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세예스24홀딩스가 DB적립금 운용에 발 벗고 나서기 시작한 건 지난해부터다. 그룹 주력회사인 한세실업과 함께 올해 초 삼성자산운용의 OCIO 콘셉트의 사모펀드에 적립금을 투자했다. 한세예스24홀딩스와 한세실업 등은 현재 수십억원 규모인 이 펀드의 운용규모를 올해 안에 100억원 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는 계획이다.
한세예스24홀딩스가 퇴직연금 적립금을 실적배당형 상품으로 운용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그동안 다른 기업체들과 마찬가지로 저축은행 예·적금 상품과 이율보증형 보험상품 등으로 운용했을 뿐이다. 지금도 나머지 적립금을 신용등급 AA- 이상 채권형 자산에 투자하고 있지만, 전체 가이드라인에 기반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기존 방식과 차이가 있다.
DB 적립금 운용 방침을 바꿔놓은 인물은 조시형 투자금융팀장(
사진)이다. 교보증권과 유진투자증권, 현대인베스트자산운용, 두나무투자일임 등 금융투자업계에서 일해온 그는 2021년 한세예스24홀딩스에 합류했다. 지난 15일 서울 여의도에서 만난 조 팀장은 사업자 교체와 상품 선정 등 과제로 바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조 팀장이 2021년 한세예스24홀딩스에 합류해 처음 맡았던 주요 역할은 그룹 여유자금을 운용하는 것이었다. 조 팀장 합류 당시 한세예스24홀딩스의 연결기준 잉여금은 3368억원. 그룹 지주회사로서 과거 집행했던 다양한 투자 건을 관리하고 새로운 딜을 찾아 투자 기회를 모색하는 게 당시 조 팀장이 맡은 역할이었다.
퇴직연금 시장에 관심을 두게 된 건 거의 우연에 가까웠다. 지난해 10월 그룹의 DB적립금 운용 실태를 알게되면서부터다. 연 4.2% 수준 A0 등급 만기 1년 중금채로 운용할 수 있는 적립금을 연 3.8% 이율 A0 등급 기반 GIC(이율보증 보험상품)로 운용하는 등 그간의 관성에 따라 적립금을 굴리고 있다는 점이 그로서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통상적으로 법인의 퇴직연금 담당자는 적립금 운용에 소극적이다. 적립금을 열심히 굴려 성과를 높이더라도 그에 따른 성과를 인정해주는 인센티브도 없거니와, 자칫 운용 성과가 부진할 경우 그에 대한 책임을 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법인이 그럴 수 있다고 치더라도, 상품을 공급하는 연금 사업자는 그래선 안 된다는 게 그의 상식이었다.
조 팀장은 "특정 사업자를 통해 AA- 신용등급 중 가장 높은 금리 상품을 연 3.4%로 제안받은 적이 있었는데, 이후 여러 가지 요소를 확인해보니 실상은 5bp 정도의 차이가 있었다"며 "제안서상 적시된 최대 금리와 괴리가 있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고 강조했다.
한세예스24홀딩스 김동녕 회장 직보라인에 있던 그는 이와 같은 실상을 정리해 김 회장에게 보고했고, 김 회장은 금융상품에 전문성이 있는 조 팀장에게 퇴직연금 운용 업무를 맡겼다. 퇴직연금 운용위원회 운영 등 인사와 직간접적으로 엮어져 있는 업무는 인사팀이, 실제 적립금 운용은 조 팀장이 맡는 식으로 구분했다.
조 팀장은 "손을 대지 않으면 점점 낮은 금리로 흐르는 문제가 생길 수 있어 운용 프로세스부터 바꾸려고 했다"며 "사업자들이 제공하는 상품 중에서 취사선택하기보다는 만기나 신용등급 등 투자 수요에 걸맞는 조건 등을 적극적으로 협의해 한세예스24홀딩스만의 투자 상품을 담아내는 것이 우선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렇게 지난해 말부터 올초까지 저축은행 상품에서 사모펀드로 적립금을 이동시켰다. 운용 프로세스를 정립하고 나니 사업자 비용도 눈에 들어왔다. 각종 수수료 비용 등을 두루 분석한 뒤 사업자를 교체하는 강수도 뒀다. 최근에는 성과급을 연금으로 제공하면 절세 효과를 볼 수 있는 경영성과급 제도 도입을 결정했다.
조 팀장은 "대다수 기업에 투자 전문가들이 없다 보니 퇴직연금 업무는 자연스럽게 인사팀의 영역이 될 수밖에 없고 시간이 지나도, 상당수 직원들이 기존의 업무 방식을 준수하기 때문에 기존 업무 방향을 개선하기 힘든 것이 사실"이라며 "문제의식을 갖고 하나씩 들여다보면 개선점을 발견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한세예스24홀딩스의 경우 조 팀장 개인이 회사 실정을 면밀히 검토하고 사업을 진행했다는 측면에서 다른 기업이 반면교사를 삼을 수 있는 여지가 크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대다수 기업들이 관성적으로 DB적립금을 운용하고 있는 현실 속에서 타산지석으로 삼을 요소가 많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 공통된 설명이다.
조 팀장은 "기업들마다 제각각의 사정이 있고, 그 사정에 맞춰 운용을 하면 되는데 가장 큰 문제는 퇴직연금 시장에 대한 무관심이 불러오는 부작용"이라며 "자본시장과 충분히 커뮤니케이션하면서 업무를 추진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조 팀장은 조달 업무를 추진하면서 DC 제도 도입을 위한 작업을 진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