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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증권 평가손익 해부

카카오에 '병주고 약 준' 두나무

⑨코인 침체로 1조 평가손실…자산 재분류에 따른 처분이익이 방어

고진영 기자  2023-04-24 08:05:19

편집자주

주식과 채권의 가치는 대개 반대로 움직인다. 금리 변동에 따라 돈이 움직이는 특성 때문이다. 하지만 2022년은 두 자산이 동시에 급락한 이례적인 해였다. 유가증권의 위기는 기업들이 가진 금융자산의 가치 하락으로 이어진다. 미국 SVB 사태가 유가증권자산 리스크 관리의 중요성을 보여준 준 대표적 사례다. 국내 기업들이 보유한 유가증권의 공정가치는 얼마나 등락했으며 재무제표에는 어떻게 인식됐을까. 손익계산서에 나타나지 않는 미실현 손익까지 THE CFO가 분석해본다.
카카오가 지난해 두나무 이사회에서 발을 뺀 것은 시장에 여러 추측을 불러일으킨 결정이다. 곧이어 두나무 주식까지 자회사에 넘기면서 두 회사의 '케미'에 이상신호가 있다는 이야기가 불거졌다.

의도야 어찌됐든 두나무와의 표면적 결별은 카카오 재무에 무시할 수 없는 영향을 미쳤다. 두나무가 관계기업에서 빠짐과 동시에 1조원을 훨씬 넘는 처분이익을 챙겼지만 주식가치 하락에 따른 평가손실도 불가피했다.

◇공정가치 자산으로 이동한 두나무, 처분이익 '1.4조'

애초 두나무는 카카오 계열사가 아니냐는 오해를 살 정도로 관계가 가까웠다. 설립 초기부터 김범수 의장이 관심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김 의장은 개인투자회사였던 케이큐브벤처스(현 카카오벤처스)를 통해 먼저 두나무에 지분 투자를 했다. 카카오 역시 2015년 33억원을 주고 두나무 지분 9.5%를 뒤따라 사들였다.

지분관계뿐 아니라 경영진 구성을 봐도 두나무는 카카오 색이 짙었다. 이사 선임권이 대표적이다. 카카오의 지명으로 이성호 카카오M 전 대표가 2019년 두나무 사외이사에 올라 가교 역할을 책임졌다.

관계에 변화의 조짐이 보인 것은 2022년 초 즈음이다. 우선 두나무 이사진에서 이성호 전 대표가 물러났다. 경영권 감독에서 손을 뗀 셈이다. 회계처리 방법도 바꿨다. 원래 두나무를 관계기업으로 분류해 지분법 이익을 반영했지만, 지난해 1분기부턴 '기타포괄손익-공정가치 측정금융자산'으로 재분류했다. 두나무에 대해 유의적인 영향력을 상실했다는 이유를 들었다. 임원 선임권을 행사하지 않기로 한 만큼 전략적 투자자에서 재무적 투자자로 역할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자산 분류법이 변경되면서 두나무 주식은 장부가치가 수직 상승했다. 지난해 상반기는 두나무가 기업가치 10조원의 '데카콘'으로 등극, 몸값이 나날이 치솟던 시기다. 덕분에 카카오가 보유한 두나무 지분의 공정가치도 껑충 점프했다. 기존 장부가가 930억원 수준이었는데 1조4895억원으로 뛰었다. 차액인 1조3964억은 관계기업 투자주식 처분이익으로 인식돼 당기순손익에 그대로 더해졌다.


◇몸값 떨어졌는데 현물출자, 조단위 손실 실현

또 작년 연말에는 카카오가 두나무와의 멀어진 간격을 조금 더 벌렸다. 지분상품 포트폴리오를 재배치하면서 두나무 주식을 전부 카카오인베스트먼트에 현물출자하기로 했다. 이밖에도 보유 중이던 SK텔레콤, SK스퀘어, 휴먼스케이프, 일본 카도카와(Kadokawa) 주식을 같이 넘겼다. 문제는 그 새 가상자산 시장에 침체기가 왔다는 점이다. 두나무 기업가치도 곤두박질했다.

현물출자 결정을 내린 2022년 11월 두나무 공정가치를 보면 5780억원으로 산정됐다. 비상장사이기 때문에 외부회계법인을 통해 가치평가가 이뤄지는데, 3분기 말 장부가와 비교해 9000억원 수준이 날아간 셈이다.

게다가 실제 출자가 진행된 같은 해 12월 28일에는 두나무 공정가치가 더 하락했다. 카카오인베스트먼트가 넘겨받은 두나무 주식의 공정가치는 4653억원이다. 'DCF모형'을 써서 측정한 가액이며 기존보다 1000억원이 추가로 깎였다. DCF 방식은 매년 발생시킬 현금흐름(Free Cash Flow;FCF)을 바탕으로 기업의 가치를 평가한다.

복잡한 가격 추이를 처음부터 따져보면 두나무 장부가격은 2021년까지 1주당 2만4700원이었다가, 공정가치측정자산으로 옮겨가면서 39만5000원으로 뛰었고, 현물출자를 결정했을 때는 15만7000억원, 출자 시점엔 다시 12만6000원 수준으로 떨어졌다는 얘기가 된다.


두나무 주식을 포함해 SK텔레콤 등 카카오에서 카카오인베스트먼트로 이동한 지분상품 가치는 총 1조200억원 수준이다. 2021년 말 기준 이 주식들의 장부가치(약 2조2000억원)와 비교하면 약 1조1900억원이 모자란다. 지난해 카카오 별도 재무제표에서 1조1700억원에 이르는 공정가치측정자산 평가손실이 발생한 배경이다.

이 손실은 고스란히 자본에서 빠져나갔다. 평가손실이 일어난 뒤 처분까지 실행됐기 때문에 미실현 손실이 아니라 다시 회복될 수 없는 손실이다. 두나무에서 생긴 가치 하락분만 약 1조원으로 대부분을 차지했다.


◇'절묘'한 재분류…지난해 순이익 87% 지탱

다만 카카오 입장에서 아주 손해보는 장사를 했다고 보긴 어렵다. 앞서 두나무 주식을 재분류했을 때 1조4000억원에 육박하는 처분이익을 냈기 때문이다. 평가손실과의 갭을 계산해보면 오히려 5000억원을 이득봤다.

게다가 기타포괄손익-공정가치측정자산에서 생긴 평가손실의 경우 손익계산서를 거치지 않고 자기자본에 바로 인식되는 반면, 관계기업 투자주식의 처분이익은 순손익에 반영되기 때문에 수익지표 측면에서 더 유리하다.

업계 관계자는 "지난해 두나무 몸값이 고공행진했을 때부터 이미 1년 정도 있으면 떨어질 수 있다는 예측이 많았다"며 "카카오가 적당한 시기에 두나무 공정가치를 평가받은 셈인데 이런 판단이 작용했을 수 있다"이라고 평했다.

구체적으로 두나무 처분이익은 카카오 손익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2022년 말 카카오의 별도 당기순이익은 1조6173억원을 기록했다. 영업이익이 5511억원에 불과했는데 순이익이 그 3배 수준을 보인 이유는 기타수익 덕분이다. 두나무 재분류에 따른 처분이익이 잡히면서 기타수익으로 1조4047억원이 계상됐다. 순이익의 87%에 달한다. 두나무를 재분류하지 않았더라면 작년 카카오의 순이익은 2000억원대에 그쳤을 거란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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