볼 수는 있다.
카카오엔터테인먼트는 2019년 4월 KB증권과 NH투자증권 등을 주관사로 선정한 뒤 IPO를 준비해 왔다. 그러나 IPO는 계획대로 성사되지 않았고 몸값도 좀처럼 뛰지 않았다. 2021년 10월 유상증자를 진행할 때 몸값이 약 10조원, 올 1월 사우디 국부펀드에서 투자를 유치할 때는 11조~12조원 정도로 책정됐다.
하이브가 상장 후 최대 시총일 때와 비슷한 수준이다. 물론 투자유치 시점의 기업가치는 투자자 관점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시장가격인 시총과는 다르다. 카카오엔터테인먼트가 상장 이후에도 11조원 이상의 시총을 유지할 지는 미지수다. 당초 카카오와 카카오엔터테인먼트는 20조원 이상의 기업가치를 기대했던 것에 비하면 턱없이 낮은 수준이기도 하다.
SM엔터테인먼트 인수에 사활을 건 데는 강력한 아티스트 IP는 물론 기업가치를 끌어올리기 위한 포석도 있다. 반대로 하이브가 SM엔터테인먼트 M&A에 나선 이유도 아티스트 IP 확보와 더불어 향후 코스피 입성할 시 자신보다 더 큰 밸류로 대장주를 위협할 수 있는 카카오엔터테인먼트에 대한 견제 의미도 있다는 게 시장 관계자들의 해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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