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사 IB들에게 대기업 커버리지(coverage) 역량은 곧 왕관이다. 이슈어와 회사채 발행이란 작은 인연을 계기로 IPO와 유상증자 등 다양한 자본조달 파트너로 관계를 맺을 수 있다. 기업들이 증권사를 선택하는 기준은 뭘까. 탄탄한 트랙레코드를 기반으로 한 실력이 될 수도 있고, 오너가와 인연 그리고 RM들의 오랜 네트워크로 이어진 돈독한 신뢰감 등 다양한 요인이 영향을 미친다. 기업과 증권사 IB들간 비즈니스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스토리를 좀 더 깊게 살펴본다.
금호석유화학이 5년 만에 공모 회사채 시장을 찾은 가운데 미래에셋증권과의 특별한 인연이 후일담으로 회자되고 있다. 회사는 2019년 이후 공모채 발행이 뜸했지만 오랜만의 복귀전에서 미래에셋증권과의 동행을 선택했다.
이는 퇴직연금을 매개로 지속적인 거래 관계를 이어왔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으로 보인다. 금호석유화학의 퇴직연금 사업자는 미래에셋증권으로, 연금 담당 부서는 자금 조달 업무도 함께 수행하고 있다. 담당 RM(Relationship Manager)들도 꾸준한 영업으로 돈독한 관계를 쌓는데 기여했다.
◇5년만의 공모채 발행…주관 이력 없던 미래·삼성 '발탁'
9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지난 4월 금호석유화학은 공모채 시장에 등장해 950억원을 조달했다. 2019년 이후 5년 만의 공모채 발행으로 당시 기관 수요예측에서 모집액(500억원)의 12배가 넘는 6200억원의 주문을 받았다. 주관 업무는 미래에셋증권과 삼성증권, SK증권이 맡았다.
금호석유화학은 2010년대까지 매년 공모채 시장을 찾았던 정기 이슈어였다. 한 번 찍을 때도 1000억원 규모를 거뜬히 소화하던 발행사였지만 2019년을 끝으로 공모채 시장에서 보기 힘들어졌다. 사모 시장도 별도로 이용하지 않으면서 2020년 이후부터는 시장성 조달 자체에 소극적이었다.
회사채 시장에 자주 나오던 기업의 발행이 뜸해진다면 증권사 입장에서도 곤혹스러운 측면이 있다. 추후 발행을 고려해 지속적인 영업은 이루어져야 했지만 시간적, 인적 자원이 투입되는 일이기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IB 업계 관계자는 "발행 공백이 생기다보니 회사와 영업 관계가 약해진 증권사들도 몇몇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 4월 발행 당시 금호석유화학이 구성한 주관사단은 2010년대 공모채 발행 당시 채택했던 증권사 진용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SK증권을 제외, 미래에셋증권과 삼성증권은 주관 이력이 따로 없었던 하우스였다. 반면 여러 차례 금호석유화학 공모채를 주관했던 KB증권, 신한투자증권, 신영증권 등은 인수단에 머물렀다.
◇퇴직연금 주요 '매개'…RM들 꾸준한 영업
회사와 지속적인 거래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키포인트였던 가운데 금호석유화학과 미래에셋증권의 인연이 특히 주목된다. 2010년대 초반부터 금호석유화학 공모채 인수단으로 종종 들어갔던 미래에셋증권은 담당 RM들의 꾸준한 영업과 함께 퇴직연금을 매개로 물밑에서 회사와 중장기적인 관계를 이어갔다.
금호석유화학과 같이 대형 증권사들의 커버리지 각축전이 집중되는 곳들에서는 세일즈 역량만으로 주관 파트너를 따내기 쉽지 않다. 약간의 차이는 있을 수 있겠지만 대형 IB들의 경우 세일즈 기능이나 관련 인프라를 골고루 갖추고 있기 때문에 하우스 자체의 영업력이 부각되기는 쉽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가운데 퇴직연금이 틈을 비집고 들어가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후문이다.금호석유화학의 경우 자금 조달 부서에서 퇴직연금 업무도 함께 담당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금호석유화학의 퇴직연금 사업자는 미래에셋증권으로 등록돼 있어 자연스럽게 자금 조달 관련 솔루션도 주고 받는 구조가 됐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미래에셋증권이 퇴직연금 사업자 가운데에서는 증권사 중 최대 규모였기 때문에 이점을 보는 측면이 있었을 것"이라고 하면서 "중간에 다른 사업자로 교체할 유인이 적어 지속적인 거래 관계를 유지하는 데 상대적으로 용이했다"고 덧붙였다.
담당 RM들이 꾸준한 영업 관계를 지켜온 덕택도 있었다. 가장 최근의 발행이었던 2019년 인수단으로 들어간 이후 별다른 발행 시그널이 없었음에도 지속적으로 회사를 방문, 우호적인 관계를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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