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콜콜한 이야기까지 다 꺼낼 수 없지만 이 말만은 할 수 있다. 쉽게 '대세'가 되진 않았다. 어떤 곳은 여러 번의 '빅 딜' 후 투자자들의 관심을 사로잡았다. 또다른 곳은 적자만 냈지만 기업공개(IPO)의 적기를 제대로 잡아 그룹의 대표 주자에 올랐다. 모든 성장 전략이 다 달랐지만, 어느새 그룹에서도 가장 커져버린 시가총액이 이들의 성공과 새 시대를 주목하게 만든다. 더벨이 갖은 노력 끝에 시장을 사로잡은 주요 그룹 간판 계열사의 시총 그 뒷배경을 들여다본다.
10년 전 두산로보틱스는 출범 소식이 세간에 크게 회자되지 않았을 만큼 조용하게 첫 걸음을 뗐다. 규모도 크지 않았고 두산그룹도 신사업의 본격적인 출범까지 일부러 베일에 감춰뒀다.
이름이 막 알려지기 시작한 건 2017년 로보월드에 참가하면서다. 규모는 작았지만 두산그룹이 거는 기대는 컸다. 박정원 회장과 박지원 부회장이 직접 수원 공장에 방문하는 한편 출범부터 세계 1위 로봇업체를 이기겠다는 목표를 내걸었다.
지난해 10월 코스피 시장에 신규진입한 두산로보틱스는 상장과 동시에 두산그룹의 시총 2위 자리를 꿰찼다. 기업가치를 만드는 주요 재료가 실적과 기대감이라면 두산로보틱스는 장래성에 힘이 실린 종목이다.
로봇 관련 신사업에 국내외 투자자들의 시선이 쏠린 적기에 기업공개(IPO) 찬스를 제대로 썼다. 아직은 기업 성과 대신 기대감으로 만들어진 주가라 대외환경 변화에 등락폭이 크다. 하지만 신사업주인 만큼 동력이 많이 남았고 장기 전망도 밝다. '로보틱스 시대'를 기대한 중장기 투자자가 많다는 점에서다.
◇2023년 최대어 두산로보, 기대감 잘 올라탄 IPO
실적과 시가총액이 꼭 함께 움직이지는 않지만 그 점을 감안해도 두산로보틱스는 둘 사이의 괴리가 적지 않은 곳이다. 최근 5년간 연간 영업이익이 적자였고 지난 한해 영업손실도 192억원으로 추산되는데 시총은 5조~6조원 안팎을 오간다. 매출과 영업이익이 조단위를 넘긴 계열사를 시총으로 눌렀다.
그만큼 시장이 두산로보틱스의 미래에 거는 기대감이 적지 않았다는 의미다. 두산로보틱스 상장은 2021년 프리IPO부터 본격적으로 예고됐다. 상장 전 400억원 규모의 외부자금 유치에 성공했다. 국내 사모펀드 운용사들이 뭉칫돈을 투자했다.
그동안은 ㈜두산을 통해 자금을 조달해왔는데 프리IPO부터는 외부 자금유치에 자신감이 붙었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이 시기 두산로보틱스는 협동로봇 연간 판매량 1000대의 기록을 홍보하며 '향후 IPO를 추진한다'는 계획을 드러냈다.
본격적인 상장 추진 전부터 분위기가 좋았다. 삼성전자를 필두로 주요 제조사들이 무인화 생산 사업 검토에 들어갔고 정부의 규제완화 움직임도 감지됐다. 레인보우로보틱스가 이 기간 이틀 사이 주가를 40%나 띄울 만큼 투자자들의 관심이 집중됐다. 두산로보틱스의 개별 성장 전망도 밝았다. 두산그룹의 고성장 비상장자회사 3사로 불렸다. 해외 수출을 중심으로 서서히 성과가 나던 때다.
2023년 10월 추진한 IPO는 전초전부터 '대박'이 예고됐다. 수요예측 결과가 정확한 지표인데 공모가를 공표하지 않았지만 희망공모가(2만1000~2만6000원) 범위 상단인 2만6000원으로 공모가를 결정한 바 있다. 참여 기관 대부분이 희망공모가 이상을 제출했다.
공모가를 기준으로 상장 후 시가총액은 1조6850억원으로 전망됐다. 28일 오후를 기준으로 시총은 5조7100억원을 웃돌고 있다. 지난해 12월 28일 종가 기준 최고가인 11만6100원을 기록했을 때는 시총이 7조5250억원을 상회했다. 연말 이후 보호예수 종료 등으로 하락세였지만 2월부터 분위기가 되살아나면서 다시 우상향 중이다.
다만 상장 후 주가 그래프는 변동이 잦았다. 실적보다는 기대감이 주가 상승의 재료였던 만큼 대외 상황 변화에 따라 등락폭도 컸다. 상장 22일 만인 10월 27일 미국 고금리 장기화 전망에 주가가 3만2300원까지 하락한 바 있다. 상장 첫 날 '따상'에 미치지 못한 것도 로봇주 투자 심리 약화에 따른 것으로 해석됐다.
◇두산그룹 간판으로…두산밥캣 제치고 '2위' 로보틱스
실적을 기준으로는 두산그룹내 시총 1위와 3위인 두산에너빌리티, 두산밥캣과는 비교가 어렵다. 두산밥캣이 지난해 매출 약 9조7600억원, 영업이익 1조4000억원을 기록했다. 두산에너빌리티는 같은 기간 매출 약 17조5900억원, 영업이익은 1조4673억원으로 집계됐다. 두산퓨얼셀의 영업이익 16억원과 견줄만 한데 두산퓨얼셀의 시총은 1조3600억원으로 두산로보틱스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하지만 두산로보틱스의 시가총액은 그룹내 2위다. 코스피 시장 전체로 넓혀봐도 60위권에 안착했다. 1위인 두산에너빌리티의 시가총액이 11조2000억원을 넘겼다. 두산밥캣은 5조5000억원을 오간다.
로봇주 기대감 외에 두산그룹 내 선순환도 작용했다. 두산그룹은 기업공개 전부터 두산로보틱스를 핵심 자회사로 낙점했다. 두산로보틱스는 시총이 커진 만큼 그룹 내 영향력이 더 확대됐다.
두산밥캣의 성적이 좋지 못해 밀린 것은 아니다. 두산밥캣은 2022년과 2023년 연속으로 역대 최대 실적을 냈다. 최근 주가는 5만원대를 오가고 있다. 10년 사이 최저가를 기록했던 2020년 3월(1만3000원대)과 비교하면 3배 이상 올랐다. 두산로보틱스의 주가 상승 속도가 더 빨라 두산밥캣을 추월한 것으로 보인다.
◇'~로보틱스' 전성시대, 앞으로는
두산로보틱스의 기업 가치는 앞으로도 상승할 가능성이 높다. 두산로보틱스의 시총이 왜 가파르게 올랐는지만 회고해도 어렵지 않은 전망이다. 시장의 기대감이 실제 실적으로 나타나기는 아직 이른 단계다. 기업의 개별 실적과 로봇산업의 업황이 각각 더 좋아지고 있고 중장기적인 투심도 뒷받침하고 있다.
제조업계와 증권가는 올해부터 두산로보틱스가 본격적인 성장 구간에 들어설 것으로 봤다. 주요 판매처가 북미와 유럽으로 탄탄하고 추가적인 판매채널을 더 확보하고 있기 때문이다. 두산로보틱스는 기업설명회에서 해외 판매채널을 올해 대비 34.6% 늘린 109개로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라인업도 13개에서 17개로 늘린다. 이달 삼성증권은 코스피200 6월 정기변경에서 신규 편입이 예상되는 종목으로 엘앤에프와 두산로보틱스 등을 꼽았다.
로봇주에 대한 투심이 이어지는 건 엔젤로보틱스의 흥행으로 증명할 수 있다. 웨어러블 로봇 기업 엔젤로보틱스는 코스닥 상장 첫날인 26일 225% 급등했다. 이달 들어 두산로보틱스를 포함한 로봇주의 상승세도 코스닥 상승률을 가볍게 상회하고 있다.
주요 투자자로 톺아본 장기적인 주가 전망도 밝다. 글로벌 펀드를 중심으로 중장기적 투자를 목표한 투자자가 많았다. 수요예측에 참여한 곳은 노르웨이중앙은행과 싱가포르투자청(GIC) 등 국부펀드 운용사 두 곳, 블랙록과 골드만삭스 등의 대형 자산운용사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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