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브는 방시혁 이사회 의장을 필두로 전문경영인 체제를 일찌감치 선포했다. 권한을 분산해 오너 리스크를 최소화하고 전문경영인을 기용해 성장잠재력을 극대화하는 편이 낫다고 판단해서다. 그렇게 박지원 하이브 대표이사(CEO,
사진)는 오너의 곁에서, 오너보다 더 잘 경영해야 하는 책임을 맡게 됐다.
하이브에서 박 CEO의 존재감은 독보적이다. 하이브를 세우고 방탄소년단을 배출한 게 방 의장이라면 멀티레이블 체제를 안착시키고 하이브가 글로벌로 나아갈 토대를 다진 건 박 CEO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박 CEO가 처음부터 엔터테인먼트업계에서 일했던 것은 아니다. 넥슨그룹에서 오랜 기간 몸 담아왔던 그는 빠른 속도로 넥슨코리아 CEO까지 오르며 경영 실력을 입증했다. 그런 그가 하이브에 왔을 때 일각에서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왔다. 엔터업계와 동떨어진 인물이라는 우려가 그것이다.
그러나 이런 우려가 기우라는 것을 입증하듯 박 CEO는 속도감 있는 추진력과 빠른 상황 판단력으로 하이브의 성장을 이끌어냈다. 박 CEO의 다음 목표는 글로벌화와 사업다각화다. 하이브의 글로벌 성장을 이끌고 게임 등으로 사업을 다각화해 하이브를 ‘세계 최고의 엔터테인먼트 라이프스타일 플랫폼 기업’으로 육성하는 게 그의 최종 목표다.
◇넥슨은 물론 하이브에서도 경영능력 ‘입증’ 2021년 7월 1일 방 의장이 하이브의 CEO 자리를 내려놨다. 동시에 박지원 HQ(headquarters & Management) CEO가 하이브의 수장에 올랐다. 박 CEO가 2020년 하이브 국내 조직 책임자인 HQ CEO로 선임된 지 불과 1년 2개월 만의 일이었다.
업계에서는 우려와 기대가 교차했다. 비록 방 의장이 이사회에서 계속 경영에 참여한다고는 하지만 박 CEO에게 상당한 힘이 실리는 일이었다. 게임사업 전문가가 엔터사업 전문가로서 역량을 발휘할 수 있을지 우려의 목소리도 나왔다.
1977년생인 박 CEO는 연세대학교에서 정치외교학으로 학사학위를 받고 대학원까지 나와 2003년 넥슨코리아에 입사했다. 그리고 2014년 넥슨코리아의 CEO에 올랐다. 2018년 넥슨재팬 글로벌 최고운영책임자(COO)까지 지내며 글로벌 사업 감각까지 갖췄다.
당시에도 박 CEO의 능력은 게임업계에서 정평이 나 있었다. 박 CEO는 넥슨코리아 대표에 오른 뒤 수평적 조직문화를 만들고자 임직원들이 서로를 부를 때 직급이나 직위 대신 ‘님’을 붙여 부르도록 했다. 또 CEO실을 포함 모든 임원실을 회의실로 쓰도록 개방했다. 이는 지금까지 이어져 하이브에서도 방 의장과 박 CEO를 ‘시혁님’, ‘지원님’으로 부른다.
이뿐 아니다. 당시 PC게임 위주로 사업을 영위하던 넥슨이 3년 만에 자체 개발 모바일 게임을 내놓을 수 있도록 사업 구조 개편에 힘을 쏟는 한편 넥슨재팬글로벌 COO를 맡으며 넥슨의 히트작 ‘메이플스토리’를 일본 게임시장에 성공적으로 안착시켰다.
게임업계 전문가라는 우려가 기우라는 것을 입증하듯 박 CEO는 하이브에서도 사업확장과 위버스 플랫폼의 성장을 이끌어냈다. 박 CEO는 HQ CEO로서 2020년 10월 당시 빅히트 엔터테인먼트의 코스피 입성까지 무사히 성공시켰다. 엔터사가 코스닥이 아닌 코스피에 상장한 것은 하이브가 최초였다. 박 CEO가 대표로서 경영능력을 입증된 셈이다.
실적 성장세도 이어졌다. 박 CEO가 하이브에 부임한 2020년 연결기준 매출은 약 8000억원었지만 지난해에는 1조7782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박 CEO가 수장을 맡은 지 약 3년 만에 매출이 두 배 증가했다. 수익성도 크게 좋아졌다. 연결기준으로 2020년 1455억원이었던 영업이익이 지난해 2369억원으로 늘어났다.
◇멀티레이블 체제 기반 사업다각화 구축 박 CEO는 하이브의 멀티레이블 체제를 안착시키고 사업을 확장하는 데 집중했다. 다시 말해 레이블은 음악와 아티스트 등 IP(지식재산권)에 집중하고 이를 기반으로 공연, 영상, 학습, 게임 등 다양한 형태의 사업을 창출하는 하이브만의 레이블-솔루션-플랫폼 사업구조를 공고히 다졌다는 의미다. 하이브가 실적 성장세를 구가한 비결이다.
특히 박 CEO는 팬덤 플랫폼의 힘에 주목했다. 그래서 글로벌 팬덤 라이프 플랫폼 위버스(Weverse)의 시너지를 확대하는 데에도 공을 들였다. 2021년 네이버의 동영상 서비스 ‘브이라이브(V-LIVE)를 인수하고 이듬해 전세계 팬과 시공간의 제약을 넘어 아티스트의 공연을 감상할 수 있는 스트리밍 서비스를 선보였다.
올해는 SM엔터테인먼트 아티스트까지 위버스에 입점시킨 게 가장 큰 수확이다. 연 초 하이브는 카카오와 SM엔터테인먼트 경영권을 놓고 대결을 펼쳤다. 그 결과 승기를 잡지는 못했지만 하이브는 SM엔터테인먼트의 주요주주로서 강력한 실력행사를 할 수 있게 됐다.
이에 따라 하이브는 강타부터 신인 보이그룹인 라이즈까지 모두 13팀의 SM엔터테인먼트 아티스트를 위버스에 입점시켰다.
박 CEO는 사업다각화에도 힘을 쏟았다. 하이브는 상장 당시 단순 K팝 엔터사를 표방하지 않고 ‘세계 최고의 엔터테인먼트 라이프스타일 플랫폼 기업’으로 성장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이에 맞춰 하이브는 지난해 자회사 하이브IM과 함께 ‘별이되어라2: 베다의 기사들’ 게임 퍼블리싱과 함께 이 게임을 개발한 플린트에 투자하겠다는 계약도 맺었다.
올해도 게임사업은 이어졌다. 하이브는 박범진 전 넷마블네오 대표가 이끄는 게임사 아쿠아트리에 300억원을 투자하고 게임 퍼블리싱 계약을 체결하는 데 성공했다. 텐센트 등 유력한 경쟁자를 제치고 성과를 이뤄낸 것이다.
하이브 관계자는 “저스틴 비버 등이 속한 미국 종합 미디어 기업 이타카 홀딩스를 인수한 것도 박 CEO의 업적”이라며 “박 CEO가 하이브의 엔터사로서 근원적 경쟁력은 물론 글로벌 사업 경쟁력을 한 단계 강화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