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한국형 행동주의는 3월 정기 주주총회가 열려야 승패의 결과가 나올 것으로 보인다. 표 대결에서 행동주의 주주들의 주장이 받아들여질 가능성은 적다.
하지만 단순히 표 점유율만을 승리와 패배로 보기는 어렵다. 의안이 채택되지 않거나 반대에 실패하더라도 주가와 여론, 기업의 방향 등 바뀔만한 요소가 많다. 기업들에게 별다른 위기의식을 불러일으키지 못했던 초창기 행동주의 펀드와는 달라졌다.
미래의 일을 예견할 때 과거의 일을 돌아보는 건 필연적이다. 특히 한국형 행동주의는 미국계 등 글로벌 행동주의 양상과 다르게 성장해 왔다. 한국 기업에 맞춘 행동주의는 무엇이 달랐고 국내 기업에게 어떤 영향을 남겼을까.
◇지배구조 변화 꿈꿨던 KCGF, 기업들은 '글쎄' 'K'라는 수식어는 요즘에만 붙은 게 아니다. 한국형이라는 표현은 유구하다. 행동주의도 국내로 들어오면 한국형 행동주의로 탈바꿈한다. 한국 기업에 맞춘 행동주의가 탄생했다는 건 투자 대상인 국내 기업들의 특성이 글로벌 기업과는 사뭇 달랐다는 의미다.
여러 차이가 있었겠지만 그중에서도 초창기 행동주의 펀드가 짚었던 문제점은 국내 기업 특유의 지배구조였다. 2006년 출범한 한국기업 지배구조개선펀드(KCGF)가 좋은 예다. 기업 지배구조 개선을 노린 상품으로 일명 '장하성 펀드'로 불렸다. 펀드를 만든 장하성 전 교수는 낙후된 기업 지배구조가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주 원인이라고 지목해오다 이 펀드를 만들었다.
점점 잠잠해지다 6년만에 청산됐지만 초반에는 돌풍을 일으켰다. 외국계 펀드와는 다른 족적을 남긴 것만으로도 주주 인식에 영향을 줬다. 투자대상의 단일 종목 상승에 앞서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라는 대전제를 제시했다.
이후 스튜어드십 코드가 도입되기 전까지는 일부 자산운용사들이 관련 기관과 손을 잡고 행동주의를 표방한 펀드를 냈다. 이때까지만 해도 투자 관련 기관에서조차 행동주의를 두고 '주주총회에서 큰 목소리를 내는 활동'이라고 표현할 만큼 인식이 희미했다.
◇'토종 펀드가 경영권까지?' 기업들 놀래킨 KCGI 한진칼 투자 2016년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과 함께 자산운용사들의 행동주의도 새 국면을 맞았다. 개선 가능성이 있는 종목을 골라 투자하고 주주서한을 보내는 한편 가처분신청 등의 방안으로 기업의 행동을 제안하기도 했다. 전보다 적극적인 행동주의 물결이 일었다. 다만 이때까지만 해도 기업들이 국내 행동주의에 크게 신경을 썼다고 보기는 어렵다. 개별 펀드의 규모가 위협적이지 못했기 때문이다.
기업들의 인식을 크게 바꾼 사건이 있다면 2018년 한국기업지배구조개선(KCGI) 펀드의 한진칼 투자다. 소버린과 칼 아이칸, 앨리엇 등 외국계 펀드에 국한됐던 공격형 행동주의가 토종 운용사로부터 출발하게 됐다. 당시 발간된 증권사 리포트는 KCGI를 한국형 행동주의의 서막이라고 불렀다.
외국계들이 태생적으로 국내에서 우호적인 시선을 받지 못했다면 KCGI는 달랐다. 토종 펀드와 대기업의 싸움이었던 만큼 공격 대상인 기업도 국적만으로 긍정적인 여론을 형성할 수 없었다. 당시 한진칼은 최대주주 지분율이 30% 미만이어서 행동주의 펀드의 타깃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분류된 바 있다. KCGI는 9%의 지분을 매입해 단숨에 주요 주주가 됐다.
KCGI는 2022년 3월 지분을 호반건설에 매각할 때까지 경영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2020년 KCGI와 반도건설, 조승연(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과 3자 연합을 결성해 한진그룹 재무구조 개선과 기업지배구조 개선을 요구해 왔다.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과 경영권 분쟁에도 적극적이었다.
◇'이사회·경영권·배당정책' 지킬 게 많아진 기업들 세대를 거듭할 수록 격화됐다기보다 갈래가 많아졌다는 설명이 맞다. 우호적인 행동주의로 기업과 협업하는 투자자가 있는 한편 그만큼 적극적인 관점의 행동주의 투자자도 많아졌다. 최근의 행동주의 펀드들은 기업가치 제고나 주주환원 요구를 넘어 이사회 진입과 감사선임, 기업 결정을 반대하는 안건을 제시하는 등 보다 구체적으로 기업의 틈을 파고들고 있다.
2022년 안다자산운용-SK케미칼이 대표적인 예다. SK바이오사이언스의 지분을 매각하고 신규사업 투자와 배당 성향을 늘리라는 주문을 했다. 같은 해 얼라인파트너스와 SM엔터테인먼트도 라이크 기획 계약 종료와 사외이사 확대 등을 두고 표대결에 나섰다.
KCGI는 오스템임플란트에 이사회의 독립성과 내부통제, 주주환원 강화 등 다양하고 구체적인 요구를 내놨다. 차파트너스는 남양유업에 감사선임과 현금배당, 액면분할 등을 요청했다.
올해 주주총회는 어느때보다 뜨겁다. 차파트너스는 3월 금호석유화학의 주주총회에서도 키맨이 됐다. 박철완 전 금호석유화학 상무와 맞손을 잡으면서다.
VIP자산운용은 삼양패키을 상대로 중기 주주환원 계획을 발표하라고 요청했다. 얼라인파트너스는 7곳의 금융지주를 대상으로도 배당 확대나 사외이사 선임 등을 요구했다. 삼성물산은 행동주의 펀드 연합에 배당 확대 요구를 받았다. KCGI자산운용은 지난해부터 현대엘리베이터에 자사주 소각 등을 요구해온 상황이다.