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용차의 새 주인찾기가 1년 넘게 지지부진하던 지난해 가을, 그곳이 친정인 지인과 저녁을 했다. 시국이 시국인지라 대화의 한 토막을 쌍용차가 차지했다. 더욱이 그는 쌍용차에 입사한 지 오래 지나지 않아 회사가 상하이차에 팔리는 걸 직접 경험했다. 그것도 재무회계팀에서.
"조선족 아주머니들이 우리 책상을 열어보는 게 다반사였어. 훔친 건 없나, 숨겨놓은 건 없나 살펴볼 목적이었던 것 같아. 그야말로 점령군 행세였지. 굴욕적이었지만 뭐 어쩌겠어. 회사가 망해서 팔린 건데."
부실기업을 인수한 곳에서 기존 재무회계팀을 못마땅해하는 건 사실 이상할 게 없다. 팀의 역할인 재무건전성을 포함한 위험 관리를 방기한 측면이 없지 않기 때문이다. 새로운 주인들이 피인수 기업의 최고재무책임자(CFO)를 교체하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상하이차도 자사에서 잔뼈가 굵은 장하이타오 부사장을 CFO에 앉혔다.
이는 재무회계 조직이 제 역할만 하면 회사가 어려워질 리 없다는 판단과 같다. 따라서 이러한 인식에 바탕을 둔 새 주인의 경영 방침은 '철저히 숫자에 근거한 경영(비용) 관리'일 수밖에 없고 CFO의 권한은 막강해질 수밖에 없다. 실제 장하이타오 부사장은 전임자와 달리 재무와 구매, 기획 업무를 모두 아울렀다.
문제는 재무회계 부서에 과도한 힘이 쏠리면 선순위가 뒤바뀐다는 점이다. '탁월한 제품을 만들자'란 목표는 후순위로 밀리고 모든 부서가 비용 절감 계획에 딱 맞는 제품 만들기에 여념이 없다. 과거 GM의 구원투수였던 밥 루츠 부회장이 신랄하게 비판한 '빈 카운터스(Bean-Counters; 숫자 노름꾼)'들이 장악한 회사로 바뀐다.
결과론이지만 상하이차는 쌍용차를 인수한 지 불과 5년 만에 매물로 내놨다. 다음 주인인 마힌드라는 티볼리를 흥행시키며 국내 소형 SUV 시장을 개척했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올드 패션한 내부 인테리어와 연식이 오래된 부품을 적용한 제품들은 빈 카운터스들을 만족하게 했을지는 몰라도 소비자들의 관심을 끄는 데는 실패했다.
흥미롭게도 숫자 경영에 매몰된 주인들이 떠난 뒤 쌍용차의 신형 SUV 토레스가 흥행몰이를 하고 있다. 선주문만 3만대에 달하고 내외관 모두 합격점을 받고 있다. 차량 개발에 최소 2~3년이 소요되는 점을 고려하면 숫자 노름꾼으로부터 자유로운 상황에서 만든 셈이다. 드디어 우선순위가 매력적인 제품 개발로 바뀐걸까.
지금 쌍용차 상황은 상하이차와 마힌드라에 팔렸을 때보다 결코 좋지 않다. 그럼에도 새로운 주인이 반면교사 삼아야 할 건 빈 카운터스들을 중용한 앞선 주인들이 받은 대가다. 기업의 최우선 목표는 '늘' 매력적인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어야 하고 CFO도 이에 맞춰 재무회계 전략을 세워야 한다. 이는 쌍용차뿐 아니라 현재 고물가와 고금리, 고환율이라는 3중고를 겪는 기업들에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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