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한국은행이 지난했던 통화 긴축기의 종료를 알렸다. 3년 2개월 만에 기준금리를 인하하며 코로나19 이후 찾아온 고금리 시대도 서서히 막을 내리게 됐다. 속도는 느릴 것으로 예상되지만 내년부터 본격적인 인하 사이클이 시작될 전망이다. 금리 인하기 초입에 들어서며 금융권에도 업황의 변화가 나타날 것으로 감지된다. 은행, 보험, 여전 등 금융업권 곳곳에 나타날 금리 인하의 여파를 조망해 봤다.
한국은행 금리인하가 시작되며 카드업계가 한숨을 돌리고 있다. 은행처럼 자체 예금으로 영업에 쓸 자금을 조달하지 못하는 탓에 대부분 여신금융전문채권(여전채)을 발행해야 한다. 고금리가 길어지면서 자금조달 비용 부담이 늘었고 이는 실적에도 악영향을 미쳤다.
2년 3개월 만에 기준금리 인하가 시작되면서 카드업계는 그간 중단해 왔던 무이자 할부 혜택을 재개하고 있다. 전업 카드사 7군데 중 3군데에서는 지난달부터 온라인과 백화점, 면세점 등 주요 업종에서 무이자 6개월 할부 서비스를 부활시켰다.
◇올 상반기 7개 카드사 이자비용 20% 상승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 상반기 기준 7개 전업 카드사 이자비용은 2조1585억원을 기록했다. 이는 작년 같은 기간(1조8098억원)에서 19.3% 증가한 수준이다.
대부분 카드사에서 이자비용이 두드러지게 상승했다. 현대카드가 2634억원에서 3492억원으로 33% 늘면서 상승률이 가장 높았다. 같은 기업계 카드사인 삼성카드도 2399억원에서 2497억원으로 4% 늘었다.
금융지주계 카드사들도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 우리카드는 26% 증가한 2108억원, KB국민카드와 신한카드가 각각 17% 증가한 3571억원, 14% 증가한 4665억원으로 집계됐다. 하나카드는 1570억원에서 1775억원으로 12% 늘었다. 롯데카드만 3698억원에서 3496억원으로 줄었다.
고금리가 길어지면서 대부분 카드사가 여파를 피하지 못했다. 지난 2020년 5월 0.5%까지 낮아졌던 기준금리는 2023년 1월 3.5%까지 올랐다. 이번 인하하기 전까지 3.5% 수준을 유지했다. 여전채 금리는 올 하반기 들어 3%대 중반까지 내렸지만 지난 2022년 11월에는 6%를 넘으면서 역대 최고치를 찍기도 했다.
고금리 시기 카드사들은 무이자 할부 혜택부터 줄였다. 여전채 금리가 6%를 넘긴 지난 2022년 11월부터 신한카드와 삼성카드를 필두로 주요 카드사가 무이자 할부 기간을 축소하기 시작했다. 조달금리가 오르면서 수익성이 악화됐다는 이유다. 지난해부터는 6개월 이상 무이자 할부 서비스가 자취를 감추기도 했다.
수익성을 회복하기 위해 고위험 상품은 늘렸다. 카드론과 현금서비스 등 고수익 대출성 상품을 늘리면서 연체율이 치솟았다. 지난 8월 말 기준 카드사 1개월 이상 연체채권 비율은 3.1%를 기록했다. 2021년 1.9%에서 2022년 2.2%로 오른 데 이어 3%까지 넘기며 증가세다. 같은 기간 카드론은 38조7881억원으로 역대 최대치를 찍었다.
◇조달부담 숨통 트이자…2년 만에 '6개월 무이자 할부' 등장 금리 인하 사이클이 도래하면서 카드사들은 6개월 이상 무이자할부 혜택을 부활시키고 있다. 금리가 낮아지면 자금조달 비용이 전반적으로 줄면서 다시 소비자에게 혜택을 줄 만한 여건이 생기기 때문이다. 그간 '혜자카드' 단종 행렬이 이어진데다 무이자 할부 등 혜택이 축소되면서 소비자들이 체감할 수 있는 혜택이 줄었다는 불만이 있었지만 이번 금리인하를 계기로 일부 재개하는 모습이 포착되고 있다.
우리카드와 BC카드, NH농협카드는 지난달부터 전자지급결제대행(PG)사 가맹점에 대해 6개월 무이자 할부 서비스를 재개했다. 온라인과 백화점, 면세점 등에서 이용하는 6개월 무이자 할부 혜택이 등장한 건 2022년 말 이후 1년8개월 만이다. 지난 8월 신한·삼성·KB국민·롯데·우리카드 등 주요 카드사들도 길어야 3개월이었던 무이자 할부 기간을 5개월까지 늘리기도 했다.
다만 12개월 무이자 할부로 혜택을 확대하기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카드론을 더 늘려선 안 된다며 감독당국이 예의주시하는 탓에 기껏 끌어올린 수익성이 제자리로 돌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 금리인하 기대가 여전채 금리에 선반영된 만큼 예상한 것보다 조달금리 부담을 즉시 덜어내기 어려울 것이란 전망도 있다.
글로벌 경제 불확실성에 따라 자금조달 환경이 악화될 가능성도 여전하다. 카드업계 관계자는 "이미 3개월 전부터 금리인하 기대가 여전채 금리로 반영돼 다소 안정된 상태에 있었다"며 "실제 금리인하가 이뤄진다 하더라도 이보다 더 낮은 금리로 조달할 수 있는 여지가 크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