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래프톤은 사외이사에게도 주식보상을 제공한다. 통상 경영진(사내이사)에게 주는 양도제한조건부주식보상(RSU)의 대상을 사외이사로 확대했다. 이 같은 제도가 실시된 이면에는 글로벌 경험이 풍부한 이사진이 있다.
사외이사만으로 구성한 보수위원회에서는 미국 등 선진국에서 시행되는 사외이사 RSU 제도 도입에 적극적이었다. 기업 가치를 끌어올려 주가를 우상향시킨다는 목표를 공유한다는 취지로 크래프톤이 자사주를 매입, 소각하는 방식도 이러한 틀 안에서 이해해야 한다는 분석이다.
◇ 사외이사도 주식연계 보상, 임기충족·주가상승 조건
크래프톤의 이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사외이사진 특징은 글로벌 경험이 풍부하다는 점이다. 6월 말 현재 크래프톤 사외이사는 총 5명, 중앙대 교수로 일하고 있는 여은정 사외이사를 제외하고 이수경·정보라·백양희·윤구 등 나머지 사외이사 4명은 모두 해외에서 기업을 창업했거나 글로벌 회사를 이끌어 본 경험이 있다. 이 가운데 대부분이 국내보다 주로 미국에서 더 많이 체류하고 있기도 하다.
이사진의 글로벌 색채가 묻어나는 대표적 정책 중 하나는 사외이사 보수정책이다. 크래프톤은 지난해 5월 이사회 산하에 보수위원회를 신설했다. 정보라 사외이사가 위원장을 맡고 이수경과 윤구 두 사외이사가 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보수위원회는 올 6월 초까지 1년여 간 총 8차례 비대면 위주로 회의를 개최, 올해부터 사외이사진 대상으로 장기성과급 제도를 도입하기로 결정했다.
장기성과급은 RSU를 부여하는 형식으로 제공된다. RSU는 일정 요건이 충족되면 미리 정해놓은 수량의 주식을 지급받을 수 있는 권리다. 미국의 상당수 기업에선 이해관계자 공동의 목표를 달성하는 차원에서 이사진을 포함한 임직원들에게 RSU를 부여하곤 한다. 하지만 엔씨소포트와 넷마블 등 경쟁사를 포함해 국내 상장사가 사외이사에게 RSU를 지급하는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다.
크래프톤의 경우 임기 충족과 주가 상승 등 2개 요건을 내걸고 각 사외이사 임기에 따라 2~3년 후 지급한다는 방침이다. 크래프톤 사정에 정통한 관계자는 "주가 상승은 주식거래 과정 내 수요와 공급 차원에서 이뤄지는 이벤트이기 때문에 사외이사가 관여할 수 있는 영역은 매우 제한적"이라면서도 "보수위원회 소속 위원들이 대부분 미국에서 사업을 해본 경험을 갖고 있는 영향이 컸다"고 강조했다.
현재 크래프톤의 보수위원회를 이끌고 있는 정보라 위원장은 주로 글로벌 기업에서 활약해 왔다. 미국 하버드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스탠포드대에서 MBA 학위를 취득한 그는 글로벌 IT 기업 애플과 이베이 등을 거쳐 현재 미국 나스닥 상장사인 송금업체 '레미틀리 글로벌(Remitly Global)'의 사외이사직을 겸하고 있다. 정 이사 역시 작년 한해 레미틀리 글로벌로부터 차후 주식을 제공하는 RSU를 제공받았다.
◇ 장기성과 달성 위해 배당보다 자사주 소각 분석도
보수위원회 소속 이수경 사외이사와 윤구 사외이사 역시 다채로운 글로벌 비즈니스 경력을 보유하고 있다. 이수경 이사의 경우 연세대에서 학사와 석사 학위를 마치고 P&G에 입사, 한국P&G 대표이사로 근무한 뒤 현재는 P&G 뷰티브랜드 SK-II 글로벌 사업 총괄로 재직 중이다. P&G 글로벌 부문 내 첫 한국인 대표이면서 첫 여성 대표이기도 한 그는 RSU 제도에 친숙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 아이오와 대학을 졸업하고 노트르담 대학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한 윤구 사외이사는 삼성전자와 마이크로소프트 등을 거쳐 애플코리아 사장을 역임한 인사다. 현재는 미국에 거주하면서 나스닥에 상장된 디자인 소프트웨어 기업 '오토데스크' 부사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오토데스크 또한 기업 임직원들 대상으로 RSU로 성과보수를 지급하고 있다.
크래프톤은 현재 장병규 이사회 의장을 포함해 김창환 대표와 배동근 CFO 등 주요 경영진들에게도 RSU를 부여한 상황이다. 장 의장의 경우 향후 10년을 기한으로 크래프톤 시가총액이 일정 수준 목표치를 넘을 때마다 주식을 지급받기로 했다. 게임업계 관계자는 "사내외이사 대상으로 같은 형태의 성과급 체계를 구축해 기업 가치를 끌어올려야 한다는 목표를 공유한다는 것에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크래프톤이 주가부양 정책으로 자사주를 매입해 소각하는 방식을 선택한 것도 같은 맥락이라는 해석이 있다. 배당을 지급해 투자자를 유치할 수 있지만 장기적 성과에 과실을 공유할 주주를 모집하기 위해서라도 자사주를 매입해 소각하는 방식이 낫다는 판단이라는 것. 지난 주총에서 배당 검토를 시작한다는 언급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른 시일 내 배당이 이뤄질 가능성은 낮다는 지적이다.
9월 3일 현재 크래프톤의 주가는 31만원 정도, 50만원에 육박했던 공모가와 비교하면 상당폭 떨어진 상태다. 현 주가에 기반해 상정한 시가총액은 15조원이다. 지난해 크래프톤은 역대 최대 매출을 기록했다. 지난해 연결 매출은 1조9106억원, 1년 전과 비교해 3.1% 증가했다. 배틀그라운드 PC 콘솔 부문 실적 확대에 이어 지난해 서비스를 재개한 배틀그라운드 모바일 인도 실적이 회복한 결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