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전 세아베스틸의 물적분할 이후 업계에서는 세아그룹의 계열분리 가능성을 점쳤다. 이태성 사장이 세아홀딩스와 세아베스틸 계열을, 이순형 회장·이주성 사장 부자가 세아제강지주 계열을 가져가 한 그룹이 두 개로 분리될 것이라는 시나리오였다.
실제 친척 간 경영에서 계열 분리가 이뤄지는 사례는 적지 않았다. 다만 세아그룹의 경우 상황이 사뭇 다르다. 계열분리로 실익이 있겠냐는 의견부터 애초에 계열분리가 원활하게 가능한 상황이 아니라는 분석도 나온다.
◇LX·LT 사례와 비교해 보니…오너간 '딜' 조건 성사 어렵다 통상의 계열분리는 오너들 간의 거래로 이뤄진다. 쉽게 '오고 가는 것'이 있어야 분리가 이뤄지는 셈이다. 최근 이뤄진 타 기업집단에서의 계열 분리 사례로는 LG-LX그룹, 희성-LT그룹 사례가 있다.
고(故) 구본무 전 LG그룹 회장의 건강이 악화하면서 잠시동안 LG그룹을 이끌었던 구본준 LX그룹 회장은 2021년 현 구광모 회장 체제가 자리 잡고 나서 보유하고 있던 ㈜LG의 지분을 정리했다. 일부는 매각했고 일부는 LG그룹 공익법인에 기부했다. 그 금액으로 구본준 회장은 LX홀딩스의 지분을 매입했다. 대신 구광모 회장은 LX홀딩스의 보유 지분을 정리했다. 구광모 회장은 ㈜LG의, 구본준 회장은 LX홀딩스의 지배력이 높아지면서 자연스럽게 계열 분리가 이뤄졌다.
구본능 희성전자 회장과 구본식 LT그룹 회장 역시 서로 간의 거래를 통해 계열분리가 이뤄졌다. 2017년 희성전자는 보유하고 있던 삼보이엔씨(현 LT삼보) 지분 93.5%를 구본식·웅모 부자에게 매각했다. 대신 구본식·웅모 부자는 보유하고 있던 희성전자 지분을 희성전자에 넘겼다. 구본식·웅모 부자는 삼보이엔씨를 중심으로 LT그룹을 구축했고, 구본능 회장은 자사주를 활용해 희성전자를 중심으로 한 그룹 지배력을 높였다.
이처럼 계열분리는 두 오너가 물물교환을 할 수단이 있을 때 원활히 이뤄진다. 구본준 회장이 ㈜LG 지분이 없었거나, 구본식·웅모 부자가 희성전자 지분이 없었다면 오늘날의 계열분리는 이뤄지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
다시 세아그룹으로 돌아오면 이태성 사장-이순형·주성 부자 간에는 '오고 갈 만한 것'이 없다. 우선 이순형·주성 부자는 세아홀딩스 지분을 각각 8.66%, 17.95%를 보유하고 있다. 계열분리를 위해서는 이 지분을 이태성 사장 쪽으로 넘겨야 한다.
그런데 이태성 사장 측이 이 지분을 사들이고 대가로 치룰만한 자산이 딱히 보이지 않는다. 이태성 사장이 이순형·주성 부자의 세아제강지주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지겠지만 그도 아니다. 희성-LT그룹 사례처럼 세아홀딩스가 세아제강지주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세아홀딩스가 부자의 지분을 자사주 형태로 매입하려면 최근 세아홀딩스 주가 기준 약 1200억원의 현금이 필요하다. 다만 3월 말 기준 세아홀딩스의 별도 현금성자산은 50억원도 채 안된다.
◇이태성-이순형·주성, 각자 영역에서 이미 확고한 지배력 또 두 오너 주체들은 이미 각자의 계열에 확고한 지배력을 가지고 있다. 이태성 사장은 세아홀딩스 지분을 35.12% 보유하고 있다. 여기에 이 사장의 모친인 박의숙 세아이운형문화재단 이사장이 지분 10.65%를, 이태성 회장의 개인회사인 에이치피피가 지분 9.38%를 보유하고 있다.
반대로 이순형·주성 부자도 세아제강지주의 지분을 50% 이상 보유하고 있다. 이순형 회장은 12.56%, 이주성 사장은 21.63%의 지분을 보유 중이다. 이순형·주성 부자의 개인회사인 에이팩인베스터스도 세아제강지주 지분을 22.82% 보유하고 있어 지배력이 흔들일 일은 없다. 각자가 각자의 사업체에서 지배력을 갖춰놓은 상황이라 지분 교환 등의 여지가 적다.
또 계열분리가 이뤄지게 되면 자산 축소로 인해 재계순위 하락도 예상된다. 작년 세아그룹은 자산총액 10조원 돌파로 6년만에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으로 복귀했다. 올해 발표된 공정위 재계순위는 42위다. 계열분리가 이뤄지면 세아홀딩스나 세아제강지주 계열이나 자산이 축소된다.
사업적으로도 '세아'라는 이름 하에 시너지 효과가 나는 부분이 있어 계열분리 가능성은 더욱 적다는 분석도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LG의 경우 장자승계와 형제간 계열분리가 승계 작업의 기본 원칙으로 삼기 때문에 계열분리 작업이 활발한 것"이라면서 "세아라는 이름으로 함께 할 때 비즈니스적 시너지가 발휘되고 이미 두 지주사는 글로벌 마케팅 등을 협력 속에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