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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인사에는 '암호(코드, Code)'가 있다. 인사가 있을 때마다 다양한 관점의 해설 기사가 뒤따르는 것도 이를 판독하기 위해서다. 또 '규칙(코드, Code)'도 있다. 일례로 특정 직책에 공통 이력을 가진 인물이 반복해서 선임되는 식의 경향성이 있다. 이러한 코드들은 회사 사정과 떼어놓고 볼 수 없다. 더벨이 최근 중요성이 커지는 CFO 인사에 대한 기업별 경향성을 살펴보고 이를 해독해본다.
우리금융지주는 한일은행과 상업은행 합병으로 출범한 한빛은행이 모태다. 양행 출신 간 계파 갈등은 우리금융의 고질적 문제로 자리잡았으나 통합을 주도하는 수장의 리더십을 빛나게 하는 배경이기도 하다. 과거 같은 은행 출신이 회장과 은행장을 동시에 맡지 않는다는 관행이 오랜 기간 유지된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양행 출신은 회장과 행장을 번갈아 차지했으나 최고재무책임자(CFO) 자리는 달랐다. 내부 출신 우리금융 CFO 6명 중 5명이 한일은행 출신으로 자리를 독식하다시피 했다. 지주가 은행에 통합됐던 기간을 추가해도 상업은행 출신은 9명 중 2명을 배출하는 데 그쳤다. 재무라인에서만큼은 한일은행의 강세가 뚜렷하다.
◇'민영화 초석' 한일은행 출신 CFO들…2기 지주 재무라인도 독식
내부 출신 CFO 시대를 연 이팔성 전 회장은 최대 과제인 민영화를 주로 한일은행 출신들에게 맡겼다. 각각 2010년, 2012년 CFO로 취임한 윤상구 전 전무, 정현진 전 전무는 한일은행에 입행에 경력을 시작한 인물들이다. 이들은 이 전 회장 체제의 재무라인을 책임졌으나 민영화 과업을 완수하지는 못했다.
이순우 전 회장 역시 한일은행 출신인 김승규 전 부사장을 CFO로 기용해 민영화 첫 발을 디뎠다. 그간 상무 또는 전무가 CFO를 맡았으나 부사장 직급을 부여해 권한을 강화했다. 김 전 부사장은 '민영화 지원 TF' 단장을 맡았다. 우리은행 매각 주체였던 예금보험공사와의 협상도 그의 몫이었다.
김 전 부사장 주도로 우리투자증권(현 NH투자증권), 광주은행, 경남은행 매각에 성공하자 후임도 한일은행 몫으로 돌아갔다. 지주가 해체되고 우리은행에 통합되면서 김 전 부사장은 경영지원총괄을 맡았고 박기석 전 우리은행 부행장이 CFO에 취임했다.
우리은행이 다시 지주사 체제로 전환을 준비할 때도 한일은행 출신이 재무라인을 주도했다. 이원덕 우리은행장은 2018년 경영기획본부장으로 재직하면서 연말에 확정된 우리금융지주 재설립에 필요한 재무 업무를 처리했다.
2019년 출범한 2기 우리금융지주에서도 한일은행 출신 CFO들이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박경훈 우리금융캐피탈 대표는 2019년 CFO를 맡아 지주 중심의 재무 체계 개편에 앞장섰다. 현 CFO인 이성욱 우리금융지주 부사장도 한일은행 출신이다. 이 부사장은 외환위기 당시 한일은행과 상업은행 합병 태스크포스(TF) 일원으로도 활약한 바 있다.
◇상업은행, 첫 내부 CFO 배출 후 존재감 미미…민영화 마침표는 성과
상업은행은 우리금융 재무라인에서 존재감이 미미하지만 내부 출신 CFO를 처음으로 배출했다. 박인철 전 우리금융지주 상무는 덕수상고(현 덕수고), 연세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상업은행에 입행했다. 우리은행 홍보실장 등을 맡으며 우리금융지주 출범에 혁혁한 공을 세웠고 이를 바탕으로 이팔성 전 회장 체제의 첫 CFO가 됐다.
하지만 박 전 상무가 최대 과제였던 민영화에서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하자 이후 상업은행 출신 CFO는 대가 끊겼다. 우리금융지주 CFO가 다섯 번 바뀌는 동안 한일은행 출신이 자리를 지켰다.
우리금융지주가 우리은행에 통합돼 있던 시절까지 감안하면 상업은행 출신 CFO 1명이 추가된다. 신현석 현 우리아메리카은행 법인장이다. 신 법인장은 이덕훈 전 우리은행장 시절 손태승 우리금융지주 회장, 이동연 전 우리FIS 대표와 함께 행장의 신임을 받는 '전략기획부 3인방'으로 이름을 알렸던 인물이다. 마찬가지로 상업은행 출신인 이광구 전 행장은 2016년 곳간지기로 신 법인장을 낙점했다.
신 법인장은 CFO 재임 기간 우리은행 민영화 성공에 기여했다. 2016년 11월 예금보험공사가 보유한 우리은행 지분 29.7%를 과점주주들에게 매각하면서 지난한 민영화 과정의 9부 능선을 넘었다. 박 전 상무에서 시작된 민영화 작업이 같은 상업은행 출신 신 법인장 대에서 매듭지어진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