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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사 콜옵션 리뷰

농협금융, 자회사 자본건전성 위해 '빅 이슈어' 변신

③KIC-S 긴급 대응 필요했던 농협생명·손보에 집중 수혈

최은수 기자  2024-10-24 08:38:19

편집자주

2022년 흥국생명의 달러화 신종자본증권의 조기상환(콜옵션) 선언은 자본시장에 파문을 일으켰다. 흥국생명은 자금상황 및 해외채권 차환 발행 여건 등을 고려해 콜옵션 미행사를 선언했다. '관행'과 불문율이 가져온 혼란 우려에 흥국생명은 결국 입장을 바꿨다. 콜옵션 논쟁은 수면 아래로 내려갔지만 금리 추이에 따라 언제든 불거질 이슈다. THE CFO는 흥국생명 사태 2년을 즈음해 신종증권을 발행한 금융사들의 대응 논리와 전략을 들여다본다.
농협금융은 2010년대까지 국내 금융지주 중에선 상대적으로 평이한 채권발행실적을 보인다. 핵심 금융 자회사인 농협은행의 자본 및 재무 건전성이 오랫동안 안정적인 추이를 보였고 디지털 전환과 ESG경영 등 새로운 도전 역시 비교적 순항한 결과다.

그러나 NH농협생명과 NH농협손해보험 등 보험 자회사들의 자본 건전성 관리가 현안이 됐다. 농협생명은 해법을 우량한 신용등급을 가진 금융지주에서 채권을 발행한 후 이를 모회사에 수혈하는 자본 확충 전략에서 찾았다. 고금리 시대인 2020년대 들어 농협금융의 채권 발행규모가 오히려 늘어난 이유다.

◇발행 하위권→2020년대 들어 돌연 빅 이슈어로 점프

농협금융이 채권발행 규모를 기준으로 2010년대 10위권 안에 이름을 올린 적은 단 두차례였다. 각각 2014년(2위)과 2018년(5위)이다. 더욱이 2018년은 순위권에 들었지만 발행규모가 간신히 1조원을 넘겼다. 발행실적 1위를 두고 수조원의 채권을 찍어내며 엎치락뒤치락해 온 신한·KB·하나금융(이하 발행실적 순) 등 금융지주와는 다른 행보였다.


2010년대 농협의 발행실적이 다른 금융지주보다 상대적으로 낮았던 이유는 무엇일까. 가깝게는 신용·경제사업구조 개편(신경분리) 초기였던 점 그리고 협동조합이란 특수성이 작용했기 때문이다.

농협금융은 2012년 신경분리 이후 부족했던 자본금 대부분을 차입을 통해 충당했다. 농협의 신경분리 취지는 산업자본(기업)이 은행을 소유하지 못하도록 하는 금산분리와 동일하다. 다만 협동조합 특성상 금융지주 및 자회사에 대해 중앙회의 관리·감독 권한을 인정한다. 중앙회 차원에서 자본확충보단 차입을 선택하는 기조를 장기간 이어왔다.

다만 차입은 회계적으로 부채에 해당한다. 차입을 늘려도 금융지주 자본 관리에 필요한 자본확충 효과는 얻을 수 없다. 신경분리 초기 단계를 지나 각 사업회사별로 자본안정성과 관련한 당국의 요구치를 맞추려면 별도의 증자 외엔 채권 발행시장에서 자본성증권을 확보하는 수밖엔 없었다.

이 고민은 농협금융의 채권발행 기조가 2020년 이후부터 극적으로 바뀐 계기였다. 발행실적을 기준으로 볼 때 농협금융은 2021년엔 3위, 2022년엔 5위를 기록했다. 발행총액은 여전히 1조원 중반이었지만 코로나19로 채권 시장 분위기가 전반적으로 얼어붙었던 점을 고려하면 상당한 진전이었다.

◇자본적정성 위해 '급전' 필요했던 금융자회사 수혈 매개체로

다만 농협금융 채권시장에서의 행보 변화는 단순히 지주사 자체의 문제만으로 보긴 어렵다. 감독당국 등으로부터 엄중한 관리기준을 요구받는 금융지주로서의 '룰'에 맞추기 위해 자본성증권 발행 증액이 필요한 건 맞았다. 그러나 근본적인 원인은 '금융자회사'의 자본확충 이슈에 있었기 때문이다.

신경분리 이후부터 고도화되는 회계제도와 자본건전성에 부합하지 못하는 금융자회사들이 수면 위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 가운데 가장 크게 부각된 곳들이 보험사였다. 새 보험회계제도에 대응해야 했던 보험자회사 2곳인 NH농협생명과 NH농협손해보험은 이 기간 꽤 긴박하게 자본확충을 요구받았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2022년 말 기준 NH농협생명이 보험 건전성기준인 K-ICS 비율을 맞추기 위해선 최소 1조원의 가용자본을 만들어야 했다"며 "이에 금융지주 차원에서 만기가 없고 발행사가 부실 금융기관으로 지정되면 투자금을 전액 돌려받을 수 없다는 조건이 달린 상각형조건부자본증권을 집중적으로 발행해 자본을 수혈했다"고 말했다.

다만 2021년 이후 국내를 포함한 글로벌 기준금리는 대세상승기로 들어섰다. 게다가 원달러 환율이 하락하며 외화채권 발행환경까지 급속하게 나빠졌다. 물론 농협금융이 외화채권을 선호하진 않는다. 다만 발행환경 악화는 채권 시장에 전반적인 악영향을 주는 요인이다. 특히 발행환경이 발행사에게 불리해질수록 쿠폰(이자율)은 상승한다.

그럼에도 농협금융으로선 선택지가 많지 않았다. 먼저 1조원이 넘는 증자를 단기간에 끝내는 건 사실상 불가능했다. 2~3년 전 대비 100bp 이상 오른 채권 금리는 다소 부담이 됐지만 자본확충이 급한 금융자회사에 대한 수혈이 먼저였다. 농협금융이 2020년 이후 줄곧 1조원 이상의 채권을 찍어낸 근본적인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농협금융은 빅 이슈어로의 변신을 감내할만한 체력은 예나 지금이나 충분하다. 농협금융이 발행한 상각형조건부자본증권의 경우 지급능력을 가늠하는 지표로 이자보상배율 대신 배당가능이익을 선호한다. 상법상 조건부자본증권의 이자 지급은 배당가능이익 한도에서 지급되기 때문이다.

2023년말 기준 농협금융의 배당가능이익은 1조2476억원이었다. 매년 수익성이 늘어나며 5% 안팎으로 순증세를 보인다. 비록 짧은 기간 채권발행이 늘어 금리 부담도 늘었지만 당해 배당가능이익이 채권발행규모와 비슷해 이를 상쇄한다. 현재까지는 상환 능력을 충분히 갖췄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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