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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유럽에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에너지 대란으로 막대한 수익을 거둔 석유기업에 횡재세를 부과했거나 부과하는 법안을 추진 중이다. 정치권 일부에서는 국내에도 횡재세를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과연 정유사들이 올 상반기 얻은 수익이 '횡재'일까. 횡재세 부과가 필요한 일일까. 더벨이 국내 정유사의 현황 및 재무구조, 사업 전망을 살펴봤다.
국내 정유사들은 올 상반기 합산 11조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지만 운전자본 부담으로 충분한 현금을 확보하지 못했다. 이 가운데 차입금을 포함한 부채가 늘어나며 재무부담 개선이 충분히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문제는 하반기 경기침체 우려가 커지며 소비심리가 위축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미 정유사들의 수익성을 가늠할 수 있는 정제마진은 이미 손익분기점을 하회하고 있는 상황이다.
◇총차입금 9% 증가, 차입금의존도는 소폭 개선
올 상반기 정유4사의 합산 총차입금은 27조1095억원으로 지난해 말 대비 9.3% 늘었다. 총차입금 증가와 현금성자산의 축소가 동시에 일어나며 순차입금도 지난해 말보다 8.1% 확대됐다. 정유4사의 순차입금 합계는 21조5245억원으로 나타났다.
차입금을 늘린 이유는 운전자본 부담이 늘어나며 현금이 줄어들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SK에너지를 제외한 모든 정유사의 올 상반기 말 기준 현금성자산이 지난해 말보다 줄어든 것으로 집계된다. 지난해 말 정유사들의 현금성자산 합계는 6조2954억원이었는데, 올 상반기 말에는 5조5850억원으로 축소됐다.
차입금의존도의 경우 개선된 것으로 나타났다. SK에너지의 차입금의존도는 25.9%에서 19.7%로 6.2%포인트(p) 줄었고, GS칼텍스는 28.3%에서 25.7%로 2.6%p 내려갔다. 에쓰오일은 31.3%에서 30.7%로, 현대오일뱅크는 46.3%에서 41.4%로 차입금의존도가 축소됐다.
올 상반기 정유사들의 실적이 개선되며 이익잉여금이 늘어난 덕분이다. SK에너지·GS칼텍스·에쓰오일·현대오일뱅크 등 정유4사의 이익잉여금 합계는 올 상반기 말 27조8109억원으로 지난해 말보다 27.1% 증가했다. 이익잉여금은 재무제표상 자본에 속한다. 때문에 이익잉여금이 증가하면 자본총계·자산총계가 확대돼 레버리지 부담 완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차입금의존도가 전반적으로 개선되기는 했지만 상반기 실적에 비하면 효과가 미미하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시각이다. 운전자본 부담이 커지며 현금이 충분히 유입되지 않은 점이 주된 요인으로 꼽힌다.
◇부채비율 5%p 상승, 두드러지는 유동부채 증가세
정유4사 모든 기업의 부채는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올 상반기 말 정유4사의 합산 부채총계는 59조1026억원으로 지난해 말보다 24.4% 늘어났다. 전체 부채비율은 175.2%로 같은 기간 약 5%p 상승했다. 이익잉여금 확대로 부채비율을 계산할때 분모가 되는 자본총계도 커졌지만 부채의 증가 속도를 따라잡지 못한 것이다.
특히 유동부채의 증가가 두드러졌다. 정유4사의 합산 유동부채는 올 상반기 말 40조185억원으로 지난해 말과 비교했을 때 확대폭이 37.6%에 달했다. 유가상승으로 매입채무가 늘어난 점이 부채의 확대를 이끈 것으로 보인다.
유동부채란 정유사들이 1년 안에 갚아야 할 채무를 뜻한다. 단기부채 상환능력을 가늠하는 지표인 유동비율은 정유4사 모두 100% 이상으로 우수했다. 다만 유동비율에서 재고자산 의존도가 높다는 점이 걸린다.
재고자산은 통상적으로 현금화가 용이한 유동자산으로 분류되지만 경기가 침체될 경우에는 이야기가 다르다. 유동자산에서 재고자산을 뺀 당좌자산을 유동부채로 나눠 산출하는 당좌비율은 정유4사 모두 40~70% 수준으로 낮은 편이었다.
하반기 소비위축이 실제로 일어날 경우 정유사의 레버리지 부담이 지속될 수 있는 셈이다. 유가가 다시 상승 추세로 전환될 조짐이라 차입이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 여기에 에너지 패러다임이 전환되는 와중이라 정유사들이 사업구조 전환을 위해 투자해야하는 시점이라는 점도 부담을 가중시킬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