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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인사에는 '암호(코드, Code)'가 있다. 인사가 있을 때마다 다양한 관점의 해설 기사가 뒤따르는 것도 이를 판독하기 위해서다. 또 '규칙(코드, Code)'도 있다. 일례로 특정 직책에 공통 이력을 가진 인물이 반복해서 선임되는 식의 경향성이 있다. 이러한 코드들은 회사 사정과 떼어놓고 볼 수 없다. 더벨이 최근 중요성이 커지는 CFO 인사에 대한 기업별 경향성을 살펴보고 이를 해독해본다.
손태승 우리금융지주 회장(
사진)은 민영화 성공 후 취임한 첫 행장이자 회장이다. 한일은행 출신인 그는 취임 당시 계파 갈등을 없애겠다고 공언했다. 민영화된 만큼 출신을 따지기보다 성과에 초점을 맞추겠다는 취지였다. 그는 능력을 입증한 상업은행 출신 임원에게도 중책을 맡기는 '포용적 리더십'으로 우리금융을 통합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다만 그룹 살림을 책임지는 최고재무책임자(CFO)에 만큼은 '믿을맨'을 기용했다. 그가 행장, 회장으로 재직할 당시 CFO로 둔 인물들은 이원덕 우리은행장(
사진), 박경훈 우리금융캐피탈 대표(
사진), 이성욱 우리금융지주 부사장(
사진) 등 3명이다. 모두 한일은행 출신일 뿐 아니라 손 회장 체제에서 거듭 영전하며 실세로 자리매김했다.
손 회장은 우리은행장에 취임하면서 CFO로 이 행장을 낙점했다. 이 행장은 글로벌전략부장, 전략기획부장, 전략사업부장, 미래전략부장, 미래전략단장을 거친 '전략통'이다. 여기에 재무라인 수장까지 경험하면서 행내 요직을 두루 거친 인사가 됐다. 우리금융지주 출범 후에는 지주 사내이사로 이사회에 참여했고 이어 행장까지 오르는 등 승승장구하고 있다. 같은 은행 출신이 회장과 행장을 맡은 건 이팔성 전 회장-이종휘 전 행장 체제 이후 14년 만이다.
이 행장의 뒤를 이은 CFO는 박 대표다. 박 대표는 손 회장이 행장에 취임한 직후 글로벌그룹장을 맡았다. 글로벌그룹장은 손 회장이 행장 취임 직전 맡았던 보직이다. 그가 전문성을 갖고 있는 영역인 만큼 믿을 수 있는 인물에게 자리를 물려줬다. 박 대표는 지주 출범 후 2기 지주사 체제의 첫 CFO가 됐다. CFO로 아주캐피탈(현 우리금융캐피탈) 인수를 주도한 데 이어 대표로 취임했다.
손 회장 체제의 현직 CFO인 이 부사장은 자타공인 재무 전문가다. 전임자들과 달리 경력의 오랜 기간을 재무라인에서 보냈다. 2004년 우리은행 재무기획부 부부장을 맡았고 잠시 지점에서 근무했다가 재무관리부장이 됐다. 지주가 2019년 재설립되고는 지주 재무관리부 본부장, 재무기획단 상무를 역임했고 2021년 CFO가 됐다. 손 회장 체제에서 재무 사정에 가장 밝고 승진을 거듭한 인물인 만큼 앞으로도 중용될 전망이다.
전임 회장들이 임명한 CFO 면면을 보면 손 회장과 달리 본인과 다른 은행 출신을 CFO로 기용한 전례가 있다. 경력 대부분을 한일은행에서 보낸 이팔성 전 회장은 취임 후 첫 CFO로 상업은행 출신인 박인철 전 상무(
사진)를 임명했다. 당시 같은 은행 출신인 이종휘 전 행장이 취임한 터라 재무라인에 만큼은 출신을 안배했다.
상업은행 출신 이순우 전 회장은 행장 및 회장 시절 두 번 한일은행 출신 인사를 중용했다. 김승규 전 우리금융지주 부사장(
사진)이 두 차례 선택 받은 주인공이다. 이순우 전 회장은 행장이었던 2011년 김승규 전 부회장을 CFO로 기용했고, 회장에 취임한 2013년 그를 지주 CFO로 발탁했다. 김승규 전 부회장은 이순우 전 회장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민영화 물꼬를 터 기대에 부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