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의 유동성은 새로운 사업을 추진하는 동력이자 경영상 어려움을 방지하는 안전판 역할을 수행한다. 구글의 '곳간'은 미국 현지 기업 중에서도 가장 풍족한 수준이다. 덕분에 대형 인수·합병(M&A)과 인프라 투자를 충분히 감당해왔다.
네이버는 보유 현금으로 대규모 M&A를 소화해내지 못했고, 대규모 차입을 실행할 수 밖에 없었다. 경영진은 상환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투자 포트폴리오를 일부 처분하는 방안을 모색하는 상황이다.
◇'디지털광고 기반' 구글, 1000억달러 실탄 유지구글이 확보한 유동성은 2022년 말 연결 기준으로 1137억6200만달러(143조6018억원)다. △2018년 1091억달러 △2019년 1197억달러 △2020년 1367억달러 등으로 증가세를 이어갔다. 2021년에는 전체 유동성이 1396억달러까지 불어나기도 했다. 신속하게 처분키 용이한 단기 투자 자산이 늘어난 덕분이었다.
2022년 말 단기 투자 자산은 918억8300만달러로, 최근 5년 동안 1000억달러 안팎의 수준을 유지했다. 현금성자산은 218억7900만달러다. 167억달러를 기록한 2018년과 견줘보면 5년 만에 31%나 늘었다.
구글은 그동안 디지털 광고 사업에서 창출하는 수익을 토대로 여윳돈을 쌓을 수 있었다. 검색엔진과 유튜브의 이용자 풀(pool)이 탄탄한 데다, 소비자에게 노출되는 범위와 마케팅 효과가 다른 광고 플랫폼과 견줘 상대적 우위를 형성하고 있다. 매년 전체 매출의 80% 넘는 금액을 벌어들일 정도로 '실적 효자' 역할을 톡톡히 수행했다.
영업이익률이 해마다 20%를 넘겼고, 순이익은 2021년에 760억달러(96조260억원)를 시현했다. 창사 이래 최대 규모였다. 견조한 수익성에 힘입어 순영업활동현금흐름(NCF)도 빠르게 늘었다. 2018년만 하더라도 480억달러에 불과했으나 2019년 545억달러, 2020년 651억달러까지 불어났다. 2021년과 2022년에는 잇달아 900억달러(113조6880억원)를 돌파했다.
NCF에서 자본적 지출(CAPEX)과 배당금 지급액 등을 제외한 잉여현금흐름(FCF)은 2018년 이래 2021년까지 증가세를 이어갔다. 특히 2021년에는 설립 이래 가장 많은 규모인 670억1200만달러(84조6764억원)로 집계됐다. 지난해에도 FCF는 600억달러를 웃돌았다.
두둑한 가용 재원과 원활한 현금 창출 역량은 투자를 촉진하는 밑거름으로 작용하고 있다. '정보데이터센터(IDC) 구축'이 대표적이다. 구글은 2017년 중기 계획을 수립하고 미국 전역에 데이터센터를 확충했다. 5년 동안 투입한 금액이 370억달러(46조7532억원)였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2022년에는 95억달러를 추가 투자하는 로드맵도 짰다.
기업 인수 역시 순탄하게 마무리할 수 있었다. 2022년 상반기에 사이버 보안 솔루션 개발에 특화된 맨디언트(Mandiant) 경영권을 확보한 사례가 돋보인다. 당시 구글이 쓴 실탄은 54억달러(6조8229억원)였다. 2012년 스마트폰 제조사 모토롤라모빌리티를 자회사로 편입한 사례(125억달러)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자금을 베팅한 M&A였다.
◇네이버 자체 재원 역할 제한적, 현금창출력 위축최근 5년간 네이버의 연결 기준 유동성은 2020년(2조8145억원)을 제외하면 해마다 4조원 내외 규모를 유지했다. 별도 기준으로는 △현금성자산 △단기금융상품 △당기손익-공정가치 측정 금융자산 등을 더한 금액이 2021년 1조1739억원, 2022년 1조3551억원 등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대규모 M&A 국면에서 자체 재원의 역할은 제한적이었다. 지난달 거래를 마친 '포시마크(Poshmark)' 인수 건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포시마크는 미주 권역에서 패션 중고품 거래를 중개하는 플랫폼을 운영하는 업체로, 2022년 10월에 네이버는 지분 100%를 사들이는 데 16억달러(2조3441억원)를 투입하는 계획을 발표했다.
거래 세부사항을 조율하면서 주식 취득액이 16억달러에서 13억1000만달러(1조8751억원)로 낮아졌다. 포시마크 인수 국면에서 네이버가 자체 재원으로 조달한 금액은 약 4000억원에 그쳤다. 별도 기준 유동성이 지분 인수 총액에 못 미친 대목이 결정적이었다. 주식 시장이 침체된 여파로 자사주를 팔아 대금을 마련하는 방안도 구사하기 적절치 않다는 판단이 대두됐다.
연결 자회사들의 실탄도 끌어쓰기 어려웠다. 네이버파이낸셜의 경우 비축한 현금이 2021년 말 기준으로 1조7000억원이었으나, 유동성 축적 취지가 '스마트스토어' 플랫폼에 입점한 사업자들의 결제 대금을 충당하는 데 있었다.
네이버는 사모투자펀드(PEF) 운용사와 접촉해 함께 지분을 인수하는 방안을 모색했으나, 인수가와 조달 방안에서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결국 금융기관의 대출을 받는 길을 택하면서 8억달러(1조원) 규모의 외화를 차입했다.
원·달러 환율의 변동에 따라 외화 차입금을 갚는 금액이 달라지는 만큼, 재무 부담이 가중될 수밖에 없다. 상환 만기가 1년 이내인 차입금 규모도 급격히 늘어난 상황이다. 네이버의 기업설명회(IR) 자료에 따르면 2022년 말 연결 기준 단기차입금은 1조3814억원으로, 6개월새 9000억원 가까이 증가했다.
단기 대응책으로는 보유한 상장사 주식이나 부동산을 처분하는 방식으로 현금을 마련하는 방안이 거론된다. 네이버는 2022년 12월에 자이언트스텝 주식 80만주를 팔아 157억원을 확보했다. 여세를 몰아 판교 테크원 타워 수익증권 매각 추진에도 나섰다.
중장기적으로는 자체 사업으로만 충분한 실탄 유입을 이끌어내는 길이 존재한다. 하지만 현금 창출력을 가늠하는 지표인 FCF는 연결·별도 기준 수치 모두 2019년 정점을 찍은 이래 감소세로 돌아섰다.
FCF가 축소된 데는 데이터센터 건립으로 CAPEX가 늘어난 대목이 작용했다. 비용 제어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영업이익률이 10%대에 머무르는 여파도 무관치 않다. 국내 디지털 광고, 전자상거래(이커머스) 시장의 성장세가 둔화된 점도 영향을 끼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