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전지 업계에서는 늘어나는 전기차 보급으로 관리해야 할 법적인 리스크가 당분간 꺼지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아직 전기차 사업은 초기 단계에 속하는 사업이라 궤도에 진입하기까지 예측하지 못하는 사고가 발생할 확률이 크다는 설명이다.
업계 관계자들은 "내연기관차에서도 아직 화재가 발생하고 문제가 터지는데 전기차는 오죽하겠는가"라고 말하고는 한다.
화재와 같은 사고가 날 경우 원인 규명이 어려운 점도 문제다. 배터리 업체에서 법적인 리스크를 관리하기 위해 더 신경쓸 수 밖에 없다. 또 경쟁이 점점 심화됨에 따라 국내외 기업들과 지식재산권과 관련된 분쟁이 발생할 가능성도 크다.
LG에너지솔루션의 법무실은 최고재무책임자(CFO) 산하에 위치해있다. 법적인 문제에 대응해 회사의 재산을 지키고, 경영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법적인 리스크를 관리하며 CFO를 지원한다.
◇검사 출신 한웅재 전무, SK 소송으로 입지 다져
LG에너지솔루션의 법무실장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배터리 업체답게 화려한 이력을 가진 인물이 맡았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을 담당했고, 박근혜 전 대통령을 대면조사하며 이름을 알린 검사 출신 한웅재 전무다.
한 전무는 서울대 법대를 졸업한 뒤 2002년 검사 생활을 시작해 대검찰청 연구관, 서울중앙지검 부부장검사, 대검찰청 형사1과장 등을 거쳤다. 전지사업본부 분사 전인 LG화학에 입사했고, LG에너지솔루션 출범 이후 즉시 적을 옮겼다.
LG그룹에 합류한 것은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과의 소송전이 한창이었던 2019년 10월경이다. 보다 공격적으로 소송전에 임하기 위한 조치였던 것으로 보인다. 당시 법무실을 총괄하던 판사 출신 권오준 부사장은 한 전무 영입 후 고문실로 자리를 옯겼고, 곧 법률사무소를 개업했다.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간 영업비밀 침해 소송에 대한 법무적 대응을 한 전무가 사실상 총괄한 셈이다.
한 전무는 업무에 임할 때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하고 거리낌없이 자기를 드러내는 성향을 가진 것으로 전해진다. 당시 소송전 대응을 위해 법무실·특허센터·홍보실 등 사내 유관부서가 유기적으로 협업했는데, 한 전무가 지휘하는 일이 많았다고 알려졌다. 회의에서도 주도적으로 아이디어를 제시했다고 한다.
'세기의 소송'으로 일컬어진 양사의 법적다툼은 LG에너지솔루션의 승리로 끝났다. 특히 주목할 점은 합의금이다. 1조원 이하를 제시하던 SK이노베이션이 막판에 2조원 수준으로 합의금 규모를 늘리며 양사의 합의가 이뤄졌다. LG에너지솔루션이 원했던 합의금인 3조원보다는 적은 금액이지만 SK이노베이션과 합의에 도달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컸다.
◇입증된 위기관리 능력, 법적 리스크 관리 '총력'
소송전을 거치며 한 전무는 회사에서 입지를 다질 수 있었다. LG에너지솔루션에 최고위기관리책임자(CRO) 직책이 신설된 지난해 5월 초대 CRO로 임명됐다. 소송전에서 보여준 법적인 리스크 관리 능력을 회사에서도 인정한 셈이다. 다만 이방수 사장이 ㈜LG에서 LG에너지솔루션으로 자리를 옮긴 지난해 12월부터는 이 사장이 CRO를 맡고 있다.
SK이노베이션과의 소송전이라는 큰 고비를 넘으며 존재감을 키웠지만, 한 전무의 임무는 끝난 것이 아니다. 사업과 관련된 법적인 리스크는 당분간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 전기차와 관련된 각종 사건사고의 원인으로 배터리가 지목돼 리콜 비용 일부 혹은 전체를 배터리 업체가 부담하는 일이 주기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 배터리를 탑재한 현대자동차 전기차 코나EV에서 잇따라 화재가 발생하자 리콜 조치를 취한 일이 대표적이다. 전체 리콜비용은 1조원 규모로 현대차가 30%를, LG에너지솔루션이 나머지를 분담하기로 했다. 또 화재가 발생한 GM 볼트EV 리콜과 관련해서는 LG전자와 LG에너지솔루션이 각각 7000억원씩 총 1조4000억원을 쓰기로 했다.
공급된 배터리 물량이 늘어나는 상황에서 추가적인 사고가 발생할 가능성이 없지 않다. 이 경우 완성차 업체와 원만히 합의를 이끄는 것이 한 전무의 몫이다. 합의 대상이 고객사인만큼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사안이 될 것으로 보인다.
또 화재와 같은 사고가 집단소송으로 번질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대응해야 한다. 실제 LG에너지솔루션은 올 1분기 사업보고서를 통해 "당분기말 현재 연결회사와 관련된 GM 볼트EV 집단소송이 진행중이며, 현재로서는 동 소송의 전망을 예측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최근 국내외 2차전지 업체들의 경쟁이 심화되고 있어 지식재산권 문제가 불거질 가능성도 크다. 실제 반도체, 디스플레이, 태양광 등 사업에서는 지식재산권 소송 이슈가 발생하는 일이 잦다.
'특허괴물'로 알려진 특허관리전문회사(NPE)들이 국내 기업을 상대로 소송을 거는 사례도 빈번하고, 해외 기업의 지식재산권 침해로 국내 기업이 소송을 제기할 필요가 있기도 하다. 한 전무가 이끄는 법무실에서는 특허와 관련된 사안이 법적인 문제로 번질 경우 지원하는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