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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업 횡재세 논란

정유사는 정말 횡재를 했나

해외에서 횡재세 확대 추세, 사업구조 다른 국내 정유업 좌불안석

김위수 기자  2022-09-30 16:51:53

편집자주

미국, 유럽에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에너지 대란으로 막대한 수익을 거둔 석유기업에 횡재세를 부과했거나 부과하는 법안을 추진 중이다. 정치권 일부에서는 국내에도 횡재세를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과연 정유사들이 올 상반기 얻은 수익이 '횡재'일까. 횡재세 부과가 필요한 일일까. 더벨이 국내 정유사의 현황 및 재무구조, 사업 전망을 살펴봤다.
"엑손모빌은 올해 신보다 더 많이 돈을 벌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국제유가의 고공행진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대표적인 에너지기업 엑손모빌을 지목해 이같이 말했다. 국제유가가 외부요인으로 고공행진하는 틈을 타 석유업체들이 과도한 이윤추구를 하고 있다는 비판이 깔린 발언이다.

비슷한 문제의식은 미국에서만 나오고 있지 않다. 일부 유럽 국가들이 이미 석유업체에 대한 '횡재세' 도입을 공식화한 가운데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 차원에서도 횡재세 부과를 추진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 UN에서 화석연료 기업에 횡재세를 물려야 한다는 목소리를 키우고 있는 상황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정유사에 추가적인 세금을 부과하기 위한 법안이 이미 두 건 발의 돼 있다. 국내에서는 올 상반기 정유사의 영업이익 합계가 12조원에 달한다는 사실이 보도되며 횡재세에 대한 설왕설래가 있었다. 최근들어 휘발유 가격이 안정화되며 잠잠해지는 듯 했지만 해외에서의 횡재세 논의가 확대되며 다시 우리나라에서의 이슈화에 불씨를 지피는 모습이다.

◇횡재세 부과, 근거는

횡재세는 기업은 아무 노력도 하지 않았지만 '굴러들어온 행운'으로 얻은 이익에 부과하는 세금이다. 영국 노동당이 1997년 국영기업이 민영화되는 과정에서 시세차익을 얻은 기업에 뒤늦게 부과한 세금이 횡재세의 첫 등장이다.

세금 부과를 추진 중인 미국 외에 횡재세가 이미 도입된 대표적인 국가는 영국이다. 영국은 석유 및 가스업체에 초과이윤세 25% 부과하고 있다. 또 이탈리아는 지난해 10월부터 올 3월까지 500만유로 이상의 이익을 낸 기업에 25%의 횡재세를 물리기로 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에너지 가격이 치솟으며 석유업체들이 막대한 이익을 냈으니 세금을 물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전세계적으로 나오고 있다. 석유제품 생산을 위한 비용은 오르지 않았는데 유가가 오르며 '가만히 앉아' 더 많은 이윤을 올렸다는 지적이다.

실제 미국과 유럽 석유기업들의 이윤 중 대부분이 원유를 채굴하고 파는 업스트림 부문에서 큰 이익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정유업계에서는 이런 기업들에 횡재세를 물리는 일은 일견 합리적인 부분이 있다고 보고 있다.

대외적인 조건에서 매장돼있던 원유의 가격이 치솟으며 그야말로 '횡재'를 봤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국과 유럽 현지에서는 횡재세 부과로 석유기업들의 투자심리가 위축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기도 하다.

◇국내 정유사, 12조 영업이익은 '횡재'일까

국내 정유사들이 올 상반기 거둬들인 수익은 12조원에 달한다. 지난해 정유4사의 1년치 합산 영업이익이 7조원이었으니 올 상반기 정유사들이 횡재를 봤다는 반응이 나올법하다.

하지만 국내 정유사와 해외 기업의 사정은 조금 다르다. 국내 정유사들의 이익이 정말 굴러들어온 행운인가는 따져볼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 정유사들은 해외에서 원유를 수입하고 이를 정제, 가공해 제품으로 만들어 파는 일을 한다. 원유를 구매하면 국내 들여오는데 보통 1~2개월이 걸리는데 이 기간 유가가 급격히 상승한다면 시차효과로 제품을 더 비싸게 팔 수는 있다.

그렇다고 유가의 상승이 국내 정유사에 무조건적으로 좋은 일은 아니다. 반대로 유가가 하락세로 전환할 경우 손실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또 국제유가 상승이 장기화된다고 해도 소비위축이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



실질적인 정유사의 이익을 결정짓는 핵심은 정제마진이다. 정제마진이란 석유제품 가격에서 원유 가격, 각종 운영비용 등을 뺀 금액을 뜻한다. 정유업계의 수익을 가늠할 수 있는 지표로 통상 배럴당 4~5달러의 정제마진을 수익분기점으로 여긴다. 올 상반기 평균 정제마진은 배럴당 14.8달러 수준으로 수익분기점을 한참 웃돌았다.

그렇다면 정유사들이 상반기 평균 배럴당 14.8달러의 마진을 두고 석유제품을 판매한 일을 두고 '횡재'라고 할 수 있을까. 석유제품의 가격은 정유사가 정하는 것이 아니다. 국제 거래시장에서 가격이 정해지면 이에 맞춰서 정유사들이 제품을 판매하는데 이 가격은 시장원칙에 따라 정해진다. 즉 올 상반기 정유사들의 고마진은 석유제품에 대한 공급이 쪼그라들면서 수요가 증가한데 따른 결과다.

시장원리에 따라 정해진 마진을 두고 횡재를 봤다고 하는 것은 어렵다는 것이 전반적인 견해다. 기획재정부와 산업통상자원부도 정유업에 대한 횡재세 부과에 긍정적인 입장이 아닌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횡재세 법안 발의 현황은

정기국회가 개회한 지난 1일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이 정유사와 은행에 초과이득세를 부과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이에 앞서 지난달 이성만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석유정제업자가 직전 3개 사업연도의 평균 소득에 비해 5억원 이상 초과 소득이 발생할 경우 초과 소득의 20%를 법인세로 추가 납부하는 내용의 법인세법 일부 개정안을 발의한 상태다.

횡재세 명목의 법안이 두 건이나 국회에 발의된 상태에서 정기국회가 개최돼 정유사들을 불안하게 하고 있다. 실제 다음달 중 열리는 국정감사에서 고유가로 인한 초과이익 논란 등과 관련한 질의를 위해 정유사 최고경영자(CEO)를 소환하려는 시도도 있었는데, 이는 무산된 것으로 전해진다.

UN에서 횡재세 부과를 촉구하고 EU에서 횡재세를 추진하는 등 전세계적인 흐름이 조성되고 있는 점도 정유업계 입장에서는 부담이다. 정책을 마련할 때 해외사례를 참고하는 일이 흔한데 사례의 단편적인 면만 보고 국내 도입을 추진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고유가가 장기화되는 상황에서 자칫 인기영합주의에 이용될 수 있다는 걱정이 나오고 있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정치적 이슈로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상황"이라며 "횡재세 관련 법안의 통과 가능성은 희박해보이지만 여론이 어떻게 형성될지가 문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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