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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증권 평가손익 해부

5대 금융지주, 채권손실 9조 넘었다…농협·신한 '최다'

2년 전 대비 19배로 급증, 보험사 비중多…시중은행 평가손실은 3조

고진영 기자  2023-04-25 16:57:19

편집자주

주식과 채권의 가치는 대개 반대로 움직인다. 금리 변동에 따라 돈이 움직이는 특성 때문이다. 하지만 2022년은 두 자산이 동시에 급락한 이례적인 해였다. 유가증권의 위기는 기업들이 가진 금융자산의 가치 하락으로 이어진다. 미국 SVB 사태가 유가증권자산 리스크 관리의 중요성을 보여준 준 대표적 사례다. 국내 기업들이 보유한 유가증권의 공정가치는 얼마나 등락했으며 재무제표에는 어떻게 인식됐을까. 손익계산서에 나타나지 않는 미실현 손익까지 THE CFO가 분석해본다.
유가증권자산 리스크에 대한 경계심이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국내 금융지주사들이 전례없는 수준의 채권 평가손실을 기록했다. 모두 합치면 10조원에 육박한다.

물론 국내 은행의 경우 대출을 중심으로 수익을 내다 보니 '한국판 SVB(실리콘밸리은행)' 사태가 일어날 가능성은 사실상 없다는 게 중론이다. 하지만 채권 평가손실이 자본건정성을 해친다는 데는 변함이 없다. 특히 보험사를 보유한 금융지주들의 타격이 컸다.

국내 5대 금융지주들이 기타포괄손익-공정가치측정자산으로 분류하는 채무증권 자산에서 발생한 손실은 2022년 총 9조2556억원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2년 전만해도 손해가 5000억원 수준이었는데 19배 가까이 폭증한 셈이다. 느닷없는 고금리 기조에 직격타를 맞았다.

채권자산 대비 손실 규모는 농협금융(5.60%), KB금융(4.27%), 신한금융(3.94%), 하나금융(2.48%), 우리금융(1.44%) 순이다. 손실 액수별로 보면 농협금융지주가 약 3조689억원으로 가장 많았는데 농협생명보험 탓이다.

지난해 농협생명보험은 매도가능금융자산에서 5조원이 넘는 평가손실이 발행하면서 완전자본잠식에 빠졌다. 연말 기준 자본총계가 마이너스(-) 1452억원까지 하락했다. 다만 농협생명이 발행한 2500억원 규모의 신종자본증권을 농협금융지주가 올 초 인수하면서 현재는 자본잠식을 간신히 벗어난 상태다.


농협금융지주 다음으로 손실 규모가 큰 신한금융지주(2조4477억원)와 KB금융지주(2조3751억원) 역시 보험사가 입힌 손해가 컸다. KB금융지주의 경우 KB라이프생명보험(옛 푸르덴셜생명보험)이 가진 매도가능금융자산에서 약 1조2000억원, KB손해보험에서 약 9000억원의 평가손실이 났다. 신한금융도 종속 자회사인 신한라이프생명보험이 1조7000억원 수준의 손실을 입었다.

이밖에 보험사 규모가 작은 하나금융, 보험사가 없는 우리금융은 상대적으로 채권손실이 크지 않았다. 평가 손실액이 각각 9002억원, 4637억원에 그쳤다. 조단위 손실을 입은 다른 금융지주들과 비교하면 양호하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은행만 따로 떼어놓으면 순위가 달라진다. 신한은행이 7886억원으로 가장 많은 평가손실을 냈고 하나은행(5788억원), 농협은행(5708억원), KB국민은행(4672억원), 우리은행(4637억원)이 뒤를 따랐다. 5개 은행을 합쳐 총 2조9000억원 수준이다. 신한은행의 경우 보유하고 있는 기타포괄손익-공정가치측정 채권자산이 약 47조5000억원으로 5대지주 중 최대 규모이다 보니 손실도 컸다.


보유 자산을 감안해서 채권손실 비중을 따지면 농협은행(1.97%)과 하나은행(1.80%)이 최고였고 그 뒤로는 신한, 우리, KB국민은행 순이다. 관리 측면에서 특히 국민은행의 선전이 두드러진다. 하나은행과 농협은행은 국민은행보다 기타포괄손익-공정가치측정 채무증권을 약 6조~9조원가량 적게 가지고 있지만 평가손실 규모는 오히려 1000억원 이상 컸다.

다만 국민은행은 5대 시중은행 중 유일하게 채권이 아닌 지분상품에서도 수천억원의 평가손실을 봤다. 지난해 기타포괄손익-공정가치측정 지분증권에서 9540억원 가치 하락이 발생했다. 카카오뱅크 지분이 원인이다.

국민은행은 카카오뱅크가 출범할 때부터 주요 주주로서 연착륙을 적극적으로 도왔다. 설비를 빌려주고 인력까지 지원했다. 문제는 지난해 카카오뱅크 주가가 급락하면서 보유 지분의 가치도 수직 하강했다는 점이다. 2022년 연초 5만9000원대였던 주가는 연말 2만4000억원 수준으로 떨어졌다.


작년 8월엔 국민은행이 보유지분(8.02%) 중 1481만주를 팔아 지분율을 4.88%로 낮추기도 했다. 은행 측에선 카카오뱅크 주식이 자본비율에 미치는 부담을 줄이기 위한 결정이라는 설명이다. 실제로 남은 카카오 지분에서 한 해 동안 발생한 평가손실만 8000억원을 넘는다. 또 주식을 매도할 때 4500억원에 상당하는 처분손실이 생겼다. 2조원대였던 장부가액 역시 5660억원으로 쪼그라들었다.

나머지 4개 은행의 경우 기타포괄손익-공정가치측정 지분상품과 관련한 평가손이 많아도 수백억원 수준에 불과했다. 국민은행을 제외하면 가장 많은 하나은행이 580억원 정도의 손해를 봤고 농협은행의 경우 지분상품 평가손실 규모가 97억원 정도에 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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