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한양행이 2016년을 기점으로 외부 투자에 적극 나섰지만 자금 운용 전략에서는 보수적인 면이 발견된다. 본업에서 버는 현금 안에서 투자를 집행했을 뿐 차입이나 조달을 시도하진 않았다. 그해부터 현재까지 재무 담당 임원이 세 차례 바뀌었지만 모두 동일한 태도를 유지했다.
영업 성과를 기반으로 재투자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었으나 2019년부터 잉여현금흐름(FCF)이 음의 값을 나타내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자체 영업만으로 자본적지출(CAPEX)과 배당금을 온전히 감당할 수 없어졌다는 이야기다. 보유 현금은 약 4000억원으로 아직은 양호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새로운 재무 임원 이병만 부사장이 유한양행 투자 전략에 변화를 줄지 관심이 모아진다.
◇출자 회수 병행해 현금 지출 최소화유한양행은 작년 9월 말 기준 12개의 종속기업과 30개의 관계·공동기업을 두고 있다. 2021년 말과 비교하면 기존 투자처인 제이인츠바이오(20억원)와 테라베스트(30억원)에 추가로 출자하고 메디라마(15억원), 온코마스터(20억원)의 지분을 신규로 취득했다. 에이투젠에는 105억원을 투입해 지분 60%를 확보하고 종속회사로 편입했다. 피투자사들 모두 신약 개발 관련 업체다.
같은 기간 동안 유한양행은 일부 투자 자산을 처분하기도 했다. 사모펀드 운용사 파라투스인베스트먼트가 결성했던 펀드에 출자했던 자금 중 130억원어치를 회수했다. 2019년에 150억원을 출자한 지 3년여 만이다.
매년 외부에 출자하는 금액은 순증액을 기록하고 있으나 회수를 병행해 현금 지출을 제어하는 모습이다. 2016년부터 작년 9월 말까지 CFO 역할을 맡았던 경영관리본부장 박종현 전무, 조욱제 부사장(현 대표), 김재훈 전무 모두 동일한 전략을 취했다.
유한양행이 투자 숨고르기 모드를 취했던 건 2017년이 유일하다. 그해 한올바이오파마, 바이오니아에 투자한 자금을 회수하면서 총 175억원을 현금화했다. 이는 외부 투자금(168억원)보다는 소폭 많은 규모였다.
2021년에는 유한양행이 1호 투자사였던 엔솔바이오사이언스의 보유 지분 일부를 블록딜해 눈길을 끌었다. 당시 30억원을 현금화하면서 투자 원금 대비 수익률은 242%를 기록했다. 양사는 신약 과제를 공유하고 있으며 엔솔바이오사이언스가 코스닥 상장을 앞두고 있다는 점에서 예상보다 이른 엑시트라는 평가도 받았다.
매년 회수와 처분을 병행하는 전략은 수익 중심 경영 기조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유한양행은 별도 기준으로는 차입금이 제로인 무차입 경영을 유지하고 있으며 연결재무제표로도 순현금을 기록 중인만큼 유동성 여력은 양호한 편이다. 그동안 외부에서 유상증자 등을 통한 자기자본 조달에 나선 이력도 전무하다. 보유 현금 안에서 투자를 이어오고 있다.
유한양행은 작년 9월 말 연결기준 보유 현금성자산(단기금융상품 포함)은 3965억원을 기록 중이다. 투자를 본격화했던 2016년부터 2021년까지는 줄곧 4500억원 안팎에서 유지해 왔다.
◇들쭉날쭉 영업현금, CFO 전략에 관심최근 들어 잉여현금흐름에는 변화가 감지되는 만큼 유동성 관리에 변화를 줄지 주목된다. 2019년부터 작년 9월까지 잉여현금흐름은 마이너스를 기록하고 있다. 약가 인하 등 규제에 취약한 제약산업 특성상 순영업활동현금흐름(NCF)이 일정하지 않은 점에 영향을 받고 있다.
실제로 작년 3분기 연결기준 NCF는 717억원을 기록 중이다. 2016년부터 2021년까지 연 평균 NCF 813억원보다는 적은 규모였다. 2020년에는 순영업활동현금흐름 규모가 288억원, 이듬해 990억원이던 점을 고려하면 연도별 편차가 큰 편이다.
다만 올해도 조욱제 유한양행 대표는 신규 투자에 적극 나설 것을 주문한 상태다. 이달 시무식에서 연구개발 역량을 강화할 수 있는 투자처를 발굴해 유망 파이프라인 도입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업계에서는 유한양행 CFO가 CEO의 경영 판단을 어떤 방식으로 이행할지 주목하고 있다. 특히 지난해 10월부터 경영관리본부장으로 부임한 이병만 부사장이 전임자와 유사한 전략을 취할지 관심도가 높은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