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이노베이션의 화학 자회사인 SK지오센트릭은 매출 중 범용 화학 제품 비중이 약 40%다. 글로벌 석유화학 시황에 실적이 술렁이는 구조적 한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배경이다. 작년 석유화학 불황기와 더불어 예정됐던 투자들이 집행되면서 SK지오센트릭에 '크레딧 이슈'라는 그림자가 점점 드리워졌다. 이런 상황 속에서 임원으로 막 승진한 강귀은 부사장이 SK지오센트릭의 재무실장으로 선임됐다.
강 부사장은 1977년생으로 SK그룹은 물론 재계에서도 보기 드문 여성 재무실장이다. 강 부사장은 서울대를 졸업하고 SK이노베이션에서 자금 PL로 근무했다. 현재 SK이노베이션의 재무1담당이자 SK지오센트릭의 재무실장을 비롯해 SK어스온 사내이사, SK인천석유화학 감사역까지 겸임하고 있다.
올해 임원인사로 강 부사장이 SK지오센트릭의 재무 수장으로 선임된 후 곧바로 크레딧 악재가 발생했다. 글로벌 신용평가사인 스탠다드앤드푸어스(S&P)가 SK이노베이션의 신용등급(BBB-) 전망을 '부정적'으로 하락시킨 것이다. 모회사 신용등급을 따라가는 SK지오센트릭의 전망도 자연스럽게 부정적으로 하락했다.
여기에 SK지오센트릭의 독자신용도(Stand-alone credit profile)는 BBB-에서 BB+로 하향 조정했다. 독자신용도는 계열사 등 외부의 지원가능성을 제외하고 자체 채무상환능력이 어느정도 되는지 평가하는 등급이다. S&P의 등급 테이블 상 BB+부터는 투자주의(Speculative) 등급으로 분류된다.
국내 신용평가사는 SK지오센트릭의 전임 재무실장인 김정수 부사장이 재무 총괄을 맡았던 시기였던 2021년 말 SK지오센트릭 신용등급을 AA에서 AA-로 하향 조정한 이후 현재까지 동일한 등급을 부여하고 있다. 등급 전망은 '안정적'이다. 다만 작년 실적 부진 등 재무 체력이 소진되면서 하향 트리거에 한 발자국 다가온 모습이다.
한국기업평가는 SK지오센트릭의 등급하향 변동요인으로 △저조한 수익성 지속 △차입금의존도 35% 이상을 제시했다. 작년 말 SK지오센트릭의 연결 차입금의존도는 34.5%로 트리거에 걸리기 일보 직전이다. 2019년 말까지 1조4921억원 수준이었던 총차입금은 작년 말 2조7657억원까지 늘어났다.
차입금의존도보다 더욱 눈에 띈 증가세를 보이는 지표는 순차입금비율이다. 작년 말 기준 현금성자산은 6093억원으로 총차입금에서 이를 제외한 순차입금은 2조1564억원이다. 자본총계 대비 비율은 59.1%로 60%에 육박한다. 2019년 말까지만 해도 이 지표는 14.5%에 불과했다.
NICE신용평가가 제시한 하향 검토 요인에도 가까워지고 있다. 나신평은 △중기적으로 총차입금/EBTIDA 7배 초과 △순차입금의존도 30% 이상을 하향 트리거로 제시했다. 작년 말 기준 SK지오센트릭의 총차입금/EBITDA는 8.3배로 나신평이 제시한 7배를 초과한다. 이런 지표가 중기적으로 지속되면 하향 검토 요인이 된다. 순차입금의존도도 작년 말 기준 26.9%로 30%에 가깝다.
최근 재무 악화에 SK지오센트릭은 김정수 실장 시절부터 배당 억제 등 유동성 관리를 나름 시행해왔다. 2017~2019년까지 100%가 넘는 연결 배당성향을 보였던 SK지오센트릭은 2020년부터 작년까지 단 한 차례의 배당도 시행하지 않았다. 배터리 투자 재원 마련 등 현금 소요가 많은 모회사 SK이노베이션 입장에서도 SK지오센트릭의 미배당이 반가운 소식은 아니지만 재무관리가 필요한 SK지오센트릭 입장에서는 합리적인 결정이었을 것으로 분석된다.
강 신임 재무실장 역시 비슷한 고민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당분간 SK이노베이션은 SK온 투자 재원 마련을 위해 최대한 많은 현금이 필요한 시점이다. 그렇다고 이전처럼 모회사로 순이익보다 많은 배당을 풀기에는 SK지오센트릭의 재무 체력이 상당 부분 소진된 상태다.
회사가 기존에 세웠던 투자 계획 역시 그대로 집행할 지 여부도 강 실장의 고민거리가 될 것으로 예측된다. SK지오센트릭은 2025년까지 90만 톤 규모의 폐플라스틱 처리 설비를 구축하는 등 5조원에 가까운 대규모 투자계획을 세웠다. 다만 그 계획을 세웠던 2021년 8월은 시장에 여전히 자금이 넘치는 저금리 시대이자 석유화학 다운사이클이 도래하지 않았던 시기였다.
재계 관계자는 "SK지오센트릭의 경영 환경이 작년보다는 나을 것으로 예상되나 실적 회복에는 짧지 않은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