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한양행 재무 임원이 투자금 회수 방법을 두고 고민에 빠졌다. 유한양행은 외부 투자를 확대했던 2016년부터 줄곧 신규 출자를 결정하기 이전에 기존 포트폴리오를 정리하며 현금 지출을 최소화하는 보수적 기조를 고수하고 있다.
특히 유한양행은 비상장 바이오벤처에 흘려보낸 자금이 적지 않아 고민은 더욱 깊어진 모습이다. 국내에서는 비상장 바이오벤처의 인수합병이 활발하게 이뤄지지 않는다. 따라서 초기 주주들의 자금 회수 통로는 사실상 투자기업의 상장 이후 장내 처분이 유일하다. 그러나 2021년을 기점으로 바이오 기업공개(IPO) 허들이 높아지면서 출구 전략 세우기가 난제로 떠올랐다.
물론 유한양행이 투자한 비상장사가 상장에 성공한 이후에도 협업 자체는 무위로 끝난 사례도 축적된 상태다. 신성장동력 확보를 위한 투자를 미룰 수 없는 만큼 최고재무책임자(CFO) 업무를 수행하는 이병만 경영관리본부장의 어깨는 무거운 상황이다. 그동안 유한양행이 기술 제휴 과정에서 지분 투자를 병행하던 공식에도 변화가 예상되고 있다.
◇ 비상장 포트폴리오 16개, IPO 성사 '관건'작년 9월 말 기준 유한양행이 관계·공동기업으로 분류한 바이오·헬스케어 비상장사(코넥스 포함)는 16개사다. 재무제표 기재된 지분 취득 원가는 1515억원, 장부가는 1442억원으로 5%가량 평가손실을 기록하고 있다.
포트폴리오에 속한 기업들에 투자한 기간은 짧게 1년 미만에서 길게는 10년 이상을 나타내고 있다. 유한양행은 투자사와 역량을 공유해 기술 상용화를 목표로 투자를 진행한다. 비상장사 지분 투자는 초기 연구개발을 지원해주는 효과와 함께 기업가치 향상을 통한 자본이익을 거둘 수 있는 점도 장점이다.
비상장사 주식은 현금화가 용이하지 않은 만큼 IPO 여부가 엑시트 성과를 좌우하는 요소다. 국내 신약개발 바이오벤처는 대부분 기술특례제도를 활용해 코스닥에 상장한다. 다만 2021년부터 신약개발사 IPO가 과거 대비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아 초기 투자자들의 자금 회수 역시 쉽지 않은 상황이다.
실제로 유한양행 포트폴리오 기업 가운데 지난해 엔솔바이오사이언스, 이뮨온시아는 IPO 심사에 문제가 생겨 일정이 미뤄졌다. 투자 기업 가운데 작년에 코스닥 입성에 성공한 에이프릴바이오도 거래소 재심 끝에 몸값을 낮추고 IPO를 완주했다.
◇단순투자로 끝난 사례 축적, 투자 공식 변화 '주목'투자사가 증시 입성에 성공한다 해서 유한양행 성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지분 투자는 협력을 위한 선행 조건일 뿐 실질적인 사업 성과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2016년에서 지난해 9월 말까지 투자사를 늘리는 사이 소득 없이 정리된 곳도 4건으로 집계된다. △네오이뮨텍 △파멥신 △브릿지바이오 △신테카바이오 등이 이에 해당된다.
유한양행은 이들 4곳이 비상장사일 때 지분 투자를 단행하고 IPO를 마치는 모습을 지켜봤다. 대상 기업들은 모두 신약 파이프라인 확장을 위해 포트폴리오에 추가됐다. 다만 이들 기업 상장 이후에 지분 보유 목적을 '단순투자'로 변경하고 주식을 장내 처분하면서 사업 접점은 희미해졌다.
원금 대비 일부 수익을 거두고 관계를 정리한 곳은 파멥신, 브릿지바이오 등이 꼽힌다. 유한양행은 각각 30억원, 20억원을 투자한 이후 주식을 처분해 32억원, 27억원을 현금화했다. 투자 기간은 파멥신의 경우 5년, 브릿지바이오는 3년 정도다. 장기적으로 주식을 보유했으나 파이프라인 확충이라는 기존 목표는 달성하지 못했다.
투자사 상장 이후 지분을 처분하면서 자본이익을 크게 거둔 사례도 있다. 2016년 네오이뮨텍에 35억원을 투자했고 2021년에 일부 매각하면서 373억원을 회수했다. 아직 보유 주식 일부가 남아 있으나 시가 하락으로 작년 9월 말 기준 88억원의 평가손실을 기록 중이다.
주가가 낮아져 유한양행 보유 지분 가치가 하락한 곳으로는 신테카바이오도 있다. 기술 제휴를 위해 2019년 50억원을 투자했지만 2021년부터는 '단순투자'로 분류하고 있다. 작년 9월 말 기준 신테카바이오 주식 가치는 투자 원금 대비 34억원의 평가손실을 내고 있다.
상장사와 협력을 모색하고 지분 투자를 진행했지만 이렇다 할 성과를 보여주지 못하기도 했다. 유한양행은 파이프라인 확충 목적으로 2015년 제넥신과 바이오니아에 각각 200억원, 100억원씩 출자했다. 바이오니아 주식의 경우 2017년부터 2020년까지 모두 처분해 120억원을 현금화하고 투자 수익만 챙겼다. 제넥신도 지분 일부를 정리해 288억원을 거둔 상태다.
유한양행 관계자는 "지분 투자한 기업들이 많아지면서 관리, 엑시트 형태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라며 "아직 방향성이 구체적으로 나오진 않았지만 투자 방식에도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