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어 프레셔(Peer Pressure)’란 사회적 동물이라면 벗어날 수 없는 무형의 압력이다. 무리마다 존재하는 암묵적 룰이 행위와 가치판단을 지배한다. 기업의 세계는 어떨까. 동일 업종 기업들은 보다 실리적 이유에서 비슷한 행동양식을 공유한다. 사업 양태가 대동소이하니 같은 매크로 이슈에 영향을 받고 고객 풀 역시 겹친다. 그러나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 태생부터 지배구조, 투자와 재무전략까지. 기업의 경쟁력을 가르는 차이를 THE CFO가 들여다본다.
국내 엔터테인먼트 시장은 빅3(SM, JYP, YG) 체제가 수십 년째 지속됐었다. 다만 이들은 코스닥 상장사로 계속 머물렀는데 하이브의 2020년 10월 코스피 입성은 시장의 판도를 180도 바꿨다. 그 후 엔터테인먼트 시장에서 빅3 체제가 약화됐다.
다만 하이브의 독주에도 강력한 도전자가 나타났다. 대규모 기업공개(IPO)를 모색 중인 카카오엔터테인먼트다. 이런 이유로 올해 초에 벌어진 SM엔터테인먼트 공개매수 전쟁은 향후 엔터테인먼트 시장 2강 체제 개편의 시작점으로 평가되고 있다.
◇코스피 첫 입성 엔터사, 빅3 체체 넘을 1강 군림
방시혁 의장이 2005년 시작한 빅히트엔터테인먼트는 2013년 첫 보이그룹 '방탄소년단(BTS)'을 론칭하면서 방향성이 바뀌었다. 이후 BTS가 국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을 뿐 아니라 '빌보드 메인앨범 차트 1위'를 기록하는 등 글로벌 문화 콘텐츠가 되면서 IPO가 가시화됐다.
하이브는 2020년 IPO를 추진하면서 주관사 선정 후 일사천리로 절차가 진행됐다. 하이브 IPO 특징은 기존 엔터테인먼트 업체 밸류에이션 공식을 깼다는 점이다. 특히 비교기업(Peer group) 선정에 일반적인 엔터테인먼트 기업 뿐 아니라 팬덤과 소통하는 '위버스'를 앞세워 플랫폼 기업도 비교군에 넣었다. 결과적으로 JYP엔터테인먼트, YG엔터테인먼트, YG 플러스, 네이버, 카카오가 피어그룹이 됐다.
하이브가 IPO를 통해 모집한 금액은 9625억원, 엔터테인먼트 시장 최대 규모였다. 입성한 시장도 코스닥이 아닌 코스피였다. 그간 상장 엔터테인먼트는 여럿 있어도 코스피에 입성한 곳은 하이브가 처음이었다.
이전에 유력 엔터테인먼트는 코스닥에 있었다. SM, JYP, YG로 대변되는 빅3 체제가 십 수 년 넘게 지속되면서 케이팝(K-pop) 시장이 대폭 커졌음에도 코스닥을 벗어나지 못했다. 2000년 4월 SM엔터테인먼트가 코스닥시장에 IPO를 단행할 때만 해도 당시 코스닥위원회에서는 “어떻게 딴따라(연예인을 낮잡아 이르는 말) 회사를 상장시킬 수 있겠느냐”며 퇴짜를 놓을 정도였다.
소속 연예인들이 모두 계약직의 형태라 기업의 지속 가능성에 문제가 있다는 게 주 이유였다. 때문에 빅3 엔터테인먼트는 일본과 중국 등 국내시장보다 더 큰 매출을 낼 수 있는 곳을 꾸준히 공략했고 체계적인 신인발굴과 육성시스템을 구축했다.
서바이벌 TV프로를 통해 서사를 가진 신인들도 계속 발굴해 왔다. 그런 면에서 하이브는 끝판왕 격인 미국 빌보드 시장을 겨냥해 성공했다. 하이브의 코스피 입성으로 국내 엔터테인먼트 시장은 1강 3중 체제로 바뀌었다.
◇코스피 입성시 하이브 최대 경쟁사 우뚝
올해 초 경영권 분쟁 과정에서 나온 SM엔터테인먼트 인수전은 추후 시장 향방을 변화시킬 수 있는 빅딜이었다. 하이브와 대척점에 선 카카오엔터테인먼트가 무서운 식탐을 드러낸 계기이기도 했다. 그 일이 시장 관계자에게 단순 두 기업 간의 M&A 전쟁으로만 보이진 않았다. 하이브의 1강 구도를 끝낼 수 있는 다크호스의 등장을 예견하는 시각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카카오는 뮤직(음악), 스토리, 미디어 등 엔터테인먼트 전 영역에 걸친 지식재산권(IP) 밸류 체인을 연결해 진화시키는 사업을 추진해 왔다. 2021년 콘텐츠 계열사 합병을 통해 카카오엔터테인먼트를 출범시켰고 지속적인 M&A를 통해 경쟁력을 키우고 있다.
카카오엔터테인먼트는 뮤직·스토리·미디어 3개 부문으로 나눠 운영 중이다. 올 1월에 있었던 프리IPO 과정에서 책정된 밸류는 11조원이 넘는다. 이런 회사가 국내 상장한다면 당연히 코스피일 수밖에 없다. 하이브로선 가장 강력한 경쟁자가 생기는 셈이다.
이런 곳이 SM엔터테인먼트 경영권을 손에 쥐었다. 내수기업 한계를 발목 잡혔던 카카오의 ‘비욘드 코리아’ 전략의 분기점을 찍은 딜이었다. 유명 아티스트 IP가 부족한 카카오에게 글로벌 시장에서 강력한 팬덤을 보유하고 있는 SM엔터는 천군만마나 다름없다.
SM엔터테인먼트 인수 효과는 카카오엔터테인먼트의 IPO에도 유리하게 적용된다. 2019년부터 기업공개를 준비했으나 불확실한 대외 여건 등으로 절차를 계속 미루고 있던 상태였다. SM엔터테인먼트 인수를 통해 당초 목표했던 25조원의 기업가치를 인정받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카카오가 SM 경영권 인수에 사활을 건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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