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일기예보가 맞는 법이 없다. 한 주 내내 쏟아진다했는데 그렇지도 않던걸. 온다는 비가 무소식이면 좋긴 하지만 쓸모없이 우산을 들고 다니다보면 억울해진다. 이 거추장스러운 물건을 왜 가지고 나왔을까.
기상청을 원망하긴 어렵다. 날씨는 원래 지극히 변덕스런 현상이다. 오죽하면 아주 미세한 조건만 바뀌어도 결과가 완전히 달라진다는 '카오스 이론'이 기상 시뮬레이션을 돌리다가 나왔단다. 배후에 분명 법칙은 있으나 변수가 워낙 많아 일견 무질서하다.
"일이 이렇게 될 줄 어떻게 알았겠어요?" 올 초 A기업 CFO에게 투자 계획을 물었더니 가슴 쓸어내린 일화를 들려줬다. 이 회사 CEO가 잘나가는 플랫폼기업 B 인수를 결정했는데 어딘지 불길했다고 했다. 경기에 민감한 특성, 외풍으로부터 견고하지 못한 수익구조에 비하면 그의 눈엔 가격이 지나치게 비싸보였다. 결국 CEO를 어렵사리 설득해 마음을 돌렸다.
옳았던 선택이다. 아무도 내다보지 못한 레고랜드 사태와 유례없는 글로벌 고금리에 휘말린 B기업은 쉽게 회복하기 힘든 수렁에 빠졌다. 인수를 말리긴 했지만 B회사 가치가 이 정도로 갑자기 떨어질 줄 몰랐다는 A기업 CFO는 소나기를 겨우 피했다며 어깨를 으쓱했다.
반대 사례도 있다. 최근 C기업에서 다른 곳으로 적을 옮긴 관계자와 점심을 같이 했다. 그가 일할 때 C회사는 대규모 해외 인수합병으로 시끄러웠다. 매물로 나온 D기업 측은 "오퍼가 오는 곳이 너무 많아서 당신들과 거래 성사가 힘들 수도 있다"며 애매한 태도를 보였다.
CFO는 대번에 몸값을 높이려는 블러핑(bluffing, 허세)을 의심했지만 CEO는 그의 걱정을 묵과했다. 거래를 놓칠까 초조해져 제대로 된 협상없이 덜컥 D를 사버렸다. 성장이 빨랐던 C회사는 무섭게 불어난 덩치와 달리 체계가 미비했다.
결과적으로 수년째 후유증이 계속되고 있다. 잔금을 아직 다 치르지 않았기 때문에 환율이 움직일 때마다 비용부담도 요동친다. 안팎의 평가를 보면 '너무 비싸게 샀다'는 게 중론이다. 값을 깎았더라면 이슬비에 그칠 수 있었는데 긴 장마가 됐다.
이제 '장마'란 단어가 없어질 수도 있다고 한다. 기후 변화로 비 패턴이 들쑥날쑥해지는 추세 때문이다. 도저히 예견할 수 없는 게릴라성 폭우가 잦아졌다. 지금 기상 현상의 혼란은 글로벌 경기침체로 높아진 시장의 불확실성과 닮은 부분이 있다.
하지만 질서없고 예측 불가능해 보이는 상황에서도 모종의 규칙성을 찾아내는 것이 CFO의 롤이다. 그리고 CFO의 의견이 존중받는 시스템을 만들어 예보 성공률을 높이는 것은 CEO 책임이다. 의사결정이 좀 느리고 성가셔지더라도 기습 호우가 내리면 우산은 있어야 하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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