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NK금융그룹의 부산은행이 당분간 퇴직연금 확정급여형(DB) 적립금을 정기예금으로만 운용하기로 했다. 부산은행은 지난해 DB 적립금 일부를 OCIO 펀드에 투자하는 안을 검토했지만, 시장 부진으로 원리금보장형 상품 운용이 낫다고 판단했다. 경영진 간 운용방식 변경과 관련해 활발한 의견 교환이 이뤄졌다는 후문이다.
2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부산은행 DB 적립금 일부에 대한 실적배당형 상품 운용 전환 시도가 결국 무산됐다. 부산은행의 지난해 말 확정급여형 퇴직연금 적립금은 4297억원으로 이중 6~7%가량을 신한자산운용과 KB자산운용, 키움자산운용 등 복수의 공·사모 OCIO 콘셉트 펀드에 투자하는 안을 검토해 왔다.
부산은행은 하나은행 연금사업에 몸담아온 상무급 임원을 영입하는 등 퇴직연금 사업 확대에 드라이브를 걸었지만, 자사 DB 적립금 운용 방식을 다변화하는 데까지 나아가진 못했다. 부산은행은 퇴직연금 제도 도입 후 현재까지 DB 적립금의 99.9% 이상을 원리금보장형 상품, 특히 정기예금에 태워 적립금을 운용해 왔다.
당시 부산은행의 DB 적립금 실적배당형 상품 운용 시도에는 BNK금융지주 측도 긍정적 의견을 내비쳤다고 전해진다. 같은 지주 계열의 경남은행 역시 비슷한 시기 실적배당형 상품 투자를 검토했는데, 별도의 퇴직연금 사업자를 거치지 않고 개별 자산운용사에 직접 컨택해 투자 상품을 소개받아 왔다고 알려졌다.
지난해 근로자퇴직급여 보장법 개정안이 본격 시행되면서 DB 제도를 운영하는 상시 근로자 300인 이상 사업장에는 적립금 운용위원회 설치와 연 1회 이상 운용계획서 작성 의무가 생겼다. 그간 원리금보장형 상품으로 적립금을 운용해 온 은행이 펀드를 검토하자 시장에선 제도 개선 효과를 기대하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지난해 BNK금융지주 측에서 퇴직연금 DB 적립금 비히클로 OCIO 펀드를 검토하면서 DB 적립금 운용에 보수적인 일반 기업들도 펀드를 채택할 수 있겠다는 기대가 생겼다"며 "실제 부산은행이 펀드에 투자를 집행하고 어느 정도 성과가 나오면 투자를 검토하겠다고 말하는 지방은행들이 있었다"고 말했다.
실제 DGB금융그룹의 대구은행 등이 DB 적립금의 일부를 실적배당형 상품으로 운용하는 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룹 계열사인 하이자산운용이 OCIO 펀드 론칭을 목전에 두고 있는 상황인데, 해당 펀드에 시딩 자금 투입 여부를 검토하는 과정에서 지방은행 사례를 꼼꼼히 따져보고 있다는 전언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상품 검토가 투자 집행으로 이어지진 않았다. 지난해 연말까지 금리가 계속 오르면서 채권 가격이 하락하자 '시장이 불안한데, 지금 굳이 실적배당형 상품으로 전환해야 할 필요가 없다'는 목소리가 제기된 것으로 전해진다. 운용업계 관계자는 "임원들 간 의견이 엇갈렸지만 부행장급 라인에서 의견이 정리됐다"고 전했다.
일반 기업 DB 적립금 운용 성과는 부채 규모 산정에 직결되고 결과적으로 재정 건전성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부산은행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DB 적립금 운용 수익률이 1%포인트 떨어질 때마다 확정급여채무는 338억원 늘어난다. 임금상승률이 1%포인트 감소하면 거꾸로 확정급여채무는 305억원 줄어들게 된다.
채권 가격 하락에 따라 수익률이 떨어질 경우 부산은행 입장에선 상당한 부담일 수밖에 없다는 것. 지난해의 경우 주식과 채권 가격이 동반 하락하면서 주요 자산운용사 OCIO 펀드 수익률은 너나 할 것 없이 마이너스 수익률을 냈다. 정기예금 비히클을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임원들의 의견이 맞아떨어진 셈이다.
부산은행 측은 앞으로 당분간 실적배당형 상품 검토를 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지난 3월 방성빈 부산은행장이 취임하면서 DB 적립금의 실적배당형 운용을 진행하기엔 내부 설득 작업을 새로 시작해야 한다는 부담도 있다는 후문이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시장 상황이 개선되면 상품 검토를 적극 타진해 볼 계획"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