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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은행, 자기자본 '상장주' 투자 재개…톱픽 'SK하이닉스'

1분기 30개 종목 투자, ALM 정교화 차원…행동주의 타깃 '에스엠·SBS'도 쇼핑

최필우 기자  2023-06-09 14:11:19
대구은행이 은행권에서 이례적으로 상장 주식 투자를 늘리고 있다. 국내 은행의 주식 투자는 허용돼 있지만 유동성 관리 차원에서 채권을 비롯한 안전 자산 만으로 자금을 운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대구은행은 ALM(자산부채관리) 인력과 시스템 경쟁력을 갖추는 차원에서 주식 비중을 점차 늘리고 있다.

대구은행의 톱픽은 SK하이닉스다. 반도체 산업 전망을 긍정적으로 보고 삼성전자에도 높은 비중으로 투자했다. LG에너지솔루션을 비롯한 배터리·전기차 섹터와 에스엠·SBS 등 행동주의 펀드의 타깃이 된 종목도 쇼핑했다.

◇공격적 포트폴리오 확대, '반도체·전기차' 섹터 선호

9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대구은행은 지난해 12월 28일부터 지난 3월 29일까지 상장 주식 30개 종목에 새로 투자했다. 30개 종목 최초 취득 금액은 약 62억원이다. 1분기 말 장부가액은 67억원으로 약 5억원 수준의 평가이익이 발생했다.


대구은행의 타법인출자 현황을 보면 2012년 3월 금호건설, 2015년 3월 STX중공업, 2020년 8월 비츠로시스 등 상장 주식 지분을 취득한 전례가 있다. 다만 대출채권이 주식으로 출자전환된 경우였다. 본격적으로 상장주식 투자 포트폴리오를 구축하고 이를 공시하기 시작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대구은행 관계자는 "자금운용부에서 조금씩 주식을 투자했었고 지난해 비웠던 운용 북을 올들어 다시 주식으로 채워 놓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내 은행은 자기자본의 100% 수준으로 유가증권에 투자할 수 있다. 하지만 유동성을 철저하게 관리해야 하는 은행 특성상 채권을 비롯한 이자부 자산이 운용 자금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몇몇 은행에서 적극적으로 주식을 운용하던 프롭데스크(Proprietary trading desk, 자기자본거래) 조직도 이젠 존재감이 미미하다.

대구은행은 지난해 12월 삼성전자에 4억원을 투자한 것을 시작으로 종목 수를 늘려갔다. 1월에 17개, 2월에 8개, 3월에 4개 종목을 추가로 편입하면서 총 30종목으로 구성된 포트폴리오를 꾸렸다.

최초 취득금액 기준 투자 규모가 가장 큰 종목은 SK하이닉스다. 대구은행은 1월 SK하이닉스에 4억5000만원을 투자했다. 최근 인공지능(AI) 산업 발전에 대한 기대감으로 반도체 섹터 주가가 상승하고 있지만 1월만 해도 업황 악화에 대한 우려가 고조되고 있었다. 대구은행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주가가 저평가돼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보수적 기조로 주식에 투자해야 하는 은행 특성을 고려해 벤치마크(BM)를 추종하려는 의도도 엿보인다.

배터리·전기차 섹터도 긍정적으로 봤다. 배터리 소재 기업인 고려아연에 2억7000만원을 투자했다. 이는 30개 종목 중 세번째로 높은 취득금액이다. 2차전지 기업 LG에너지솔루션과 삼성SDI에는 각각 2억6000만원, 2억5000만원을 투자했다.

지난 3월에는 에스엠와 SBS을 포트폴리오에 추가하면서 전략을 다변화했다. 대구은행은 카카오의 에스엠 공개 매수 성공 직후 에스엠 투자를 결정했다. 에스엠은 행동주의 펀드 얼라인파트너스의 주주 제안을 바탕으로 경영 방침에 변화를 준 기업이다. 마찬가지로 얼라인이 이사 선임에 영향을 미친 SBS도 대구은행의 선택을 받았다.

◇주식 '인력·시스템' 구축 목적, '자산운용·증권업계' 출신 CFO 영향

대구은행은 투자 수익 극대화보다 ALM 전략 고도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대구은행의 상장주식 투자 금액은 전체 운용 자금을 고려할 때 미미한 수준이다. 작은 금액으로나마 주식 운용 노하우를 축적하기 위해 인력과 시스템을 갖춰 나가고 있는 단계다.

국내 금융권에는 은행의 자금 운용 기조가 지나치게 보수적이라는 견해도 존재한다. 이자 수익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은행에 투자일임업을 허용해 달라는 여론이 조성되고 있지만 위험자산 운용 경험이 없다시피해 경쟁력이 없다는 것이다. 대구은행은 주식 투자를 활발히 이어가면서 운용 경험을 누적하고 있다.

대구은행은 지난해 말 증권업계 출신 CFO를 새로 영입하기도 했다. 이은미 대구은행 경영기획본부장(상무)은 대우증권(현 미래에셋증권) 주식 애널리스트 출신이다. 미국 컬럼비아 비즈니스 스쿨, 영국 런던 비즈니스 스쿨, 홍콩대 MBA를 거쳤고 스탠다드차타드 싱가폴, 도이치은행 서울지점, HSBC 서울지점, HSBC 홍콩 지역본부 등에서 근무해 글로벌 금융기관의 자금 운용 사정에 밝다.

지주에도 자산운용 전문가가 CFO로 취임했다. 천병규 DGB금융지주 그룹경영전략총괄(전무)은 홍콩 폴리텍 대학교 경영학 박사 출신으로 NH투자증권 홍콩법인 헤드를 지냈다. KB자산운용, 우리CS자산운용(현 키움투자자산운용) 등에서 근무해 자산운용 전략 수립에 능통하다.

천병규 DGB금융지주 CFO는 "전체적인 유동성 비율에 영향을 주는 정도의 주식 포지션을 가져갈 순 없고 자금운용 파트에서 한도 내에서만 운용하고 있다"며 "ALM 전략을 짤 때 이자부 자산 만으로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위험자산 투자를 정교하게 해야하고 장기적으로 인력과 시스템에 대한 준비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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